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네즈, 우유… 불편한 가격 인상과 중간마진의 비밀 [視리즈]
고약한 인플레 세가지 시각➊
“원재료 가격 치솟아 인상 불가피”
많은 기업이 내세우는 인상 이유
하지만 무관한 경우도 적지 않아
민생 제품 다수 복잡한 유통 거쳐
‘중간마진’ 규모가 커지는 게 문제
# 팬데믹 때 풀린 돈, 속출하는 기상 이변, 세계 곳곳서 벌어지는 전쟁, 고령화에 휘감긴 지구촌, 미중 무역 분쟁…. 물가가 오를 만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문제는 물가는 곧 민생이고, 인플레이션은 공포란 점이다.
# 물가가 오르면 민생고가 심화한다. 똑같은 10만원을 갖고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들어서다. 그렇다고 나열한 이유 중 어느 하나 제대로 통제할 방법도 없다. 사과 한알이 점심값에 맞먹어도, 치킨값 3만원 시대가 열려도 서민들은 그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 고물가는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그러니 정부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해졌다. 더스쿠프가 고통스러운 인플레이션을 세가지 시각으로 색다르게 분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視리즈 '인플레 세가지 시각' 그 막을 연다. 고약한 중간마진과 기업의 탐욕, 그리고 불평등한 인플레이션이다.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원재료 가격이 치솟고 있다." 제품 가격을 끌어올릴 때면 많은 식품업체가 이런 핑계를 늘어놓는다. 밑지고 장사할 순 없으니 가격인상은 불가피하단 거다. 하지만 '원가 탓'을 하기엔 이상한 구석이 있다. 원가가 오르지 않았는데도 가격을 인상하는 경우가 숱해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중간마진'이다. 視리즈 '인플레 세가지 시각' 1편 고약한 중간마진이다.
■ 우윳값 미스터리 = 지난 4월 국내 우유가격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3.5% 올랐다(한국소비자원 조사). 100mL당 340원에서 420원으로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2.9%)을 10배가량 넘는 수준이다.
월급 빼곤 안 오르는 게 없는 요즘, 우유가격 상승에 주목해야 하는 건 값을 올려야 할 이유를 납득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우유가격을 끌어올린 주범은 원유原乳다. 지난해 원유가격이 L당 88원 오른 뒤 업계는 우유 소비자 가격을 일제히 인상했는데,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원유가격을 올리는 건 '생산비'다. 원유가격은 낙농가와 유乳 업계로 만들어진 낙농진흥회가 협상을 통해 결정하고 매년 8월부터 적용하는데, 원유를 생산하는 데 얼마가 드느냐를 기준으로 따진다. 쉽게 말해, 원유 생산비가 오르면 원유가격도 올라가는 구조다.
낙농가는 사룟값이 매년 올라 어쩔 수 없이 원유가격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해 원유가격을 결정할 협상은 조만간 시작한다. 원유가격은 또 오를 가능성이 높고, 우윳값도 덩달아 뛸 채비를 마쳤다.
그런데 한가지 아이러니한 게 있다. 원유 생산비에 가장 큰 비중(59.5%•2022년 기준)을 차지하는 사룟값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를 살펴보자. 올해 4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3월보다 0.3% 상승한 119.1포인트를 기록했다.
당장은 오름세를 보였지만, 추세적인 흐름은 아니다. 이 지수는 지난해 7월(124.6포인트) 이후 7개월 연속 하락했다가 지난 3월부터 소폭 반등했다. 실제로 곡물로 만드는 배합사료의 가격은 하락하는 추세다. 올 1~4월 국내 젖소용 배합사료의 평균 가격은 ㎏당 639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74원) 대비 3.7% 감소했다. 우유의 원재료나 다름없는 곡물 가격은 내려갔는데, 정작 우유가격은 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낙농가가 폭리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낙농육우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낙농가의 평균 부채는 6억8100만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9500만원 증가했다. 낙농가 대부분(76.0%)이 4억원이 넘는 고액 부채를 부담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문을 닫는 농가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그럼 우유가격을 올려 이득을 얻은 곳은 어딜까. 우유가격은 낙농가가 생산하는 원유가격뿐만 아니라 유업체의 인건비, 유류비, 판매관리비 등의 비용과 유통업체 마진으로 구성된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2016년 이후 5년 동안 소비자가 지불하는 우유가격에서 낙농가의 원유수취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40.9%, 우유 가공업체의 마진은 23.5%, 유통 부문의 마진은 35.6%였다. 우유 마진 중 59.1%를 가공업체와 유통업체가 가져간다는 거다. 결국 우유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해선 '중간 단계'를 손봐야 한다는 얘기다.
