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통신감시연합 의장”…치료감호 필요한데 검찰은 ‘수감만’
“현재 직업은 무직인가요?” “아니요. 국제금융통신감시연합 의장입니다.”
지난달 30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임민성) 심리로 열린 ‘지하철 2호선 흉기난동’ 사건 항소심 법정에 특수상해 혐의를 받는 홍아무개(52)씨가 연갈색 죄수복을 입고 섰다. 그는 지난해 8월 열차 안에서 칼날이 달린 다목적 캠핑 도구를 승객 두 명에게 휘두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당일 수십명이 자신을 공격하려고 했고 방어하려는 목적으로 흉기를 꺼냈으니 ‘무죄’라고, 홍씨는 주장했다. 조현병이 있는 그는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보시다시피 병식(스스로 병을 인지하는 것)이 없습니다. 치료 없이 수감만 하면 그대로 사회에 나왔을 때 또다시 불특정 다수를 위협할 가능성이 큽니다.” 홍씨 변호인 김정훈 변호사는 가족들의 의사대로, 죗값을 치르고 수감되더라도 정신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치료감호 선고를 요청했다. 치료감호란 정신질환 등을 가진 범죄자가 재범의 위험이 있고 특수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시설에 수용하는 처분이다.
2심 재판부는 상황을 인정하면서도 난색을 보였다. 치료감호법 4조는 ‘검사가 치료감호를 청구할 경우’ 법원이 선고할 수 있게 돼 있는데, 홍씨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가 나온 뒤에도 검찰이 이를 청구하지 않은 탓이다. 이날 검찰은 치료감호 청구 없이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5년을 선고해달라고만 요청했다. 재판부와 변호인이 의아해하자, 검찰은 “기록에 정신감정 결과서가 편철돼있지 않았다. 결과를 확인해보겠다”고 뒤늦게 밝혔다. 한겨레가 확인한 지난달 13일 국립법무병원 감정 결과서를 보면, ‘(홍씨는) 병식 결여로 자발적인 치료를 기대하기는 불가능한 상태다. 지속적인 약물치료 등 치료감호를 포함한 입원 치료 수준의 정신과적 전문 치료가 필요하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 향후 재범의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적혀있다.
검찰은 홍씨 사건 수사단계부터 “사회적 공분을 유발한 이상동기 중대강력범죄”라며 치료를 통한 재발 방지보다 엄벌을 시사했다. 1심에선 심신미약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치료감호 처분의 근거가 되는 정신감정조차 하지 않았다. 최근 결과가 나온 정신감정은 지난 1월 변호인의 신청으로 진행됐다. 김정훈 변호사는 “(홍씨가) 살인미수로 치료감호 처분된 전력도 있는데 검찰이 제대로 사건을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심부터 치료감호의 가능성을 검찰이 살피지 않은 탓에 상황은 한층 더 꼬였다. 치료감호법 3조는 관할 법원을 1심 합의부로 두고 있다. ‘자유를 박탈하는 처분’이기 때문에 3명의 판사로 구성된 합의체에서 맡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1심 단독재판부가 맡아 선고를 내린 상태다. 재판부는 “1심 단계에서 치료감호 청구를 하면 합의부에 재배당할 수 있는데 (이미 2심으로 넘어온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선고기일을 늦춰달라는 홍씨 쪽 요청에는 “(2심) 구속 기간이 있어서 곤란하다. 검찰이 별도로 청구하고 (다른 재판부가) 따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로이 사건을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재판부는 검사에게 치료감호 청구를 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을 택했다.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강제성은 없다. 지난 2021년 헌법재판소는 치료감호법의 위헌법률심판에서 이에 대한 검사의 독립적인 권한을 인정한 바 있다. 김 변호사는 “(치료감호처분을 받으려면) 검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사건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빈손’으로 올 줄은 몰랐다”며 “(제대로 했다면) 초기에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토로했다. 홍씨 사건의 변론은 이날로 끝났다. 2심 선고는 오는 13일 진행된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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