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최 "이제야 나도 음악가…'신동'은 너무 위험한 단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한국계 줄리안 리 "우리 한국인, 정말 열심히 노력"
최송하·아나 임·유다윤, 입상 불발에도 "역사적 콩쿠르 참가 자체가 의미"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제 기사에 '신동'이라는 말이 붙었던 것 같은데, 어린 음악가에게 그런 단어를 쓴다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2일(현지시간) 세계 3대 클래식 음악 경연대회인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로 입상한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엘리 최(23)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을 따라다닌 수식어가 부담스러웠다는 듯 연합뉴스 등 취재진에게 털어놨다.
엘리 최는 "어떤 함정에 빠지기 쉽다. 사람들이 지나친 기대감을 갖기 시작하면 그 기대에 부응하기가 정말로 어렵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엘리 최는 만 3세 때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일찌감치 '바이올린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엔 '최유경'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국내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2009년 바이올린을 들고 미 NBC 방송 토크쇼에 출연했을 정도다. 그의 모친은 피아니스트 정영은 씨다.
엘리 최는 세계적 권위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데 대해 "물론 항상 그렇게 생각해왔으나, 이제 나름대로 '나도 음악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음악가이면서 미 컬럼비아대에서 경제철학을 전공한 엘리 최는 콩쿠르 참가로 지난 5월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대학에서 공부하며 음악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며 "더 많은 세상과 인간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결선 진출자들과 함께 뮤직샤펠에서 보낸 일주일은 정말 특별했다. 평생을 함께할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며 "(내가) 상을 받았거나 잘해서, 성공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리고 음악가로서, 제가 공연하는 솔리스트로 성장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떠올렸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 진출자들은 일주일간 뮤직샤펠이라고 불리는 음악 고등교육기관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채 결선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 독특한 규칙을 유지하고 있다.
5위로 입상한 한국계 미국인 줄리안 리(24)도 "다른 어떤 경연보다도 (진출자들이) 서로를 훨씬 더 응원했던 것 같다"며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줄리안 리는 "한국인이거나 한국의 뿌리를 가진 많은 이들이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다"며 "우리는 좋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한국인들이 이뤄낸 결과들을 저 역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한국은 2022년 첼로 최하영, 지난해 성악 김태한 등 2년 연속 이 대회 우승자를 배출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결선 진출자 12명 중 한국 국적이 3명, 한국계도 2명이나 돼 주목을 받았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플로리안 리임(55)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 사무총장은 "한국인들은 매우 강하고 준비돼 있다"며 "특히 코로나19 기간에 유럽, 미국에선 디프레션(depression)을 겪었는데, 아시아, 특히나 한국에선 이 기간을 잘 보내고 공연을 잘 준비해서 성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아쉽게 입상권인 6위안에 들지 못한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최송하·유다윤·아나 임은 하나같이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최하영의 동생인 최송하는 "역사적 콩쿠르여서 참여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어렸을 때 영상으로만 보던 곳, 이 기관에 왔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고 전했다.
콩쿠르 주최측은 관례에 따라 별도 상이 수여되는 6위권 이내에 들지 못한 결선 진출자들도 '순위 없는 입상자'(unranked laureats)로 기록하고 있다.
올해 대회 심사위원단에는 강동석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예술 감독과 이경선 서울대 교수 등 한국인 심사위원도 2명 포함됐으며, 주벨기에 한국문화원은 콩쿠르 조직위와 업무협약을 맺고 대회 기간 공식 후원 및 한국인 연주자들을 지원했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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