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으로 유명세 치른 후 비구니 된 ‘산골소녀 영자’의 비극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부녀 명성 이용한 주변 사기행각에 “세상이 너무 무섭다”며 속세 등져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평리에서 40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첩첩산중 사무곡이 나온다. 예전에는 마을을 이루었지만 하나둘 외지로 떠나면서 사람들이 살던 흔적도 사라졌다. 이곳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집에서 아버지 이아무개씨와 딸 영자양이 살았다. 이씨가 부모를 모시고 살던 집이었지만 모두 돌아가시면서 부녀만 남게 됐다. 부녀는 흙으로 만든 집에서 전기도 없이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화전을 일구고 약초를 캐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영자는 초등학교에 입학해 1주일을 다닌 게 전부였다. 이런 딸에게 아버지는 글 쓰는 법을 알려줬고, 소녀는 시인을 꿈꾸었다.
1997년 오지 전문 사진작가 이지누씨는 산골 마을을 조사하다 영자 부녀를 알게 돼 찾아가서 만난다. 당시 영자는 15세였다. 이 작가는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찾아가면서 부녀와도 친해진다. 1999년에는 한 잡지에 영자 이야기를 기고했는데, 이 내용을 본 방송사에서 부녀가 사는 집을 묻는 전화가 계속 왔다. 이 작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방송사에서 집요하게 찾아냈다.
2000년 7월 KBS 2TV 《인간극장》에서 '그 산골엔 영자가 산다'를 5부작으로 편성해 방송했다. 부녀의 산속 생활이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방영됐다. 복잡한 도시에서 숨 막히는 생활을 하며 자연인의 삶을 동경했던 시청자들은 영자 부녀가 산속에서 사는 모습에 매료됐고, 영자의 순박한 미소에 열광했다. 영자에 대한 수많은 후원도 이어졌다. 후원금뿐 아니라 팬레터까지 쇄도했다. 후원품은 책과 화장품, 녹음기, 옷 등 종류도 다양했다. 후원회까지 조직돼 영자는 하루아침에 연예인 부럽지 않은 스타가 된다. 이에 힘입어 영자 부녀는 한 이동통신사의 광고 영상까지 촬영한다.
한밤중 산속으로 찾아간 전과 8범의 살인
그동안 영자가 쓴 글을 모아 《꽃이 피는 작은 나라》라는 에세이집도 출간됐다. 산골 소녀 영자가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된 것이다. 조용하던 사무곡도 호기심이 발동한 외지인들의 발걸음으로 몸살을 앓았다. 등산객과 관광객 심지어 누드 촬영을 하는 사진작가와 모델도 이곳을 찾았다. 영자는 2000년 10월 한 후원자의 도움으로 서울로 상경해 초등 과정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된다. 아버지가 산골을 떠나 도회지로 나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자 몰래 집을 나왔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극장》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영자 덕분에 프로그램의 인기도 최고점을 찍었다. 방송위원회와 시민단체는 '좋은 프로그램'으로 뽑아 상을 줬다.
그러나 영자의 행복은 여기까지였다. 2001년 2월12일 오전 산속에 혼자 남겨진 영자 아버지 이씨(51)가 숨진 채 발견된다. 영자의 큰아버지가 동생의 집을 방문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방문을 열어본 그는 충격적인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생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져 있었던 것이다. 얼마 후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 그런데 경찰은 사건 현장과 시신을 대강 살펴보고는 지병으로 숨졌다고 발표한다. 방문이 부서져 있고, 방 안에 피가 흥건한데도 부검조차 실시하지 않는 등 부실수사의 극치를 보여줬다. 검찰도 단순 병사로 처리하며 사건을 마무리한다.
누가 보더라도 타살 흔적이 역력했지만 경찰은 시신을 검안한 후 "타살 의심이 없다"며 유족에게 장례를 치르라고 했다. 영자는 마지막으로 아버지 시신에 수의를 입혀드리겠다고 고집했다. 온몸이 피범벅이 된 시신을 닦아내던 영자는 왼쪽 목 아래 쇄골(빗장뼈)에서 흉기에 찔린 자국과 코뼈가 부러진 것을 발견한다. 영자와 친척들은 다시 한번 강하게 타살을 주장했고, 경찰은 그때서야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부검을 실시한다. 타살로 판명되자 경찰은 부랴부랴 수사에 착수했다.
영자는 아버지가 누군가의 손에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 큰 충격에 빠진다.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너무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믿기지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경찰은 영자 아버지 이씨의 금전 거래내역을 파악하다 한 가지 단서를 잡는다. 인근 주민들이 설립한 석회석운송회사가 운송 차주들로부터 받아 모은 적립금을 주민들에게 배분할 때 이씨에게도 10만원권 수표 1장이 지급된 사실을 확인한다. 경찰은 이 수표에 대한 추적 작업을 벌이던 중 서울의 모 은행 지점에서 회수됐고, 이서자의 휴대전화번호를 추적한 끝에 용의자인 양아무개씨(53)를 찾아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약 한 달 후인 3월13일 양씨의 거주지를 급습해 그를 검거하고, 피 묻은 흉기를 증거물로 확보했다. 양씨는 절도와 강도 등 전과 8범으로 인생의 절반 이상인 29년을 교도소에서 보낸 악질 범죄자였다. 그는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영자 부녀의 TV 프로그램과 통신사 광고를 보고 돈이 많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해 1월 출소하자마자 곧바로 범행에 착수한다. 우선 서울에서 삼척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해 두 차례에 걸쳐 영자 집을 답사하며 치밀하게 준비했다.
