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는 소리, 봉봉봉봉봉봉봉봉~뿅!

정인환 기자 2024. 6. 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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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겨울을 나는 대표적 월동 작물은 마늘, 양파, 시금치다.

추석 지나 찬 바람 불면 고구마를 캐고, 그 자리에 마늘과 양파를 낸다.

지난 가을 마늘은 낙엽과 캐낸 고구마 줄기로 두툼하게 덮어줬고, 양파는 수확을 늦춘 배추를 덮어줬던 두 겹 비닐로 터널을 만들어줬다.

다행히 마늘과 양파 모두 무탈하게 겨울을 나 씩씩하게 황량한 밭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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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들]경기 고양편
살살 달래며 뽑아낸 마늘종에선 알싸한 마늘 향이… 열무와 시금치도 수확
연초록으로 화사한 갓 수확한 마늘종에서 알싸한 마늘 향이 퍼진다.

텃밭에서 겨울을 나는 대표적 월동 작물은 마늘, 양파, 시금치다. 추석 지나 찬 바람 불면 고구마를 캐고, 그 자리에 마늘과 양파를 낸다. 마늘은 그해 초여름 수확하고 남겨둔 씨마늘을 심거나, 종자용을 한 됫박 사다 심는다. 양파는 줄기가 10~15㎝ 정도 올라온 모종을 심는다. 최소 서너 달 추운 날씨를 버텨야 하니 낙엽이나 작물 부산물 등으로 멀칭(지표면을 덮어 작물을 관리하는 방법)을 해줘야 한다. 지난 가을 마늘은 낙엽과 캐낸 고구마 줄기로 두툼하게 덮어줬고, 양파는 수확을 늦춘 배추를 덮어줬던 두 겹 비닐로 터널을 만들어줬다.

겨우내 그리워하다 2월 말~3월 초 다시 밭에 나가면 겨울을 버틴 월동 작물 안부부터 확인한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마늘과 양파 모두 무탈하게 겨울을 나 씩씩하게 황량한 밭을 지키고 있었다. 기특하고 뿌듯했다. 앙상한 줄기만 유지하던 마늘과 양파는 날이 풀리면 참고 있던 생명력을 뽐낸다. 줄기에 초록빛을 더해가며 왕성하게 키를 키운다. 해가 뜨겁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5월 말이면 양파는 제법 알이 굵어지고, 마늘은 꽃대를 올린다. 흔히 건새우나 잔멸치와 함께 볶아 먹는 마늘종이 바로 마늘의 꽃대다.

10여 년 전 주말농장을 시작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마늘종을 뽑아봤다. 마늘 줄기 한가운데서 조금씩 나오기 시작해 이즈음이면 제법 길쭉해져 늘어진다. 2024년 5월25일 오전 밭에 갔더니 1주일 전까지 보이지 않던 마늘종이 군데군데 올라왔다.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안도현, ‘너에게 묻는다’)고 노래했는데, 마늘종이야말로 함부로 뽑으면 안 된다. 힘을 줘 쑥 뽑을라치면 바로 뚝 하고 끊어진다. 살살 달래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뽑아야 한다. 마늘종을 밑동까지 제대로 뽑아 올리면 ‘봉봉봉봉봉봉봉봉~뿅’ 하는 소리가 난다. 마늘종도 마늘이라, 방금 뽑은 마늘종을 툭 끊어 씹으면 알싸한 마늘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여름이 다가오는 맛이다.

작물로 꽉 찬 밭을 조금씩 비우면서 새 작물을 심어야 할 시점이 됐다. 뿌린 지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 된 열무와 시금치를 가장 먼저 수확한다. 시금치는 벌써 두어 차례 솎으면서 수확했는데, 줄기가 너무 커버려 다 뽑기로 했다. 열무는 솎아가면서 조금 더 키워도 되겠다 싶은데, 다른 작물한테 자리를 양보하기로 했다. 시금치와 열무를 다 뽑은 자리에 퇴비를 한 포씩 넣고 서리태와 팥을 뿌렸다. 뽑은 시금치와 열무를 쌓아놓고 나면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막내는 이미 자기 몫 다 챙겼다며 발을 뺀다. 밭장이 사람 좋은 표정으로 “형 다 하시오” 한다. ‘앗, 졸면서 밤까지 채소 다듬게 생겼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협박과 협잡을 한참이나 넘나들다 결국 남은 시금치는 밭장이, 열무는 내가 떠맡기로 했다. 시장에 내다 팔면 두세 단 정도는 될 거 같은 열무를 커다란 노랑 봉투에 담아 집으로 데려왔다. 상품용 열무는 쉽게 다듬을 수 있지만, 크기가 제각각인 텃밭 열무는 한참 공을 들여야 한다. 다 다듬어 절여서 씻고 나니 저녁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났다. 풀 쒀 양념 만들어 무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 파가 없네. 파가 없어. 어차피 오늘 김치 못 담그네.’ 곁가지로 수확해 신문지로 돌돌 말아 데려온 돌산 갓까지 그대로 냉장고에 넣었다. 여름이 오고 있다.

글·사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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