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ISDS 사건 첫 ‘전부 승소’···“국내법 위반 중국적 투자자, 보호 못받아”
한국 정부가 “한·중 투자협정(BIT)을 위반했다”며 중국 투자자가 제기한 투자자-국가간 분쟁 해결 절차(ISDS) 사건에서 전부 승소했다. 중재판정부가 “한국 국내법을 위반한 불법적인 투자는 투자협정상 보호되는 투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정부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다.
법무부는 중국 국적 투자자 민모씨가 2020년 8월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S 사건에서 지난달 31일 정부의 전부 승소 판정이 선고됐다고 2일 밝혔다. ISDS는 양자간 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해 투자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투자국을 상대로 제기할 수 있는 중재 절차다.
민씨는 2007년 중국 베이징 화푸빌딩을 매입할 목적으로 한국에 회사를 설립하고 우리은행으로부터 3800억원에 달하는 PF(프로젝트파이낸싱)대출을 받았다. 당시 우리은행은 대출의 대가로 민씨가 소유하고 있던 회사 주식에 대해 담보권을 설정했다. 우리은행은 민씨가 대출 상환에 실패하자 담보권을 실행해 민씨의 주식을 외국 회사에 팔았다. 민씨는 담보권 실행이 부당하다며 민사 재판을 청구했지만 2017년 패소했다. 민씨는 대출을 받기 위해 우리은행 임직원에게 대가를 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같은 해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민씨는 우리은행의 담보권 실행과 민사법원의 판결이 위법한 수용에 해당하며, 민·형사 소송에서의 법원 판단과 수사기관의 수사 등이 투자협정상 사법 거부 및 공정·공평대우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민씨가 주장하는 투자는 불법적 투자이므로 투자협정상 보호되는 투자에 해당하지 않고, 법원 판단과 수사기관 수사는 적법하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 주장을 받아들였다. 한·중 투자협정 해석상 ‘투자 사용의 목적’이 국내법에 부합할 것이 요구되며, 관련 수사 과정에서의 민씨 진술 등에 따르면 민씨의 투자는 그 목적의 불법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또 민씨가 우리은행으로부터 부실대출을 받을 위법한 목적으로 회사를 설립했기 때문에 그 회사 주식은 한·중 투자협정상 보호되는 투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 사건에 대한 중재판정부의 관할권이 인정되지 않아 다른 쟁점은 더 살펴볼 필요가 없다며 민씨 주장을 전부 기각했다. 중재판정부는 민씨가 한국 정부의 법률 비용과 중재 비용을 합한 약 49억1260만원과 이를 지급할 때까지의 이자를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민씨는 최초에 약 14억 달러(약 2조원), 최종적으론 약 1억9150만 달러(약 2641억원) 이상의 손해배상을 한국 정부에 청구했다. 법무부는 “4년 동안의 치열한 공방 끝에 중재판정부가 우리 정부의 완승을 인정한 사건이자, 본안 심리 절차까지 진행해 최초로 전부 승소한 ISDS 사건”이라며 “국내법상 위법한 투자는 ISDS에서 보호받지 못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올해 5월 기준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S 사건은 총 10건이다. 앞서 정부는 외국계 펀드인 론스타, 엘리엇, 메이슨이 제기한 ISDS 사건에서 잇따라 패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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