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도입, 일반투자자도 영향…단타·손절매 급증할 것"
“부양가족 인적공제 못 받는 사람 수십만명 넘을 것”
내년 도입이 예정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적용될 경우 개인투자자와 금융투자업계 등 자본시장에 예상치 못한 악영향이 직간접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큰손 투자자들이 금투세 납부를 피하기 위해 성장주 투자와 장기투자에서 손을 떼고 단타매매와 해외증시로 쏠리면 결국 국내 증시 동력이 확 떨어질 수 있다는 예상이다.
금감원, 금투세 전문가 간담회 개최…“위험부담 크다” 우려 나와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금감원이 개최한 금융투자소득세 관련 시장전문가 등 간담회에서 금투업계 관계자들은 금투세 도입시 자본시장 안팎에서 당초엔 예상치 못했던 각종 부작용과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날 간담회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주최로 비공개로 열렸다. 주식중개·사모운용·채권투자 담당자, 프라이빗뱅커(PB)를 비롯한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와 금융조세 분야 학계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금투세는 국내주식에서 5000만원, 해외주식과 기타 금융상품에서 250만원 이상 이익이 날 경우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연간 국내주식과 국내 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 매매차익 등에 대해선 수익 5000만원 초과분부터, 해외주식·펀드·채권 투자 이익 등에 대해선 250만원 초과분부터 세금을 뗀다. 세금 부과선부터 3억원까지는 22%(지방소득세 포함), 3억원 초과분에 대해선 27.5% 세율을 적용한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자본시장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예민하게 갈리고, 수많은 다양한 참여자가 있어 제도 설계 과정에서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간담회에 참석한 많은 전문가들이 금투세는 적절한 과세수익 획득을 비롯한 세제상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는 반면 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예상 못했던 부작용 우려…단기매매와 손절매 쏠릴 것”
이날 회의 참석자들은 “금투세가 투자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한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금투업계에선 금투세가 도입될 경우 투자자들이 세금 납부를 피하기 위해 단기매매와 해외증시 등으로 쏠릴 것이란 예상이 여럿 나왔다. 이미 '큰손' 고액자산가를 비롯한 투자자들 사이에서 금투세 도입을 우려해 보유 중인 국내 주식 포트폴리오 매도 시점을 저울질하는 움직임이 많고, 과세를 피하기 위한 매도 방법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는 게 금투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금투세가 그대로 시행되면 해외주식으로 쏠림이 심해지고,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 시장에선 손익통산을 받기 위해 장기보유할 상품도 단기간에 처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많았다”라며 “금투세가 장기투자보다는 단기매매나 매도를 촉발할 것이란 얘기”라고 했다.
그는 “금융투자 수익이 5000만원을 초과한 이라면 순순히 세금을 내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손실 가능 주식을 팔아 손실을 인식하는 식으로 과세 대상이 되기를 피하는 등 각종 투자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늘면 과세 대상이 아닌 사람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성장주에 대한 투자 이익은 그만큼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해 얻은 이익인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금융투자에 대해 (일괄적으로) 과세한다면 위험상품에 대한 투자보다는 회수가 확실시되는 것들로만 투자가 쏠릴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제도 도입 자체가 투자자들에게 심리적 영향을 줌으로써 자본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금투세 도입에 따라 투자에 대한 세후 기대수익률이 줄면 전반적인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잠재적 투자자들의 시장참여도 저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금감원은 “투자자는 미래 투자수익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자본시장에 참여한다”며 “금투세가 도입돼 투자심리가 저해되면 자산규모를 따질 것 없이 모든 투자자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특히 자본시장에서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가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액자산가 등 투자자들의 단기매매가 급증할 경우 증시 전반에 변동성이 커지기 때문에 결국엔 과세대상자가 아닌 '소액 개미'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금투세는 펀드 분배금을 배당소득으로 잡아 과세하기 때문에 사모펀드 시장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 원장은 “사모펀드 자산운용 주요 대상이 주식이고, 주식에서 발생하는 배당 등이 주 수익원인 만큼 사모펀드를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고율 과세 대상이 될 수 있어 사모펀드 시장에도 리스크가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했다.
