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투세 폐지' 총대···"수십만명 손해, 투자자 엑소더스"
"연말정산 등 손실···장투 사라지고 자금 해외 이탈"
'집값 폭등' 부동산 대책도 거론···"제도 재조정 해야"
"손실 감수 투자는 과세 달라야···정치권과도 소통"
"금리 등 환경도 달라져···상속세도 주가 영향 봐야"
정부가 내년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추진하는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장기 투자자 이탈이 우려된다며 다시 한 번 이에 힘을 보탰다. 이 원장은 연말정산 등 금투세 시행으로 직·간접적인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이 수십만 명은 된다며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금투세 관련 시장 전문가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진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이 밝혔다. 이 원장은 “연말정산 공제 등에서 손해를 입는 사람이 몇천 명, 몇만 명이 아니라 몇십만 명 단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시장전문가들의 우려가 있었다”며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 등을 통해 국내 주식을 정리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산운용 업계에서는 금투세가 그대로 시행되면 해외 주식 투자 쏠림이 심화되고 장기 투자 보유분 단기 환매가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며 “투자자들이 주식으로 5000만 원이 넘는 이익을 얻으면 세금을 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팔아서 이를 피하려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투세는 국내 주식에 대해서는 5000만 원, 채권·파생상품 등 다른 모든 금융투자 상품에 대해서는 250만 원을 초과한 수익에 세금을 매기는 제도다. 지금은 주식을 일정 규모 이상 보유한 대주주에게만 주식 양도세를 물고 나머지 소액 주주들에게는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다. 금투세는 애초 지난해부터 적용하기로 했다가 여야 합의를 거쳐 내년까지 2년 유예된 상태다. 현재 야당은 금투세를 예정대로 내년부터 시행하자는 입장인 반면 해당 제도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우리 증시에서 엄청난 자금이 이탈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재천명했다. 이 원장 역시 4월 간담회에서 금투세를 폐지해 달라는 개인투자자들의 요구가 빗발치자 ‘금투세 유예 논의’까지 비판하며 “비겁하다”고 쏘아붙인 바 있다. 그는 지난달 금융투자협회 국제 세미나에서도 “금투세 강행은 1400만 명 개인투자자의 혼란이 가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이날도 현 금투세를 그대로 내년부터 시행하는 데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강하게 드러냈다. 과거 정부의 부동산 안정 대책이 역설적으로 집값을 폭등시킨 사례까지 거론하면서 금투세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재설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날 비공개 간담회에 모인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와 금융 조세 분야 학계 전문가들도 현 금투세가 지닌 문제를 앞다퉈 꼬집었다. 이들은 금투세 시행 전 △불분명한 과세 대상 규모 △세후 기대수익률 감소로 인한 투자 심리 위축 △자본시장에서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가 받을 충격 △과세 회피 차익 실현 매물에 따른 주가 상승 제한 △증시 단기 매매 및 변동성 심화 △납세 실무 현장 혼란 확대 △납세 시스템이 미비한 소형 증권사 기피 가능성 등을 두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금투세에 대한 쟁점을 명확히 하고 효과 분석, 문제 의식 공유를 위해 제도에 찬성·반대하는 전문가들을 간담회에 모두 모았다”며 “금투세가 합리적으로 설계된 점을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던 반면 시장에 영향이 큰 제도는 과세 목표를 달성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세 목적의 매수·매도 결정만 없어도 투자자들이 장기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며 “손실 가능성을 감수하고 주식 등으로 얻은 수익에 대한 과세는 확정 소득에 대한 과세와는 다르기 때문에 투자의 특성과 행위자의 심리적 동기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나아가 금투세 폐지·재조정을 위해 다른 정부 부처나 정치권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할 뜻도 밝혔다. 이 원장은 “금투세를 설계할 당시와 비교해 채권 금리, 투자 주체 행태 등 자본시장 환경이 다양하게 변화했다”며 “당장 시끄럽다고 또 시행 시점만 미룰 게 아니라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최소한 구체적인 조정을 거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과세 대상자 수 변동은 세무 당국이 확인할 부분이나 그 사이 주식 투자자와 금융투자 상품도 늘어서 금감원도 협조할 자료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최근 정부와 여당이 거론하는 상속세 완화와 관련해서는 “중견기업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적절히 경영을 승계할 만한 상황을 조성하는지 등을 두고 정부, 국회와 건강하게 소통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며 “일반론적인 입장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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