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악단 유준원·김혜원, 무용단 임윤수·유기량 문체부, 국립예술단체 청년 교육단원 육성 사업 1기 단원에 뽑힌 ‘취업준비생’ “‘꿈의 직장’ 국악원에서 기량 닦으며 공연 무대에도 오르게 돼 기뻐” “혼자 유튜브 영상보며 연습하다 고수들과 함께 연습하고 하나하나 배우니 큰 도움 돼” “청년 교육단원 경험, 성장하는 데 밑거름될 것” “제도는 좋은데…짧은 연수 기간, 교육 시간 등은 아쉬워 보완됐으면”
지난달 29일 오전 10시30분쯤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국악누리동 정악단 연습실. 정악단 단원들이 종묘제례악 연습에 한창이었다. 그중 앳된 얼굴에 살짝 긴장한 듯하면서도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는 단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달 전에 합류한 유준원(29·대금), 김혜원(27·가야금)씨 등 ‘청년 교육단원’ 15명이다. 이들은 쟁쟁한 국악원 선배 연주자들 틈에서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문덕을 찬양하는 ‘보태평’ 합주에 열중했다.
비슷한 시각 근처 예인마루 공용연습실에선 한 무리의 청년 무용수들이 강강술래 안무 지도를 받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임윤수(25), 유기량(24) 등 청년 교육단원들은 지칠 법한데도 “(흥겨운 민속놀이인 강강술래에 어울리도록) 표정 관리에 신경쓰라”는 안무가 백미진(45)의 당부대로 매력적인 군무를 신나게 췄다. 한바탕 연습이 끝나자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이들의 얼굴엔 뿌듯함이 번졌다. 청년 예술인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과 강강술래 공연을 보여줄 무대가 기대됐다.
이날 오전 연습을 마치고 세계일보와 만난 유준원, 김혜원, 임윤수, 유기량 단원은 “‘꿈의 직장’으로 손꼽히는 국악원에서 기량을 닦고 공연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쁘다”고 했다.
각자 국악과 한국무용을 배운 지 12∼17년이 되고 대학이나 대학원을 마친 네 사람은 예술분야 취업준비생이다. 국악원처럼 우수한 환경에서 맘껏 예술활동이 가능한 직장에 들어가길 간절히 원한다. 청년 교육단원이 단기 인턴 과정임에도 이들이 고등학교 시간제 강사,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아르바이트 등 생업까지 관둔 채 지원한 이유다. 평소 꿈꾸던 국악원 정악단, 무용단 생활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데다 국내 최고 수준의 선배 단원들에게서 지도 받고 함께 연습하는 경험은 돈으로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정악단 교육단원 유준원·김혜원은 “정악의 경우 합주 음악을 주로 하는데, (우리는) 보통 개인 연습실에서 유튜브에 나오는 연주 영상 등 참고해 혼자 연습해야 하는 실정”이라며 “정악단에 와 최고 연주자들과 연습하고 바로바로 가르침을 받으니 정말 좋다”고 했다.
“(골프에 비유하면) 연습장이 아니라 실제 골프장에서 코치와 함께 치면서 하나하나 지도를 받는 건데, 그 코치들이 타이거 우즈, 박세리 같은 스타라고 보면 됩니다. 저한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죠.”(유준원)
옆에 있던 임윤수·유기량 단원도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유튜브 영상으로만 자주 접했던 백미진 선생님을 직접 만나 배우고, 무용수로서의 정체성도 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돼 좋아요.”(유기량)
“훌륭한 선생님들이 세세하게 가르쳐주고 무용단 공연에도 참여하게 돼 영광입니다. 청년 교육단원 경험이 무용수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 같아요.”(임윤수)
이들이 만족감을 표시한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립예술단체 청년 교육단원 육성 사업’은 경력을 쌓기 힘든 청년 예술인들에게 국립단체 무대 경험과 현장 실무교육을 제공해 전문 예술인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국립오페라단·국립발레단·국립합창단·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국립현대무용단·국립극단·서울예술단·국악원·국립극장이 만 19∼33세 청년 공연예술가를 대상으로 통합 공모와 심사를 거쳐 1기 단원 총 329명을 뽑았다. 평균 경쟁률이 9.5대 1에 달할 만큼 청년 예술인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이 중 국악원은 정악단, 무용단, 민속악단, 창작악단에서 15명씩 60명을 선발했다. 올해 선발자는 연말까지 활동하며, 단체별로 인당 월 최대 150만원(세전)의 활동 지원금을 준다.
올해 처음 도입된 국립예술단체 청년 교육단원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보완됐으면 하는 점은 무얼까. 이들 단원은 먼저 연수 기간과 교육 시간이 늘어나길 바랐다. 김혜원은 “1년 과정으로 아는데 우리는 5월부터 시작해 연말까지 8개월밖에 안 된다. 열심히 잘 하는 단원은 연수 기간을 더 연장할 수도 있는 기회를 줬으면 한다”며 “월 40시간으로 짧은 교육 시간도 최소 60시간으로 늘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준원도 “화요일(오전 10시∼오후 3시)·수요일(오전 10시∼오후 5시)만 출근하니 좀 알 만 하면 닷새 후 나와야 해 다시 리셋(초기화)된다”면서 “4대 보험도 안 되고 다른 요일에 할 만한 일자리를 찾기도 힘들다”며 출근 횟수와 교육 시간 연장을 원했다.
갖은 노력으로 스펙(인정 역량)을 쌓아도 취업문 자체가 좁아 미래가 불안한 다른 취업준비생처럼 문을 계속 두드리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나마 꾸준히 주어지길 바라기도 했다. 국악원 등 청년 예술인들이 선호하는 단체에서 정규직은 물론 계약직 단원조차 드물 게 채용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임윤수는 “국악원 같은 곳에 정규 단원 선발 시험이라도 보고 싶다. 그래서 안 되면 마음을 내려놓고 다른 데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유기량은 “정규 단원들이 출산·육아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휴직을 해야 하는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인력이 꾸준히 충원됐으면 한다”고 의견을 보탰다.
이들을 지도하는 선배 예술인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국악원 정악단과 무용단만 해도 정원은 각각 82명과 54명인데 현재 단원은 70명과 49명에 그쳐 인력난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한다.
입단 경력 38년차의 장경원(60) 정악단 악장은 “눈이 반짝거리는 젊은 교육생 15명이 부족한 정단원 자리를 대신 해주니 연습할 때도 음악이 웅장하더라”며 “새싹들을 보석처럼 빛날 수 있게 할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무용단 경력 22년차인 백미진 안무가도 “뭐든지 흡수하려는 교육단원들의 눈빛과 에너지가 대단한데 길이 좁아 안타깝다”며 “또 가뜩이나 정단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나까지 청년 단원 지도를 전담하느라 빠진 상태다. 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단원 정원이 빨리 채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체부가 앞으로 청년 교육단원 규모를 대폭 늘리기로 한 만큼 새겨들어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지난 4월 국악원에서 연 청년 교육단원 발대식 당시 “청년 교육단원이 더 많은 무대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예술의 힘을 나눌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