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하마스 제거 전까지 전쟁 안 끝내”···휴전협상에 또 찬물? 국내 반발 의식?

선명수 기자 2024. 6. 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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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새로운 가자지구 휴전 협상안을 전격 발표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하마스 제거 전까지 전쟁 종식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발 빠른 ‘선 긋기’에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 폭격을 퍼붓는 등 중재국들이 되살리려는 협상 불씨가 다시 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는 유대인 안식일인 토요일이었던 1일(현지시간)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하고 “이스라엘의 전쟁 종식 요건은 변하지 않았다”며 하마스의 군사력과 통치능력 파괴라는 ‘전쟁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는 종전과 관련한 어떤 합의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전날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새로운 ‘3단계 휴전안’을 발표한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나온 이스라엘의 입장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 측 제안”이라며 발표한 휴전안은 그간 하마스가 요구해온 종전 논의와 함께 전후 가자지구 재건 계획까지 담고 있었다.

총 3단계로 구성된 휴전안에는 1단계 첫 6주간 양측이 교전을 전면 중지하고 이스라엘군이 인구 밀집 지역에서 철수하며, 하마스는 인질 중 여성·노인·부상자 등을 석방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기간 양측은 종전 협상을 진행한다. 2단계에선 양측이 종전을 약속하고,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전면 철수하며 하마스는 생존한 인질을 모두 풀어준다. 마지막 3단계에서는 하마스가 사망한 인질들의 시신을 모두 이스라엘에 송환하며, 가자지구 재건 계획을 시작한다.

바이든 대통령 발표 후 유엔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즉각 환영했고, 독일·프랑스·영국·사우디아라비아 등 각국도 휴전안을 지지하며 당사자들의 수용을 촉구했다. 미 의회 역시 오랜만에 초당적 지지를 보냈다. 미 대선을 5개월여 앞두고 공화당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휴전안을 “긍정적으로 본다”며 이스라엘이 합의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명확히 한다면 “건설적 태도로 (협상에) 임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하마스가 지난 수개월간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들며 휴전 협상을 방해한다고 비판해오던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입장 변화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피란민들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의 한 난민촌에서 무너진 텐트 잔해를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하마스의 긍정적인 반응에 8개월간 지속된 전쟁이 드디어 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커졌지만, 네타냐후 총리의 발표로 휴전 기대감은 빠르게 식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휴전안은 “이스라엘의 제안”이라고 밝혔음에도 네타냐후 총리가 정작 휴전안에 문제를 제기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영국 가디언은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은 하마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시 압박하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을 장기화시킬 수밖에 없는 국내 정치적 여건에 처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스라엘 정치권에선 전쟁이 끝나면 네타냐후 총리가 축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 연정은 120석의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에서 64석을 차지하고 있다. 4명만 이탈해도 과반 의석을 잃어 연정이 무너지고 3개월 이내 선거를 치러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 발표 후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 등 연정 내 극우 인사들은 새 휴전안을 거부하지 않으면 연정을 붕괴시키겠다고 총리를 위협했다.

반면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휴전안에 동의할 것을 촉구하며 극우 세력이 연정을 탈퇴하더라도 중도 성향 예시 아티드당이 정부를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네타냐후 총리의 발표가 바이든 대통령에 반기를 드는 것이라기보다는 국내 정치 세력을 의식한 발언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스라엘이 제시한 정확한 (휴전안의) 틀은 이스라엘군이 하마스를 파괴하려는 목표를 유지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회견에서 “하마스가 집권하지 않는 가자지구에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자발적으로 물러나거나 무장 해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미국은 지난 8개월간 전쟁에서 하마스 군사조직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지난해 10월7일 이스라엘 기습 공격과 같은 대규모 공격을 단행할 능력을 잃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시위대가 네타냐후 총리 퇴진과 인질 석방을 위한 휴전 협상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휴전 중재국인 미국과 카타르, 이집트는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에 “원칙을 구현하는 합의를 마무리하라”며 휴전안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이와 별개로 이집트와 미국, 이스라엘은 2일 카이로에서 만나 지난달 7일 이스라엘군이 폐쇄한 라파 국경검문소 재개방 논의를 시작한다고 CNN이 보도했다. 이집트는 자국 국경과 접한 라파 검문소에서 이스라엘군이 전면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일주일간의 휴전 이후 답보 상태에 있던 휴전 협상이 또다시 중대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 이스라엘 전역에선 휴전과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가자지구에 억류돼 있는 인질들의 가족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밝힌 휴전안을 수용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바이든 대통령 발표 후 이미 잿더미가 된 라파에 밤새 대규모 공습과 포격을 가해 휴전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 주민은 “이른 밤부터 아침까지 단 한 순간도 포성이 멈추지 않았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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