까다로운 악기 '호른', 오케스트라 조율하다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최근 시대악기 연주단체 콜레기움 바로크 서울이 프랑스 작곡가 장 필립 라모의 작품을 연주했다. 바흐, 비발디보다 앞서 활동했던 라모는 17세기 프랑스 춤곡과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발전을 꾀했다. 오페라 서사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악기를 살려 낸 것도 그만의 개성이다. 특히 라모의 음악사적 가치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호른이다. 그는 낭만시대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호른에도 화성적 역할을 부여했다.
당대 악기인 '내추럴 호른'은 나팔처럼 생긴 악기 안에 손을 넣어 반음과 온음을 조율해야 해 정확한 음정 전달이 어렵다. 하지만 사람의 호흡, 목소리를 닮은 이 악기만의 매력을 알았던 모차르트는 호른을 위해 네 개의 협주곡을 썼고, 아버지가 내추럴 호른 주자였던 브람스는 바이올린, 피아노, 호른을 위한 삼중주를 비롯해 '독일 레퀴엠', 교향곡 1·2번, 피아노 협주곡 2번에도 호른에 중요한 역할을 맡겼다.
교향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낭만시대에는 건반악기를 비롯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여러 악기의 개량과 변화가 있었다. 특히 후기 낭만에 이르러서는 금관악기의 기량과 역할이 교향곡의 완성도를 결정할 만큼 중요해졌다. 호른은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으로 역할이 달라진 악기다. 내추럴 호른은 자연배음 아닌 음들은 손으로 관을 막아 음정을 만들었다. 오늘날의 밸브 호른은 안정된 음정 조율, 모든 음색이 고르게 표현돼 더 많은 역할이 부여됐다. 호른 특유의 부드러운 음색과 밸런스 좋은 음량은 어느 악기와도 잘 어우러진다. 금관악기이지만 현악, 목관 앙상블과 실내악 무대를 함께할 수 있는 이유다.
호른의 위상 높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내추럴 호른을 선호했던 브람스와 달리 슈만은 밸브를 장착해 새롭게 태어난 호른의 화려한 음색을 좋아했다. 소리도 밝아지고 가벼워지니 어떻게 하면 이 악기의 찬란한 음색을 부각시킬 수 있는지 고민했다. 슈만은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아다지오와 알레그로'와 초연 때부터 큰 갈채를 받았던 '네 대의 호른을 위한 소협주곡'을 남겼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아버지 프란츠 슈트라우스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호른 연주자이자 뮌헨 궁정관현악단의 호른 수석이었다. 아버지 영향이 컸겠지만 리하르트는 두 개의 호른 협주곡을 썼고, 교향시를 비롯해 모든 작품에서 호른이라는 악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겼다. 특히 교향시 '영웅의 생애'에서는 8대의 호른을 등장시켜 영웅 테마를 연주하게 함으로써 악기의 위상을 드높였다.
흥미로운 것은 슈만과 브람스를 비롯해 슈트라우스까지 바그너의 음악을 싫어했던 사람들이지만 호른에 대해서만큼은 바그너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바그너는 밸브 호른의 유용성을 인식하고 이 악기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냈던 인물이다. 심지어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 사용하기 위해 '바그너 튜바'라는, 호른의 일종인 악기도 고안했을 만큼 애정이 깊었다. 후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교향곡 4번 '알프스'에 이 악기를 사용했고, 아버지 프란츠 슈트라우스는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의 초연 무대에서 호른 수석으로서 대단히 훌륭한 연주를 했다고 한다.
바실리 페트렌코, 클라우스 메켈레 지휘 아래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을 지낸 호르니스트 김홍박(서울대 교수)은 오케스트라 내 호른의 역할을 이렇게 말한다.
"네 대의 호른이 무대에 오르면 제1호른은 높은 음역대에서 목관, 솔로 바이올린과 어우러지게 연주하고, 제3호른은 높은 음역, 큰 음량의 금관악기와 결을 같이 합니다. 제2호른은 비올라, 첼로 등 중저음 악기군들과, 제4호른은 더블베이스를 비롯한 저음 악기들과 블렌딩을 만들어 내죠. 호른의 부드러운 음색은 오케스트라 전체 악기군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소리를 연결해 주고, 잘 감싸 안아 하나의 소리로 모이게 하는 역할을 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호른은 개량됐지만 여전히 까다로운 악기다. 호른의 기량은 명문 오케스트라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언급되곤 한다. 뛰어난 기량의 호른 연주자가 귀하다는 얘기가 되겠지만, 오케스트라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데 호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하는 얘기도 될 것 같다.
객원기자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차 앞유리에 '쾅' 오물풍선에 날벼락… 김정은에게 소송 걸 수 있나 | 한국일보
- "어디서 굴렁쇠 소리가…" 타이어 없이 강변북로 달린 만취 운전자 | 한국일보
- '유영재와 이혼' 선우은숙, 하차 알리며 눈물 "피로감 안겨 죄송" | 한국일보
- 베트남서 '성관계 거부' 한국 여성 살해 20대 한국 남성 체포 | 한국일보
- 조국 "감옥 가면 스쿼트·팔굽혀펴기 하겠다" | 한국일보
- 잊혀질 뻔했던 2020통의 편지... 14년 묻힌 한중일 타임캡슐[문지방] | 한국일보
- 최태원 회장 측 "이혼 소송 판결문 유포자 경찰 고발"... 법적 대응 | 한국일보
- "펑하더니 쓰레기 쏟아져"… 도로·앞마당까지 덮친 북한 '오물 풍선' | 한국일보
- "강형욱 회사는 훈련소계 삼성"… 갑질 시달리는 훈련사들 | 한국일보
- "여학생 조기 입학으로 저출생 완화"…정부기관이 제시한 대책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