가령 국내 우유 시장의 46.4%를 점유한 서울우유는 지난해 매출 2조1117억원, 영업이익 545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2022년 대비 매출은 7.3%, 영업이익은 15.1% 증가한 수치다. 서울우유의 매출이 2조원을 넘어선 건 1937년 조합이 설립된 후 처음이다.
■ 사과가격 미스터리 = 올해 초 국민 대표 과일인 사과의 값이 치솟으면서 '금金사과 파동'이 일어났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대형마트에서 파는 사과 한알이 5000~6000원을 호가하면서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사과가격이 급격히 오른 표면적 이유는 기후변화에 따른 생산량 감소였지만, '유통 구조'에도 문제가 있었다. 금사과가 시장에 등장한 건 사과 10㎏ 도매가격(후지ㆍ상품)이 지난 1월 사상 처음으로 9만원을 넘어서면서였다. 불과 1년 전엔 4만원 초반대였던 걸 고려하면 무서운 상승세였다. 그 이후에도 9만원 선에서 등락을 반복하다 최근 들어선 10만원대로 치솟았다.
사과 도매가는 도매시장이 경매로 결정한다. 올해엔 생산량이 줄어든 탓에 경매가가 치솟았다. 여기에 사과를 소비자까지 전달하는 데 5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친다. 중간 마진이 붙으면서 가격상승이 불가피한 구조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사과의 유통 비용률은 62.6%로, 1000원을 주고 사과를 1개 구매했다면 그중 626원은 유통 비용인 셈이다.
유통과정에서 마진이 붙는 건 당연하지만, 농가보다 중간상인이 더 많은 이익을 보는 구조를 납득하는 건 쉽지 않다. 많은 농산물의 가격에도 이같은 '중간마진'이 붙고, 그 규모는 꾸준히 커지고 있다. 2001년 농산물 가격의 43.7%였던 유통비용 비중은 2020년 49.7%로 증가했다.
정부는 올해 초 농산물 유통 중간 단계에서 디지털 전환을 꾀해 2027년 기준 2조6000억원의 유통비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를 바꿔 해석하면, 현재 2조원을 훌쩍 넘는 '중간마진'을 우리 국민들이 부담하고 있다는 얘기다.
■ 원룟값 미스터리 = 국내 식품기업들의 가격 인상도 따져볼 게 숱하다. 이들은 가격을 올릴 때마다 '원가 상승'을 배경으로 꼽는다. "팔수록 손해라 너무 힘들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원가 상승은 가격을 올릴 가장 그럴듯한 이유다.
문제는 그게 진짜 이유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거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2022년 9월과 2023년 9월 사이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와 원재룟값 등락률(29개 주요 가공식품)을 비교한 결과를 보자. 이중 8개 품목은 원재룟값이 하락했지만 소비자 가격은 되레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게 마요네즈였다. 마요네즈는 1년 새 원재룟값이 22.0% 하락했지만, 소비자물가지수는 26.0% 올랐다. 식용유 역시 같은 기간 원재룟값이 27.5% 내렸음에도 소비자물가지수는 10.3% 올라갔다.
원재룟값이 19.8% 떨어진 밀가루의 소비자물가지수는 6.9% 상승했다. "원자재 폭등에 경영 부담을 견디기 어렵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식품업체들이 정작 원재료비가 하락할 땐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 물가 대응 미스터리 =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3월 긴급 가격안정대책을 꺼내들었다. 정부의 비축 물량 방출, 할당관세 물량 공급 확대, 납품단가 지원 및 할인지원 확대 등이 골자다. 윤석열 대통령은 "장바구니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 자금을 무제한 무기한으로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지시대로 '긴급 대책'은 3월에 이어 4월과 5월까지 무기한 연장 중이다. 그런데도 '장바구니 물가'는 꺾이지 않고 있다. 체감물가에 가까운 4월 생활물가지수는 전년보다 3.5% 상승했다. '밥상 물가'와 직결되는 신선식품지수는 지난해 동월 대비 19.1% 오르며 급등세를 이어갔다. 무려 7개월째 두자릿수 상승폭이다.
이는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처럼 "글로벌 공급망 교란의 영향으로 원재료 가격이 치솟고 있다"는 기업들의 호소에만 고개를 끄덕이면 물가 하향 안정화를 달성하기 어렵다. 원가 상승 요인이 사라졌는데도 소비자 가격이 되레 오르는 기현상을 바로잡지 못하거나 전반적인 유통 구조를 개선하지 못하면 더 그렇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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