양씨는 산골 집에 이씨 혼자 거주하고 있으며, 산속이라 범행이 용이하다고 판단했다. 2월9일 밤 11시20분쯤 양씨는 산골 집 방문을 부수고 집 안으로 침입한다. 그는 잠자고 있던 이씨를 위협하며 돈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양씨가 집 안을 뒤져 훔친 돈은 수표 1장을 포함해 단돈 12만4000원이 전부였다. 거액이 있을 것으로 보고 범행에 나섰지만 이씨가 가진 돈은 얼마 없었던 것이다. 양씨는 그 돈을 노래방에서 썼다가 경찰의 추적에 걸려들었다. 이후 양씨는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믿고 의지했던 후원회장의 두 얼굴
영자는 눈물 속에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 장례를 치렀다. 집 근처에 산소를 마련하고 모시려고 했지만 친척들은 화장을 권유했다. 이를 받아들인 영자는 아버지 시신을 화장해 사무곡으로 오르는 길가에 뿌린다. 아버지의 위패는 삼척에 있는 한 사찰에 모셨다.
그런데 영자의 비극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해 2월27일 영자의 후원회장이었던 김아무개씨(59)가 경찰에 구속된다. 영자는 산골을 떠난 후 줄곧 보호자를 자청한 김씨의 경기도 구리시 소재 집에서 함께 지냈다. 낮에는 검정고시 준비를 위해 서울 신설동에 있는 학원에 다녔다. 김씨는 겉으로는 영자를 도와주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두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자가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을 알고 광고 출연료와 후원금 등 약 700만원을 가로챈 것이다.
영자의 서울행을 부추긴 것도 김씨였다. 그는 영자가 방송에 나온 후 부녀에게 접근해 서울 나들이를 주선했다. 김씨는 계속 영자에게 연락해 산골을 나와 서울로 오라고 '도시 바람'을 넣었다. 그는 영자를 데려오는 데 성공하자 "서울에서 생활하면 큰돈이 필요없다"면서 영자의 통장과 현금카드를 빼앗았다. 김씨는 영자 돈을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사무실 임대료 등으로 사용했다.
그는 또 영자의 생활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영자가 "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산골에 다녀오겠다고 하면 가지 못하게 막았고, "그곳에 가면 아버지에게 붙잡혀 다시는 서울에 못 온다"고 겁을 줬다. 여기에 정신적·육체적인 학대까지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가 구속된 후 영자는 "'사람을 함부로 사귀지 말라'고 했던 말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 말뜻을 알겠다"며 "아버지 말을 듣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영자는 아버지를 잃은 후 가장 믿고 따랐던 후원회장에게까지 배신을 당하면서 세상 속에 혼자 버려진다. 후견인의 배신은 문명사회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몸소 느끼게 해준 뼈아픈 교훈이었다.
그 충격 탓인지 영자는 "도시가 싫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며 심한 대인기피 증세를 보였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없는 산골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친척집이나 낯선 곳으로 가는 것도 거부했다. 티 없이 맑고 명랑했던 영자의 말문도 닫혀버렸다. 언론 접촉이나 전화도 완강히 거절했다. 관할 삼척경찰서는 여순경 집을 임시 거처로 제공해 영자와 함께 지내게 조치했다. 영자는 한동안 아버지를 혼자 두고 서울로 떠났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죄책감을 이기지 못했다.
같이 지내던 여경의 도움으로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렸지만 가슴에 생긴 큰 상처는 쉽사리 지워내지 못했다. 어릴 적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던 사무곡 집도 정리했다. 산골 외딴집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부녀의 삶은 이렇게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어느 날 들이닥친 TV 카메라가 산골 부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무서운 세상' 뒤로하고 결국 속세 떠나
홀로 남겨진 영자는 "세상이 너무 무섭다"며 결국 속세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불교에 귀의해 '도혜'라는 법명을 받고 비구니가 된다. 주변 친지 몇 명에게만 이런 사실을 알렸으나 언론에서 행방을 취재하다가 절에 들어간 것을 알게 된다. 한 언론사에서 이런 사실을 보도하자 언론들은 앞다퉈 스님이 된 영자를 스토킹하듯 취재에 나섰다.
영자의 슬픔과 비극은 아랑곳없이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또 있었다. 영자가 스님이 된 후 한 출판사에서 영자 아버지의 유고 시집을 펴냈다. 출판사 대표는 언론을 통해 "딸과 함께 시집을 내는 게 평생 소원이라는 이씨로부터 원고를 넘겨받아 출간을 준비하던 중 사고가 났다"며 "갑작스레 세상을 뜬 고인과 최근 불교에 귀의한 영자양에게 시집 출간이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시집은 영자 아버지가 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쓰인 가짜였다. 한 시인이 양심선언을 통해 "유고 시집은 자신의 순수창작품"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는 "(출판사 대표가) '자연과 산골에서 순수하게 사는 모습을 가미해야만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다'며 비열한 수법을 총동원하게 만들었다"고 폭로했다.
오로지 돈에 눈이 멀어 사망한 영자 아버지를 두 번 죽이고, 속세를 떠난 영자에게 또다시 비열한 세상의 단면을 보여준 씁쓸한 사건이었다. 현재 영자는 강원도 삼척의 한 암자에서 친척들과의 연락도 끊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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