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뚫린다” 러시아 위협 커진 폴란드, ‘K-강철비’ 천무 앞세운다 [박수찬의 軍]
한국 육군 수요에 부응해 만들어진 국산 무기가 세계적 관심을 받으며 수출길에 오르고 있다.
수출 아이템으로 주목받는 무기 중 가장 독특한 것이 있으니, 바로 천무 다연장로켓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폴란드가 두 차례에 걸쳐 천무 300대 구매 계약을 맺으면서 천무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폴란드는 왜 천무에 주목했을까. 나토 동부전선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꼽히는 폴란드 북부 지역 정세와 관련이 있다는 평가다.
유럽에선 우크라이나에 이어 러시아와 그 동맹국인 벨라루스의 공격목표로 폴란드 북부를 지목하는 분위기다.
유럽 외교안보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유럽 정보기관들은 수년 내 벨라루스에서 폴란드로 공격이 감행될 수 있다고 본다”며 “러시아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를 육로로 연결하고, 발트3국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고립시키려는 의도”라고 전했다.
또다른 소식통은 “폴란드에선 2014년 크름반도 공격처럼 바그너 그룹을 앞세워 폴란드 북동부를 공격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용병을 내세워 나토 동맹국들이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지목한 곳은 폴란드 북동부 수바우키 회랑이다. 러시아의 동맹국 벨라루스와 러시아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를 연결하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의 폭 65㎞ 육상통로다.
발트 3국과 나토 동맹국을 잇는 유일한 육상통로다. 이곳이 차단되면 발트 3국은 고립된다.
러시아로선 발트함대와 핵탄두 탑재 미사일 등이 배치된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를 육로로 연결하려면 동맹국 벨라루스와 수바우키 회랑을 거쳐야 한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폴란드와 나토 모두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곳이다.
지난해 6월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한 직후 바그너 그룹 용병 수천명이 벨라루스로 이동했다.
폴란드로선 방위력을 강화해야 할 상황이다. 한국산 무기 대량 구매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제는 100㎞ 이상 떨어진 지상 표적을 공격할 육군 무기체계가 없다는 것이다.
폴란드는 180년대 옛소련에서 OTR-21 토치카 단거리 지대지미사일을 도입했으나, 냉전 종식 이후 부품공급 등의 문제로 1999년 이후 실사격이 이뤄지지 않았다. 2005년 관련 부대가 해체된 뒤부턴 단거리 전술미사일 전력이 사라졌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공군기지 등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을 타격하는데 미국산 에이태큼스(ATACMS)와 같은 단거리 전술미사일이 유용하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이에 다라 수바우키 회랑을 둘러싼 긴장 고조로 적 후방 지역을 타격할 전술미사일 필요성 제기됐다. 그러나 에이태큼스는 생산이 중단됐고 미 본토에도 재고가 거의 없다. 그나마 남은 물량은 우크라이나로 보내지고 있다.
폴란드에 수출되는 천무는 이같은 문제를 해소해준다. 수출형 천무는 사거리 80㎞ 유도탄(CGR-80)과 290㎞ 전술미사일(CTM-290)을 운용한다.
에이태큼스 역할을 맡을 CTM-290은 한국 육군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를 개량한 것이다. KTSSM은 시험사격에서 표적 정중앙을 맞출 정도로 명중률이 높다.
CTM-290은 KTSSM의 탄두를 광역제압용 탄두나 고폭탄 등으로 바꿨다. 러시아나 벨라루스 등이 북한군처럼 지하시설을 대량으로 건설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미사일 탄두중량을 줄이면 비행거리가 늘어나는 원리를 이용해 탄두 무게를 500㎏ 정도로 낮춰 사거리를 연장했다.
다만 최대 사거리 300㎞ 이상의 미사일 판매에 제약을 두는 미사일통제체제(MTCR)에 저촉되지 않도록 비행거리를 다소 조정했다.
CTM-290은 지난달 충남 안흥 소재 국방과학연구소(ADD) 시험장에서 실제 사격이 이뤄졌고, 미사일은 200초 동안 비행해서 표적에 명중했다.
