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조기입학=남녀매력상승=저출생해결?···황당 대책 내놓은 국책연구기관
‘생산가능인구’ 늘리려 국가주의적 정책…비판 봇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자가 저출생 해결을 위해 여성을 1년 조기 입학시키거나 국가가 만남을 주선하는 방안을 제안해 논란이 일고 있다. 생산가능인구를 늘리려 입학 연령을 낮추고 노인들을 해외로 이민시키자는 안도 내놨다. 정부의 인구정책 연구를 자임하는 국책연구기관이 국가주의적이고 차별적인 정책을 내놨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정기 간행물 <재정포럼> 5월호를 보면, 장우현 선임연구위원은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에서 한국 인구 문제를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정의하고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기 위한 정책 중 하나로 출산율 제고 방안을 검토했다.
장 연구위원은 출산의사결정 단계를 총 7단계로 도식화해 각 단계별로 필요한 정책을 제시했다. 이 중 ‘교제 성공 지원 정책’이 논란이 됐다.
장 연구위원은 이성 교제를 성공시키기 위해 정부가 만남을 주선하거나 사교성을 개선해 주거나 자기 개발을 지원하는 방안을 예시로 들었다. 여성을 1년 조기 입학시키는 방안도 제시했다. 장 연구위원은 “남성의 발달 정도가 여성의 발달 정도보다 느리다”며 “여성들을 1년 조기 입학시키면 향후 적령기 남녀가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같은 연령대의 남성과 여성이 경쟁하면 남성이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에 남성을 늦게 입학시키자는 학계 일각의 주장과 맞닿은 것으로 보인다.
비혼 출산을 혼인 출산과 적대적 관계로 상정한 것도 논란이 되는 대목이다. 장 연구위원은 “결혼하지 않는 교제를 지원하거나, 동거를 조장하거나, 동거 출산을 지원하는 정책은 결혼과 결혼해서 출산하는 것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랑스 등에서 시행하는 비혼 출산 지원 정책을 국내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 “결혼 출산의 유인을 낮추고 결혼·출산 혼인가구를 줄일 수 있다”며 “명확한 실증 증거 없이 채택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은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혼인 가정이든 비혼 동거 가정이든 출산했을 때 얻는 불이익을 줄여주는 방향이 출산율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학계 주장과도 동떨어진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세계적으로 혼인 출산과 비혼 출산의 경계를 해체하고 국가가 비혼 출산까지 포용함으로써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 왔다”며 “전 세계적인 연구 결과에도 반대되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밖에도 장 연구위원은 청·장년층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피부양인구(노인층) 이민 유출’ 등 논란이 될 만한 정책을 여럿 제시했다.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 정책은 2022년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이 추진하려다가 여론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는 박 전 장관의 사퇴로까지 이어졌다. 장 연구위원은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에 대해 “보다 어린 나이에 생산가능인구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유효한 검토 대상”이라고 썼다. 피부양인구를 물가가 저렴하고 기후가 온화한 국가로 이주하게 하는 방안도 “생산가능인구 비중을 양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구 정책을 국가주의적 관점으로만 검토해 여성·노인 차별적인데다 반인권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신 교수는 “저출산 정책이 효과적이지 않은 것은 ‘개인의 자유를 인정해달라’는 국민의 마음과는 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장 연구위원의 글은) 이와 완전히 반대된다. 기본적인 인권도 침해하는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연구원의 공식 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저출생 정책 연구를 자임하는 연구기관이 소속 연구위원의 비상식적인 주장을 담은 원고를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실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달 17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위탁을 받아 중앙부처 및 지자체의 인구정책을 평가하는 인구정책평가센터를 개소했다. 연구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본고의 요지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응할 개연성이 있는 모든 정책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중 옥석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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