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향 품고 묵묵히… 인고의 시간이 깊어갑니다 [밀착취재]
이제원 2024. 6. 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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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를 태울 때 생기는 그을음으로 만든 송연묵(松煙墨)은 먹의 세계에서 상품 중의 상품, 최상으로 친다.
국내에 한 명뿐인 송연묵 제조 기술자인 한상묵(66) 묵장(墨匠: 먹 장인)이다.
"송연 먹의 전통을 이어가야 하는데 이수자가 없어서 혼자 작업해요. 일이 고되고 돈벌이가 안 되니 나서서 배우는 사람이 없어요. 일단 제가 힘닿는 데까지 작업해야죠." 건조실에서 완성된 먹을 가져온 한 묵장이 정성스럽게 벼루에 먹을 갈며 무심히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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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송연묵’ 기술 전수자 한상묵 묵장
죽은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들어 먹 중 ‘으뜸’
전통 먹가마 재현… 수 년간 건조 거쳐 완성
이수자 없어 명맥 갈림길… “힘 닿는 데까지 해야죠”
죽은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들어 먹 중 ‘으뜸’
전통 먹가마 재현… 수 년간 건조 거쳐 완성
이수자 없어 명맥 갈림길… “힘 닿는 데까지 해야죠”
소나무를 태울 때 생기는 그을음으로 만든 송연묵(松煙墨)은 먹의 세계에서 상품 중의 상품, 최상으로 친다.
충북 음성 초천리 보현산 아래 시골 마을에는 맥이 끊겼던 우리 전통의 송연묵을 부활시킨 이가 있다. 국내에 한 명뿐인 송연묵 제조 기술자인 한상묵(66) 묵장(墨匠: 먹 장인)이다. 한 묵장은 30세이던 1988년에 경기 화성시 동탄면에서 카본 먹 공장을 운영하던 이모부 권유로 먹과 인연을 맺어 36년을 보냈다. 2014년 고용노동부로부터 국내 유일의 대한민국 전통 먹 숙련기술 전수자로 지정돼 현재 먹 내음에 취했다는 뜻의 공방 취묵향(醉墨香)을 운영하며 홀로 묵묵히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먹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한 뒤 전통 송연 먹(송연묵)의 부활을 위해 계속 공부하고 일본과 중국도 다니며 가마터를 찾아다녔어요. 그러던 중 2002년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전통 방식으로 먹을 만들던 송연 가마터가 발견된 거예요. 얼마나 고맙고 반갑던지요.”
한 묵장은 그 가마터를 토대로 전통 먹 가마를 재현해 송연묵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송연묵은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먹 수요가 감소하고 국가의 산림 보호 정책으로 원자재인 소나무를 구하기가 힘들어져 한동안 사라졌다. 그 자리는 석유나 천연가스를 태워 만드는 카본 먹이 대신했다.
송연묵은 제조에 1년 이상의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관솔이 붙어 있는 30년 이상 된 죽은 소나무 1t 정도를 태우면 대략 10㎏의 그을음을 얻을 수 있다. 가마에 생긴 그을음을 일일이 긁어모아 아교와 섞어 찰흙처럼 굳은 송연을 먹 틀에 넣어 딱딱해진 먹을 분리해 건조한다. 6개월간 1차 건조 뒤 먹 쓰임에 따라 1년에서 길게는 10년 동안의 2차 건조 과정을 거친다. 건조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어서 온도를 일정하게 맞추고 수시로 살펴보는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쏟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전통 송연묵은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고서(古書)와 중요 문화재 재현 작업에 사용된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인경(印經: 경판에 먹을 묻혀 종이 불경을 인쇄함) 작업에 계속 쓰이고 있고, 불교문화재연구소의 전국 사찰 목판본 인쇄 작업과 삼국사기 목판 인쇄본 작업 등에도 이용됐다.
지필연묵(紙筆硯墨), 즉 종이, 붓, 벼루, 먹은 예로부터 선비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없어서는 안 되는 네 친구라는 뜻의 문방사우(文房四友)로 불렸다. 추사 김정희는 그중에서도 먹을 ‘서가의 으뜸’이라 칭송했다. 자기 몸을 갈아 서(書)와 화(畵)의 재료가 되는 먹의 희생적 삶을 알아봤기 때문일 것이다.
송연묵의 전통은 현재 사활의 갈림길에 서 있다. “송연 먹의 전통을 이어가야 하는데 이수자가 없어서 혼자 작업해요. 일이 고되고 돈벌이가 안 되니 나서서 배우는 사람이 없어요. 일단 제가 힘닿는 데까지 작업해야죠.” 건조실에서 완성된 먹을 가져온 한 묵장이 정성스럽게 벼루에 먹을 갈며 무심히 얘기한다.
우리의 소중한 전통 송연묵을 지키려는 한 묵장의 소망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 취묵향엔 오늘도 은은한 소나무 먹 내음이 가득하다.
음성=사진·글 이제원 선임기자 jw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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