천무와 함께 CTM-290을 도입하게 되면 폴란드로서는 약 20년만에 지대지 전술미사일 운용능력을 회복하는 셈이다. 현재 개발중인 사거리 160㎞ 유도탄도 사용하면, 천무의 공격력은 더욱 높아진다.
폴란드 수출형은 폴란드가 생산중인 옛소련산 122㎜ 로켓탄을 컨테이너 1개당 20발을 쏠 수 있다. 러시아군 BM-21 다연장로켓과 구경은 같으나 명중률과 발사속도 등은 훨씬 빠르다.
폴란드가 K-2PL 전차 도입 계약에 앞서 천무 구매를 먼저 추진한 것도 천무가 지닌 차별화된 성능에 힘입은 바 크다는 평가다.
향후 천무가 폴란드 육군에 전력화되면, 미국산 하이마스(HIMARS)가 우크라이나에서 활약했던 것과 유사한 개념으로 운용되면서 강력한 전략적 억제력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본 폴란드는 전력증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장거리 전략 타격력과 국경 방어 능력 등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다.
블라디스와프 코시니악-카미쉬 폴란드 국방부장관은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록히드마틴이 생산하는 재즘 이알(JASSM-ER)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폴란드군은 7억3500만 달러를 투입해 재즘 이알 340기를 2026~2030년에 도입할 예정이다.
재즘은 합동직격탄(JDAM)과 합동지대지유도탄(JSOW)에 쓰이고자 개발된 항법체계를 중거리 유도용으로 사용하는 장거리 공대지무기다.
재즘 이알은 엔진을 교체하고 내부연료탱크 용량을 늘리는 형태로 사거리를 연장했다. 그 결과 사거리는 약 1000㎞에 달하며, 스텔스 기능을 갖춰 현대적인 방공망으로도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폴란드가 재즘 이알을 구매하기로 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교훈을 받아들인 결과다.
폴란드와 인접한 벨라루스, 러시아는 S-400을 비롯한 현대적인 방공체계를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처럼 유사시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는 전략시설을 타격하려면 우수한 성능의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필요하다.
폴란드는 지난 3월 재즘 이알 821기를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어 추가 구매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경 방어를 더욱 강화하는 조치도 공개됐다. 도날드 투스크 총리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러시아와 벨라루스 국경을 지키는데 쓰일 ‘이스트 실드(East Shield)’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투스크 총리는 “잠재적인 적들이 국경을 통과할 수 없도록 안전한 국경을 구축하기 위한 주요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있다”며 “평시에는 폴란드 국경을 안전하게 만들고 전시에는 적군이 통과할 수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폴란드는 전임 정부 시절 벨로루시와의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오는 난민을 저지하고자 폴란드-벨로루시 국경에 길이 180㎞, 높이 5.5m의 금속 울타리를 만들었다. 여기에 카메라와 센서를 추가했다.
이에 따라 폴란드는 러시아·벨라루스 국경 지대 방어를 강화하는 이스트 실드 계획에 2028년까지 25억 5000만 달러를 투입한다.
이스트 실드는 첨단 감시정찰 기술과 전통적 방식의 시설이 결합한 형태다. 최첨단 안티드론(드론 무력화) 장비와 암호화된 보안통신 체계, 영상·신호정보 추적 체계 등을 갖춘다.
인공지능(AI)의 지원을 받는 데이터 분석센터 등은 자동화된 방식으로 무기체계와 연동되는 감시정찰 시스템과 연동된다.
이외에도 방어 타워, 대전차 방호벽, 도랑, 벙커, 대피소, 지뢰 매설 공간 등도 포함된다. 폴란드군이 유사시 동부 국경으로 신속히 이동할 수 있도록 도로와 교량도 보강할 예정이다.
폴란드는 노르웨이, 핀란드,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와 함께 국경에 드론 장벽을 구축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드론 기술로 국경을 지키고 밀수를 저지하려는 의도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보고 있다. 옛소련의 패권을 되찾으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성향은 이같은 문제를 부추기고 있다.
러시아, 벨로루시와 인접한 폴란드는 대대적인 군비 증강에 나서면서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 그 중심에는 천무를 비롯한 한국산 무기가 있다. 향후 동유럽 정세에 따라 폴란드에서의 추가 주문이나 국방협력 등이 지금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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