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디자인 대가 안상수 ‘홀려라’, 후배 김영나 ‘이지 헤비’…부산서 개인전

노형석 기자 2024. 6. 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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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여년 전 한글을 창제한 조선 임금 세종 이도의 감각과 마음을 항상 생각하면서 작업한다.

한자 자체의 네모진 규격틀에서 벗어난 최초의 현대 한글자체 '안상수'체로 국민디자이너가 된 안씨가 상업화랑 개인전을 열었다.

1990년대 안 작가가 창립한 타이포그라피 기업 '안그라픽스'에서 작업했던 디자이너 김영나씨가 부산 망미동 복합문화공간 에프 1963 내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 차린 첫 화랑 개인전 '이지 헤비(easy heav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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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오케이엔피부산 전시장. 관객이 그의 한글문자도 작품들을 보며 사진을 찍고있다.

600여년 전 한글을 창제한 조선 임금 세종 이도의 감각과 마음을 항상 생각하면서 작업한다. 푸른빛 혹은 황톳빛 작업복에 빵모자를 쓰고 다니는 한글디자이너 겸 글자예술가 안상수(72)씨의 신조다. 하늘, 땅, 사람의 조화를 사유하며 정겹고 명쾌한 한글 자모를 집현전 학사들과 합심해 만들어낸 세종의 인간주의를 작가는 색다른 작업으로 실천해왔다.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록하고 되새김하면서 문자 디자인 작업의 밑천으로 삼아온 것이 그의 삶이자 작업이었다. 지난 20여년간 그와 만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쪽 눈을 가리고 싱긋 웃음지으면서 작가의 카메라 앵글 속에 담겼다. 그 이미지들은 생기발랄하게 표정짓는 숱한 한글 문자도(타이포그라피)가 됐다. 다른 젊은 아티스트들에게는 딴짓의 영감을 주었고, 관객들에게는 낙천적인 실험예술로 인상을 아로새겼다.

안상수 작가의 한글문자도 신작 ‘홀려라’(2024).

한자 자체의 네모진 규격틀에서 벗어난 최초의 현대 한글자체 ‘안상수’체로 국민디자이너가 된 안씨가 상업화랑 개인전을 열었다. 지난달초부터 부산 해운대 오케이앤피부산에 차린 ‘홀려라’ 전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옛 삼성 로댕갤러리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형 개인전을 열었지만, 일반 화랑에서 컬렉터를 염두에 두고 작가로서 작품을 내보이는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첫 시도다. 출품작은 201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작업해온 한글문자도 연작들이 중심이다. 전시 제목과 같이 ‘홀려라’란 제목이 붙은 이 연작들은 자음 ㅎ이 약동하는 동식물처럼 너울거리고 꿈틀거리는 여러 모음들과 결합한 현대판 민화 문자도라고 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문자의 꼴과 의미를 전달하는 모양새라고는 보기 어렵지만, 자모가 상징적인 도상으로 어울리는 이미지들 속에서 언어를 쓰는 지금 사람들의 삶에서 뿜는 생명력과 세상의 에너지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사람이 맨 아래서 세상의 살아있는 동식물들을 떠받치는 생명평화무늬와 한자와 결합된 ‘한글 도깨비’ 연작도 나왔다. 생명평화무늬는 연예인 이효리와 축구선수 황희찬이 문신(타투)으로 써서 널리 알려졌는데, 도상을 곱씹으며 살피는 감상의 맛이 특출하다. 9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 전시장에 내걸린 김영나 디자이너의 근작들.

공교롭게도 안상수 작가의 전시와 더불어 그를 따르며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 작가의 전시회가 나란히 열리고 있다. 1990년대 안 작가가 창립한 타이포그라피 기업 ‘안그라픽스’에서 작업했던 디자이너 김영나씨가 부산 망미동 복합문화공간 에프 1963 내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 차린 첫 화랑 개인전 ‘이지 헤비(easy heavy)’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를 나와 안그라픽스 등에서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했던 김씨는 그래픽 디자인 이미지들로 채워진 스티커들을 크게 확대하거나 아크릴, 석고, 섬유, 거울 등 다양한 재료와 융합시키는 방식으로 재해석하면서 현대미술과 디자인, 구상과 추상, 미시와 거시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들을 보여주고 있다. 30일까지.

나무판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숫자를 표시한 김영나 작가의 신작 ‘001110223’(2024).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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