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타격 허용’ 서방 무기, 우크라전 판세 바꿀까···“게임체인저는 아냐”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일부 허용하면서 전쟁이 분수령을 맞을지 주목된다. 서방 동맹국들이 확전을 피하기 위해 2년 3개월간 지속해온 조치를 풀며 다시 한번 스스로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은 셈이지만, 정작 전세에는 큰 변화를 주지 못하면서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일(현지시간) BBC는 미국 정부가 러시아 영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자국산 무기에서 에이태큼스(ATACMS) 등 장거리 미사일을 제외하면서 이번 조치가 전쟁의 판세를 뒤집기에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정부가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한 무기는 사거리 70~80㎞의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하이마스)과 다연장 로켓발사시스템(GMLRS), 야포 체계 등이다. 독일 정부는 각각 84㎞, 40㎞ 떨어진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다연장로켓발사시스템 MARS2, 자주곡사포 PzH2000이 사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사거리가 300㎞에 달하는 미국산 에이태큼스를 동원한 본토 공격은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다.
전쟁 초기 서방은 러시아 본토 공격에 사용될 것을 우려해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을 지원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줄기찬 요구에 전선 상황도 악화되자 영국과 프랑스는 사거리 240㎞의 스톰섀도(프랑스명 스칼프) 미사일을, 미국은 에이태큼스를 우크라이나에 보내며 러시아 본토 공격에 사용하지 말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서방의 이런 전제 조건 때문에 우크라이나군은 그간 국경 너머 러시아를 산발적으로 공격할 때도 자국산 드론을 주로 이용해 왔다.
최근 러시아가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가 있는 북동부 지역에 파죽지세로 진군하자 서방 지원 무기로 ‘방어’를 넘어 ‘공격’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우크라이나 측 요구가 커졌다. 결국 미국과 독일 등 서방 주요 국가들은 숙고 끝에 국경 너머 러시아 목표물도 타격할 수 있도록 일부 제한을 풀었다. 하르키우는 러시아 국경에서 불과 30㎞ 떨어져 있다.
BBC는 미국이 에이태큼스를 활용한 본토 타격을 금지한 것은 여전히 “확전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에이태큼스 미사일은 러시아 영토 내 주요 군기지와 비행장을 타격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짚었다. BBC는 이런 제한으로 인해 우크라이나가 국경 근처의 목표물만 공격할 수 있게 됐다며 “사거리가 더 짧더라도 하이마스 같은 다연장로켓발사기는 국경에서 러시아군의 작전과 군대 이동을 방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BBC는 스톰섀도에 대해선 영국과 프랑스가 그 사용 여부를 명시적으로 제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미 CNN도 군사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번 조치가 ‘게임 체인저’가 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미 전쟁연구소(ISW)의 카테리나 스테파넨코 연구원은 “우크라이나가 북동부에서 러시아의 공세를 둔화시킬 수는 있지만, 깊은 후방은 여전히 타격할 수 없기 때문에 하르키우 인근에서의 변화만으로 전쟁의 ‘터닝 포인트’가 되기에 부족하다”고 CNN에 말했다.
유럽정책분석센터의 마티외 불레그는 “이번 조치는 우크라이나가 공격을 격퇴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데 있어선 더 효율적”이라면서도 “우크라이나 방어의 촉진제일 뿐, 그 자체로 게임 체인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스스로 그었던 ‘레드라인’을 또다시 넘어섰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러시아는 “비례적 대응”(마리아 자하로바 외교부 대변인)을 경고한 데 이어 “비대칭적 보복”(안드레이 카르파톨로프 하원 국방위원장)으로 대응 수위를 높이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최근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들이 “영토가 작고 인구가 밀집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그들은 러시아 영토 깊숙한 곳에 대한 공격을 논의하기 전에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까지 경고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러시아 역시 확전을 피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앞서 러시아가 ‘자국 영토’로 간주하는 크름반도는 이미 여러 차례 영국·프랑스가 지원한 스톰섀도 미사일로 공격받았고, 그때마다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고 유럽에 경고했지만 딱히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CNN은 “27개월간의 전쟁 내내 매번 (서방이 설정한) ‘금기’가 깨졌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짚었다. 스테파넨코 연구원은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 점령지에 대한 공격을 ‘러시아 본토 공격’으로 간주해 왔지만, 현실은 러시아가 전쟁을 확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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