“부양가족 인적공제 못 받는 사람 수십만명 될수도”
회의 참석자들은 금투세가 시행되면 일반 투자자들도 연말정산 환급금이 줄고, 건강보험료가 인상될 수 있다는 지적도 했다. 기존엔 세법상 소득으로 간주하지 않았던 금융소득이 반영되는 까닭에서다.
금투세가 도입되면 금융투자 소득이 과세 대상 소득으로 분류된다. 기존엔 대주주가 아닐 경우 투자자가 주식매매로 거둔 이익에 대해선 과세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따라 부양가족이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해 연간 100만원을 초과하는 이익을 본 경우엔 부양가족으로서 1명당 150만원까지 공제해주는 종합소득공제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소득공제 규모가 줄어들면 과세표준이 높아져 연말정산 환급금이 줄어들 수 있다.
금투세가 도입되면 금융투자 수익이 건보료 산정 범위에도 새로 포함된다. 세법상 소득이 늘어나면서 건보료가 추가로 부과될 수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에 대해 “한 증권사가 자체적으로 내부 분석을 한 결과 금투세가 도입될 경우 기본공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사람들이 수십만명에 달할 수 있다는 결과가 있었다”며 “개별 증권사 이상으로 범위를 좀더 넓히면 영향받는 이들이 더 많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는 최초 제도 설계부터 깊이 고민하지 못한 지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며 “금감원도 내부 효과분석 등을 통해 영향을 수치화해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회의 참석자는 “개인 소득공제 등에 대해선 지난 4년간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었던 일”이라며 “이외에도 아직 충분히 진단되지 않은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어 혼선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손익통산 허용, 금융상품 과세체계 합리화” 의견도
한편 학계 등에선 금투세의 도입 취지 등을 옹호하는 의견도 나왔다. 금융투자에는 이익과 손실 가능성이 함께 따르는 만큼 금투세가 양 측면을 모두 고려한 조세체계 합리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금융투자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는 큰손 투자자들은 소득이 발생할 경우 과세가 되지만 손실에 대해선 별다른 공제를 받지 못한다.
반면 금투세는 자본이득에 대해 손익통산을 적용해 과세하는 제도다. A종목에서 5000만원 이득, B종목에서 500만원 이득을 보고 C종목에서 200만원 손실이 난 투자자라면 기본공제분 5000만원을 제외한 손익통산분 300만원에 대해서 세금을 적용받는다는 얘기다. 투자 손실이 날 경우 손실금을 5년간 이월해 향후 수익이 발생한 경우 손실금 만큼에 대해선 세액을 공제받는 손실 이월공제도 적용될 예정이다.
'소득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조세 원칙을 들어 금투세 도입에 찬성한 참석자도 있었다. 금감원은 “금투세가 기존 금융상품 과세체계를 합리화해 장기적으로는 자본시장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이 있었다”고 했다.
과세대상 규모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기획재정부는 2020년 금투세 과세 대상자를 약 15만명으로 추산했다. 2019년 기준으로 12월 결산 상장법인 주식 소유자(중복 제외)의 2.5% 수준이다.
이날 회의석상 일각에선 최근 개인투자자의 주식투자와 채권투자가 크게 증가한 점을 들어 과세대상이 당초 예상치보다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채권투자의 기본공제 한도는 250만원에 그치는 만큼 새롭게 세금을 내야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란 예상이다.
반면 국내 주식투자에 대해선 기본공제 금액(매매차익 5000만원)이 높아 과세 대상이 일부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인프라 구축에만 수천억원 들 수도”
회의 참석자들은 새 조세제도 도입을 두고 납세 실무 관련 어려움과 인프라 비용도 막대할 것이라는 의견도 내놨다. 이미 원천징수와 확정신고 등 각종 절차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와 문의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증권업계 내에서도 대형 증권사들은 금투세 관련 시스템이 상당히 준비돼있는 등 회사별로 전산시스템 준비 상황이 다르고, 자금여력과 인적자원에도 차이가 있다”며 “금투세를 시행할 경우 한동안은 현장에서 혼란이 클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다”고 했다.
이어 “원천징수 등 각 경제주체들이 관련 인프라를 정비하려면 몇백억이 아니라 몇천억원 이상이 들 수도 있다”며 “금투세 도입 시점 내에 인프라를 갖출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고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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