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사건, 직권남용 아닌 권력 양식 문제[노원명 에세이]
사건발생 보도 이후 후속 보도가 쏟아졌다. 한국인과 한국 언론은 병영과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고에 민감하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불운이나 부당행위를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남성들 대다수가 군에 다녀왔고 여성들 상당수는 군에 간 애인과 아들 걱정에 밤잠을 설친 경험이 있다. 그래서 병영 사고는 공감지수가 높다.
‘얼차려 훈련병’ 사건은 31년전 겨울 부산 신병교육대 연병장의 기억을 내게 환기시켰다. 얼차려와 총검술이 영리하게 결합된 강도높은 훈련이 쉼없이 이어졌다.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눈물 콧물이 쏟아지고 몇몇은 아예 토했다. 교관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우리의 고통이 커질수록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표정을 잊을수 없다.
군대는 절대 사망확률로는 사회보다 안전하다. 그러나 대개는 타의로 들어가고 자유가 제한된 터라 그곳에서 당하는 부당한 일은 몇갑절 억울하고 죽음은 큰 분노를 자아낸다. 나는 군에서 벌어지는 부당 행위를 접할 때마다 교관의 올라간 입꼬리가 생각난다.
그러나 모든 중요한 것은 결국 정도 문제다. 훈련병 사망으로 충격에 빠진 중대장이 심리치료에 들어간 사실과 관련해 후배가 ‘가해자에게 웬 치료?’ 취지의 기사 발제를 해 왔다. 비판 수위가 과도하다. 당연히 가해자도 치료받아야 한다. 규정에 어긋난 얼차려를 지시했다고 살인자처럼 취급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이처럼 광분해야 하는지 회의도 든다. 가해자인 중대장을 악마로 몰아갈 것인가. 그 위의 연대장, 혹은 사단장에게 지휘 책임을 물을 것인가. 그렇게 하면 규정을 벗어난 얼차려는 확실히 줄어들 것같다. 그러나 그것이 군 명령체계와 사기에 불러올 부작용이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의식의 흐름이 우연하게도 채상병 사건으로 흘렀다. 윤석열 대통령은 채상병 사건처리 보고를 접하고 ‘(이런 식으로 문제삼으면) 누가 사단장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차려 훈련병 사건과 채상병 사건은 사단장의 지휘 개입 정도에 차이가 분명해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사고가 생길 때마다 최고 책임자를 문책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일반론적 차원에서 나는 윤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편이다. 그러나 공감이 안가는 부분도 있다.
내가 갸우뚱하는 것은 ‘대통령 권력은 어느 지점에서 개입하는가’하는 대목에서다. 나는 대통령이 격노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자주 격노했다. 대통령은 평균적으로 싹싹한 성격 소유자들이 앉는 자리가 못된다. 대통령이 화를 냈고 그것이 국방부장관의 이첩보류 지시로 이어졌다고 가정하자. 직권남용인가? 법률가 아닌 상식인의 시각에서 봤을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자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국방부장관을 지휘할 권한이 있다. 그러면 다시 상식인의 시각으로 그와 같은 권한에 입각했을 대통령의 채상병 처리와 관련한 지시는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지도 않다는데 이 사건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얼차려 훈련병 이야기를 하자면 사회부장인 나는 이 사건 보도가 너무 선정적으로 흘러간다는 문제의식에서 후속 보도를 자제했다. 이 판단을 편집국장은 문제삼지 않았다. 반대 경우를 가정해보자. 사회부장이 이 사건에 꽂힌 나머지 연일 대서특필을 주장할 수도 있다. 편집국장이 그것을 지나치다고 판단한다면 이렇게 명령할 것이다. ‘그만 써라.’ 이것은 신문사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이다. 신문은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런데 신문 제작의 최고 결정권자는 편집국장이 아니다. 신문보도와 관련한 최종적인 책임은 발행·편집·인쇄인에게 있다. 보통은 한 사람이 이 세가지 직책을 겸임한다. 그의 책임과 권한은 매우 포괄적이어서 구체적인 실무는 편집국장에게 일임한다. 가령 발행인이 구체적인 보도와 관련해 사회부장을 지휘하는 경우는 없다. 불법이라서가 아니라 관행이 그렇기 때문에 안하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편집국장에게 사건 보도 지침을 내리는 경우도 거의 없다. ‘얼차려 사망 보도 이제 그만 하시오’같은 지시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지시한다고 해서 불법도 아니고 지휘체계를 벗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하지 않는것이 관행이고 불문율이다. 다만 사후적으로 ‘단편적인 팩트에 매몰돼 큰 가치에 소홀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것이 발행인이 신문의 방향성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만약 발행인이 4단짜리 기사를 1단으로 줄이고 제목도 바꾸라 지시했다는 식의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편집국 분위기가 어수선해 질 것이 틀림없다. 법률적인 직권남용이 아니더라도 논란은 일 것이다.
대통령은 신문으로치면 발행인이다. 포괄적인 책임과 권한을 지닌 대통령이 구체적인 사안을 지휘하려 한 것이 채상병 사건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법률적인 문제는 아닌 듯하고 다만 대통령 권력 행사의 양식 문제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의 힘은 그 권력을 역사적인 일에 행사할때 한없이 커지는 권력이다. 소잡는 칼로 닭의 목을 베어서는 안되듯 개인적 세계관이나 정의 구현에 동원되기에는 대통령 권력은 너무 큰 칼이다. 이쯤에서 대통령은 본인의 권력행사 스타일을 돌아보고 적절한 수준의 유감을 표했으면 한다. 야당은 대통령의 권력행사 방식을 지속적으로 문제삼되 법률적으로 무의미한 채상병 특검은 접는게 좋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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