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인대 파열로 축구 그만두고 피자 장인된 영셰프...“이탈리아서 태극기 휘날릴게요” [푸디人]
하루하루 급박하게 살아갈 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흘러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그때 당시 벌어진 일에 너무 좌절하고 지나치게 자학한 건 아닌지라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어떤 이는 ‘자신의 인생은 끝’이라며 낙담해 파국을 향하기도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불행을 통해 더 큰 불행을 피하거나, 더 나아가 자신에게 보인 새로운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기도 합니다.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피자 이올로(장인)’라는 길을 운명적으로 택한 오태식 ‘더 키친 일 뽀르노’ 피자 총괄 셰프(34)는 후자의 경우였습니다.
축구선수가 꿈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전·후방 십자인대가 모두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푸른 잔디 위에서 최고의 선수를 꿈꾸던 그에게 하늘이 두쪽 나는 절망의 순간이었죠. 운동이 전부였던 그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용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동네 인근 ‘미스터피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죠. 축구공이 아닌 피자가 그의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19살부터 20살까지 알바를 하면서 요리, 특히 피자가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호텔에서 요리하던 누나의 권유로 호텔에서 1년간 일하다가 아예 정통 나폴리식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살바토레 쿠오모’로 옮겨 본격적으로 피자를 배우기 시작했죠.”
오 셰프는 6월 17일부터 19일까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리는 ‘제 21회 나폴리 피자 세계챔피언십(CAMPIONATO MONDIALE DEL PIZZIUOLO)’에 참가합니다. 안티모 카푸토 밀가루(Antimo Caputo Flour) 회사가 후원해 일명 ‘트로페오 카푸토컵(Trofeo Caputo Cup)’으로도 불리는 이 대회는 전 세계 최고의 나폴리 피자이올로를 뽑는 글로벌 무대입니다.
오 셰프는 2017년 이 대회에서 두 명이 팀을 이루는 국가대항전 성격인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2등을 수상했습니다. 이때 선보인 ‘지오반니 피자(Giovani Pizza)’는 그의 이탈리아 이름을 따서 만든 창작 피자인데, 피스타치오 등 견과류와 햄이 토핑으로 들어갔으며 지금까지도 ‘더 키친 일 뽀르노’를 대표하는 피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해 개인 자격으로 처음 참가해 ‘Classica(창작)’ 부문에 나갔지만 등수가 10위권 밖을 기록해 아쉬움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이탈리아 대회에 나가보니 기온이 40도에 육박할 만큼 덥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하다 보니 반죽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어요. 약 1000여명이 참가해 대회장에서 대기 시간도 길어 힘들었죠. 작년 성적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많아 올해는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각오로 피자 실력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어도 1년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올해에는 Classica(창작) 외에도 S.T.G(마르게리따), Stazione(계절) 등 3개 부문에 참가할 예정이라네요. S.T.G 부문은 전통적인 방법에 맞게 마르게리타와 마리나라를 만들고, Classica 부문은 나폴리 피자 기본은 지키되 토핑에서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Stazione(계절) 부문은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계절의 특성을 잘 표현한 피자를 선보여야 합니다.
“피자를 만들고 나면 심사위원들한테 자신의 피자를 설명하는 시간이 있는데 통역을 통해 소통하는 건 조금 부족한 감이 있어서 직접 설명하려고 합니다. 나폴리 피자 문화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심사포인트로 작용하거든요.”
이런 오 셰프가 만약 부상을 당하지 않고 축구선수를 계속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운명은 참 얄궂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시련속에서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고 묵묵히 계발해온 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극기 흔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길 응원합니다!
참고로 오 셰프외에도 한국에서 총 29명의 피자이올로가 대회에 참가한다고 하네요. 이들에게도 행운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 어떤 수련 과정을 거쳤는지?
▶전문적인 요리 교육을 받지 않고 현장에서의 조리 경험과 수련을 바탕으로 성장했습니다. 일본의 정통 나폴리식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살바토레 쿠오모’에서 2010년부터 나폴리 피자 교육을 받았죠. 셰프 마코토 오니시, 켄고 요시노, 로베에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정말 좋았습니다. 아울러 ‘APN 나폴리피자 장인협회 한국지부’가 탄생한 2017년부터는 국내외 피자이올로들과 꾸준히 교류하고 공부하며 스킬을 쌓았어요. 요리학교 출신이 아니기에 차이를 극복하고자 더욱 매진했던거 같습니다.
- 살바토레 쿠오모는 어떤 곳인지?
▶2009년 서울 도산공원에 국내 첫 매장을 열었고 현재 ‘더 키친 일 뽀르노’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나폴리식 이탈리안의 대중화를 이끈 ‘살바토레 쿠오모’ 셰프의 이름을 딴 브랜드로 현재도 일본과 자카르타 등지에서 성업 중입니다.
