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는 아이 없도록···일본, ‘노키즈’ 대신 어린이식당 늘린다
지난달 26일 어린이식당 축제가 열린 일본 치바현 후나바시(船橋)시 하마초 공민관(커뮤니티센터). 평소 한적한 공민관이 모처럼 아이들 웃음소리로 들썩였다. 이날 처음으로 어린이식당 음식을 맛본 오다 이치카(6)양은 연신 “맛있다. 노는 것도 재미있다. 또 오고 싶다”고 했다.
일본 어린이식당은 지역 내 아이들과 보호자, 노인들에게 무료 혹은 100~200엔 가량의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다. 빈곤 아동의 끼니를 챙기는 급식소이자 지역 공동체가 모여 관계를 맺는 거점 역할을 한다.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0ECD)에 따르면 일본의 아동 빈곤율(17세 이하 아동 중 중위소득의 50% 미만 소득 가정 아동의 비율)은 14.0%에 달한다. 아동 7명 중 1명이 빈곤 상태에 처한 셈이다.
이같은 아동 빈곤 문제 대응을 위해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기 시작해 시민단체, 비영리단체(NPO)가 운영에 나서면서 확산됐다. 2012년 도쿄도(東京都) 오타(大田)구에서 처음 문을 연 뒤 현재 일본 전역에 7331개(2022년 기준)의 어린이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일본 내 전체 아동관(4700개)을 넘어서는 규모다.
운영은 주민들의 자원봉사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기부 받은 농산물로 밥과 반찬을 만든다. 시·구청에서 지원금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부금으로 운영비를 조달한다.
후나바시시에도 30여개의 어린이식당이 있다. 각 식당은 매달 일정한 날을 정해 문을 연다. 매일 여는 곳부터 주 1회, 월 2회 등 식당 여건에 맞춰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개인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제공하거나 공민관과 같은 공공장소를 빌려 도시락을 나눠주기도 한다.
이날 후나바시시 어린이식당 축제처럼 지역 내 어린이식당들은 종종 행사를 연다. 어린이식당 이용률을 높이고 자원봉사와 기부를 늘리기 위해서다. 먹거리와 놀거리를 준비하고 한켠에서는 지역주민을 상대로 자원봉사 상담을 진행한다.
최근에는 어린이식당이 ‘빈곤 아동을 위한 급식소’가 아니라 쉼터가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나 와서 머물 수 있는 장소인 ‘이바쇼’(居場所)임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실제로 어린이식당에 온 아이들은 숙제를 하거나 자원봉사를 온 대학생, 지역 주민들과 소통한다. 한부모 가정 보호자나 독거노인들도 어린이식당을 찾아 함께 밥을 먹고 어울린다.
2016년부터 후나바시시에서 어린이식당 ‘오무스비’를 운영하고 있는 오이카와 메구미(46)씨는 “어린이식당은 단순히 가난한 아이와 부모만을 위해 운영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지역 구성원 누구나 안전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인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규모가 작은 지역일수록 어린이식당의 역할은 커진다. 홋카이도 최동단 인구 2만6000여명의 소도시 네무로시에서는 어린이식당이 지역 사랑방 역할을 한다. 동네가 좁고 어린이 시설이 많지 않아 어린이식당 전단지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아이와 함께 다다니다보면 동네 주민들이 어린이식당 방문을 권한다. 아이가 적은 지역이다보니 육아를 하는 보호자들은 식당에서 만나 친분을 쌓고 도움을 주고 받는다.
네무로시에 거주했던 A씨(39·삿포로시)는 “한국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모두 급식을 하지만 일본은 아직 도시락을 싸는 곳이 많아 이런 어린이식당이 있는 것 같다”며 “아동 복지의 빈 곳을 지역 사회가 채워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후나바시 | 반기웅 일본 순회특파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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