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런 슈퍼히어로급 몰입감이...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 빠져드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미안해. 너 혼자 둬서. 무서웠지? 많이 외로웠지? 지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 너한테 어떻게 다가갈지. 아빠도 어색해 모르겠고. 그래도 노력할게. 지금부터라도 너하고 같이 시간을 보낼 거야.' JTBC 토일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서 복귀주(장기용)의 마음의 소리가 딸 복이나(박소이)에게 들려온다. 그간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놨던 복이나였다. 눈을 마주치면 그 사람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초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복이나는 두꺼운 안경으로 눈을 가리고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것으로 눈을 피했다.
어린 나이에 겪은 너무나 아픈 경험 때문이다. 복이나가 태어난 날은 복귀주에게 가장 행복했던 날이면서 가장 불행한 날이기도 했다. 마침 그날 친했던 소방관 동료 형이 학교 화재 현장에서 사망했던 것. 그래서 행복했던 기억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복귀주는 계속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 동료 형을 구하기 위해 계속 학교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무력감에 좌절했고, 결국 그 시간은 복이나가 말하듯 최악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 시간이 아빠를 잡아먹었잖아요."
복이나가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걸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던 데는 가만한 이유가 있었다. 결국 과거 그 최악의 시간에 잡혀먹힌 복귀주를 떠나던 날 복이나는 차안에서 엄마의 마음을 읽었다. 아빠가 같이 가지 못한다며 '하필 그날 니가 태어나 버리는 바람에...'라는 엄마의 마음이 들렸던 것. 복이나는 "내가 태어나는 바람에? 내가 태어난 게 잘못한 거야?"라고 엄마에게 말했고, 복이나가 자신의 마음을 읽은 사실에 놀란 엄마는 결국 교통사고를 내고 사망했다.
복이나는 그 오랜 시간을 자책하며 살아왔다. "내 잘못이에요. 마음에 뭘 숨겼든 그게 잘못은 아닌데... 엄마도 친구도 다 다 들키기 싫었을텐데.. 근데 내가 들어버리는 바람에 괴물 같은 내가.. 하필 내가 태어나는 바람에..." 그렇게 드디어 자신의 아픈 속마음을 꺼내놓는 복이나를 복귀주는 꼭 껴안아주며 말한다. "아니야. 아니야 이나야. 너 때문이 아니야. 너 때문이 아니야. 그걸 어떻게 그동안 너 혼자... 그런 마음으로 여태... 아빠 때문이야. 미안해. 아빠가 아무 것도 몰랐어. 니가 태어난 시간은 아빠한테 아빠한테 그 시간이 얼마나..." 말로는 그 마음을 다 설명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복귀주의 눈을 드디어 마주치게 된 복이나의 눈은 아빠의 마음을 다 읽고 있었다.
이 장면은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라는 독특한 판타지 설정의 드라마가 어째서 이토록 폭풍같은 감정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건 이 드라마가 가져온 초능력의 특별한 쓰임새에서 나온다. 마음을 읽는 복이나의 초능력은, 그걸로 세상을 구하는 그런 곳에 쓰이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속깊은 진심을 주고 받는데 쓰인다. 아빠의 진심을 읽는데 쓰인다. 그리고 그건 적어도 복이나에게는 세상을 구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이었을 게다.
예지몽의 능력을 가진 복만흠(고두심) 역시 그 능력으로 하고 있는 건 가족에 대한 걱정이다. 꿈을 통해 복귀주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복만흠은 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복동희(수현)는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엄마의 그늘 아래서 정작 자신의 꿈을 향해 훨훨 날아가지 못한다. 결혼해 가정을 꾸리면 500억짜리 건물을 주겠다는 엄마의 말에 어떻게든 살을 빼서 결혼을 하려 한다. 그걸로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즉 복동희의 나는 능력 역시 세상을 구하는 그런 데 쓰이는 게 아니고, 자신 스스로 제 삶을 찾는데 쓰이는 것이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복귀주 또한 마찬가지다. 그가 그 능력으로 하려는 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려는 것뿐이다. 자꾸만 13년 전으로 돌아가 자신을 구하겠다는 복귀주에게 도다해(천우희)는 왜 그러냐고, 그가 지켜야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복귀주는 말한다. "지킬거야. 목숨 걸고. 그 가족에 너도 포함이야."
초능력이라는 판타지 설정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세상을 구하는 능력이 아니라, 한 사람 그것도 가족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걱정하고 또 지켜내려 하는 능력으로 쓰인다는 점은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 왜 이토록 깊은 감정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가를 말해준다. 실로 세상을 구한다 한들 가까운 한 사람의 마음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 드라마가 툭툭 건드려 급기야 감정을 폭발시키는 순간순간들은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던지고 있는 것만 같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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