- 요리를 후회한 적은 없는지?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게 너무 좋았어요. 남들은 피자 만드는 게 쉬워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고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화덕에서 피자를 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 끝나고 남아서라도 열심히 하자’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 피자는 언제 처음 만들었는지?
▶제가 21살 때였어요. ‘살바토레 쿠오모’에서 있을 때였죠. 피자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선배 셰프들한테 부탁해 새벽에 남아 만들었습니다. 제 돈으로 밀가루 사서 반죽을 계속 쳐보면서 저만의 노하우를 쌓아온 것이죠.
▶피자의 가장 큰 매력은 매일매일 만들 때마다 다른 것과 만드는 이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폴리에서는 피자를 만드는 장인을 일컫어 ‘피자이올로(Pizzaiolo)’라고 할 정도죠. 물, 소금, 이스트, 이탈리안 밀가루 네 가지 재료로 만드는 도우의 컨디션에 따라 쫄깃함 혹은 바삭함이 각양각색입니다. 토핑 또한 마찬가지로, 무조건 많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죠. 미니멀한 재료로 절묘하게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맛의 균형을 찾아내는 것이 나폴리식 피자의 핵심입니다. 특히 485도의 고온을 유지하는 화덕에서 1분 30초 만에 빠르게 구워내는 스킬은 피자이올로 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 결과가 너무나 달라지기에, 늘 집중해서 최상의 조리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 피자 도우를 만드는 비법이 있는지?
▶반죽은 주로 점심 이후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에 만들고 있습니다. 반죽을 만들기 위한 저만의 비법 같은 게 있는데요. 먼저 물에 소금을 풀어줍니다. 그런 다음 밀가루를 세 번에 나눠서 넣어 줍니다. 팀원들한테는 이렇게 설명해요. 우리가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 갑자기 차가운 물에 들어가면 온몸이 찌릿하잖아요? 밀가루도 우리와 같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밀가루가 스트레스를 덜 받게끔 한 번에 다 붓지 않고 조금씩 나눠서 넣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물과 밀가루가 잘 섞이게 천천히 돌려주면서 이스트(효모)를 넣어 반죽하고 약 250g씩 잘게 나눈 다음에 약 18시간가량 숙성고에서 숙성합니다. 숙성된 도우는 다음날 냉기를 빼주고 피자를 만드는데 도우는 반드시 하루 전에 만든 것만 쓰고 남으면 모두 폐기합니다.
- 하루에 피자를 몇 개 만드는지?
▶하루에 보통 80~90개 만들고 주말에 많이 만들 때는 100개도 만듭니다. 저는 역삼 센터필드 점 외에도 광화문 등 더 키친 일 뽀르노 매장을 돌아다니며 후배들과 같이 만들고 있습니다.
- 피자는 자주 먹는지?
▶저는 하루에 한 판씩 무조건 먹습니다. 왜냐하면 피자는 파스타와 달리 간을 볼 수가 없어요. 조금만 먹어도 티가 나기 때문이죠.
- 올해 이탈리아 대회서 어떤 피자를 선보일 건지?
▶Classica 부문에서 선보일 피자는 비앙코 제노베제 피자(Bianco Genovese Pizza)입니다. 비앙코 제노베제 피자는 흰색과 초록색이라는 뜻으로 바질 패스토, 마리네이드 체리토마토, 리코타치즈, 그리고 부팔라 모짜렐라 치즈가 들어가죠. 깔끔하고 세련된 맛이 돋보이는 피자입니다. 6월 12일부터는 일 뽀르노의 여름 시즌 피자로 판매할 예정이에요.
- 일 뽀르노 나폴리 피자의 특별함은?
▶나폴리가 위치한 캄파냐주에서 자라는 산마르지아노 품종의 토마토를 사용하여 만든 토마토소스와 물소 우유로 만든 부팔라 모짜렐라치즈 두 가지 재료를 나폴리 현지에서 직수입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재료와 미묘한 차이가 있어, 두 가지 재료만큼은 꼭 직수입 제품을 고수하고 있죠. ‘산마르지아노 토마토 소스’는 산미와 당도의 균형이 좋은 진한 맛, ‘부팔라 모짜렐라 치즈’는 높은 수분감과 깔끔한 고소함이 특징입니다.
“재미있게 요리해야 맛있는 음식이 나옵니다. 요리뿐만 아니라 삶에 많은 부분에서 즐기면서 재밌게 해낼 때 가장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것이죠.”
요리가 전부인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도 명확했습니다. 피자이올로로서 더 맛있는 피자를 만드는 동시에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선배로서 업계에서 활약하는 것이죠.
“맛있는 피자를 지속해서 개발하고 싶은 것이 가장 큰 개인적인 목표입니다. 또한 현재 몸담고 있는 ‘더 키친 일 뽀르노’의 브랜드답게 화덕 피자 이외에 화덕을 활용한 요리를 개발하고 싶어요. 그리고 ‘더 키친 일뽀르노’에서 15명의 피자이올로를 이끌고 있기에 함께하는 친구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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