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쏘렌토, 1등만 사는 비정한 세상…왜몰랐을까, 싸고 좋은 꼴찌車 [세상만車]
비싸도 인기, 가치도 상승세
편승·양떼효과에 ‘승자 독식’
비인기 꼴찌차, 가성비 좋아
세상은 1등만 기억합니다. 1등이 돈도 명예도 모두 차지합니다. 기록도 기억도 승자 독식입니다. 1등이 아니면 기억하지 않습니다. 1등은 ‘초일류’(超一流)로 대접받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외침도 사실은 승자 독식과 성적 지상주의가 팽배했다는 증거입니다.
의대 정원 확대 논란에서도 ‘1등 지상주의’와 ‘특권 의식’이 본색을 드러내기도 했죠.
일반적으로 1등과 2등은 실력에서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운이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차이’가 아니라 ‘차별’이라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로또 1등과 2등 차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이죠.
자동차 세상에서도 1등이 잘 나갑니다. 1등이 되는 순간 더 비싸더라도, 문제가 있더라도 앞 다퉈 구입합니다.
대접받으며 바로 살 수 있는 경쟁차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1년 이상 기꺼이 기다려서 비싸게 삽니다.
신차 시장에서 1등이 되는 순간, 탄탄대로가 펼쳐집니다. ‘맛집’ 인증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홍보가 되고 잘 팔립니다.
양들이 무리 내에서 동떨어지지 않게 집단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을 양떼효과(Herd effect)라고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 인간의 추종 심리를 의미합니다.
편승효과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신념을 따라하고 제품을 구입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고급차의 경우 특정 계층이 소비하는 상품을 구입하면 자신도 그곳에 속한다고 여기는 파노플리 효과로 판매가 증가하기도 합니다.
사회적·경제적 성공을 상징하는 현대차 그랜저, 제네시스 G80, 벤츠 E클래스 등은 파노폴리 효과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양떼·편승효과는 신차 시장과 밀접히 연관된 중고차 시장에도 영향을 줍니다. 신차 1등은 중고차 1등이 됩니다.
중고차 시장에서 인기는 ‘돈’입니다. 중고차 가치가 높아지고 가격도 비싸게 형성됩니다. 중고차 가격이 경쟁차종보다 높게 형성되면 신차 시장에서도 더 잘 팔립니다.
1등은 선순환, 2등 이하는 빈곤의 악순환이 됩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산차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신차는 그랜저입니다.
기아 쏘렌토, 기아 카니발이 그 뒤를 이었죠. 이들 차종은 각각 세단, SUV, 미니밴에서 1등이기도 합니다.
올해 1분기(1~3월)에는 쏘렌토가 생산 이슈가 발생한 그랜저를 제치고 전체 1위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카니발은 전체 3위이자 미니밴 1위, 그랜저는 전체 5위이면서 세단 1위를 기록했습니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지난해와 올해 모두 세단 1위는 그랜저, 미니밴 1위는 카니발이었습니다. 사실상 경쟁차종이 없다고 여겨도 될 정도로 독보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기차를 제치고 다시 친환경차 대표주자가 된 하이브리드 분야에서는 그랜저와 쏘렌토가 1위와 2위를 기록했죠.
시세를 산정하는 중고차 기업인 엔카닷컴에 의뢰해 출고된 지 3~5년 된 2019~2021년식 차종의 중고차 시세를 기준으로 잔존가치를 분석해봤습니다.
2021년식 기준으로 그랜저 2.5 익스클루시브의 잔존가치는 79.0%입니다. 경쟁차종이었던 기아 K7 2.5 GDI 프레스티지는 67.6%입니다.
쏘렌토 하이브리드 2WD 그래비티는 92.1%, 싼타페 4WD 캘리그래피는 83.6%로 나왔습니다. 두 차종 모두 세단보다는 잔존가치가 높았지만 쏘렌토가 싼타페를 큰 차이로 압도했습니다.
출고된 지 3년이면 신차 값에서 30% 안팎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쏘렌토 하이브리드의 경우 감가율이 7.9%에 불과했습니다. 출고된 지 1년이 되지 않은 신차급 중고차에서 볼 수 있는 감가율이죠.
예전보다 인기는 떨어졌지만 지난해까지 국산 중형세단 판매 1위를 기록했던 현대차 쏘나타는 평균 이상의 잔존가치를 기록했습니다.
2019년식 기준으로 쏘나타 2.0 인스퍼레이션의 잔존가치는 60.0%였습니다.
출고된 지 5년 안팎이면 잔존가치가 50% 이하로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쏘나타는 그보다는 높았습니다. 경쟁차종으로 현재는 단종된 르노 SM5 노바 클래식의 잔존가치는 38.5%였습니다.
준중형 세단 1위인 현대차 아반떼도 경쟁차종보다 잔존가치가 높게 형성됐습니다. 2019년식 기준으로 아반떼 1.6 스마트는 70.1%로 나왔습니다.
경쟁에서 밀려 단종된 르노 SM3 네오 SE의 잔존가치는 43.5%에 불과했습니다.
다만, 속상한 일은 신차 구매자에게만 해당합니다. 중고차 구매자 입장에서는 인기가 적은 대신 상태가 좋은 차를 싼 값에 살 기회가 많아집니다.
좀 더 과장을 보태면 같은 연식, 비슷한 성능을 가진 차를 반값에도 살 수 있습니다.
가격이 일정하게 정해진 신차 시장에서는 ‘싸고 좋은 차’가 없지만 중고차 시장에서 있습니다.
인기차 대신 비인기차를 선택하면 구입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1~2년 정도 연식이 짧거나 상태가 좋은 차를 고를 수도 있습니다. ‘싸고 좋은 차’ 조건에 부합합니다.
시세는 차종 인기도, 수급 상황, 경쟁차종, 단종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국산차는 신차로 나온 지 5~6년쯤 되면 ‘반값’이 됩니다. 그 이후 잔존가치 하락폭이 좁아집니다.
5년까지는 매년 평균 10%씩 감가된 뒤 그 이후부터는 매년 감가폭이 좁아집니다. 또 인기 차종과 비인기 차종의 가격차이도 크게 줄어듭니다.
신차 인기도는 출시 이후 5년까지는 중고차 시세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2순위, 3순위, 4순위 등으로 밀려나기 때문이죠.
단, 중고차이긴 직·간접적인 심리적 만족도는 인기차종이 높습니다. 또 많이 팔린 인기차는 부품 수급도 상대적으로 원활하고 정비사들의 숙련도도 높아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중고차를 살 때도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좀 더 추구한다면 인기차종,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높이고 싶다면 비인기차종을 선택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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