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풍선 효과, 삐라·오물로 끝이 아닐 수 있다

한겨레 2024. 6. 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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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서재정의 한반도, 한세상
‘위험한 풍선’ 효과
대북 전단에 ‘맞대응’ 풍선 공격
소통 단절에서 ‘중상·비방’ 악화
북 “해상국경선 침범 정식 경고”
위기 상황…관계 개선 시도 없어
2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용현동 도로에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이 떨어져 있다. 인천소방본부 제공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 내리고/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경기도 고양 출신의 월북 시인 박세영이 남한에 두고 온 가족과 벗들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임진강’)의 구절이다. 1957년 고종환이 곡을 붙여 노래가 됐다. 인간들이 그어놓은 선을 무시하고 강물은 도도히 흘러내리고, 새들은 휴전선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선에 갇혀서 고향을 가고파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어리석을 뿐이다.

그래도 휴전선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것이 뭇새들이었던 때가 낭만적이었다. 이제 인간의 어리석음은 스스로를 자멸의 길로 몰아넣고 있다. 남과 북은 풍선을 띄워 상대방을 모욕하고 자극하고 있고, 언제라도 미사일과 핵폭탄이 휴전선을 넘나들 수 있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공동성명 무너져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지난 28~29일 이틀간 조선(북한)이 대남전단으로 추정되는 ‘오물 풍선’을 살포해 경기, 강원 및 수도권과 충남 계룡, 경남 거창 등지에서 모두 260여개가 발견됐다. 풍선에는 담배꽁초, 퇴비, 폐건전지, 폐천조각 등 여러 가지 ‘오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26일 김강일 조선 국방성 부상이 담화에서 “수많은 휴지장과 오물짝들이 곧 한국 국경지역과 종심지역에 살포될 것”이라고 경고한 대로 행동한 것이다. 당시 김 부상은 한국에서 기구를 이용해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것을 문제 삼으며 조선의 행동은 이에 대한 “맞대응”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도 “한국 것들이 우리에게 살포하는 오물량의 몇십배로 건당 대응할 것”이라며 이러한 입장을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실제로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10일 대북전단 30만장이 담긴 대형 풍선 20개를 북쪽으로 보냈다고 밝힌 바 있다. 남북 간에 군사 핫라인을 포함해서 모든 소통의 수단이 단절된 상태에서 서로 주고받는 것이 전단뿐이라는 사실은 현 상황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단은 상대방을 인정·존중하지도 않고 비난하는 것이 본질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북관계는 소통 단절에서 ‘중상·비방’ 단계로 악화된 것이다. 말싸움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상대방을 ‘당신’이라고 부르는 순간 ‘누굴 당신이라고 불러?’라고 말이 거칠어지고 손이 올라간다는 것을. 지금 남북은 손을 들어 올리기 바로 그 직전, 그 지점에 서 있다.

이렇게 남북은 비방·중상을 금지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도, “서로 상대방을 중상 비방하지 않으며”라고 명시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도 시나브로 무너뜨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북의 이번 대남전단 살포가 강력한 경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김강일 국방성 부상은 앞서 언급한 삐라 관련 담화에서 ‘군사적 조치’를 언급했다. 그는 한국 해군과 해양경찰이 조선의 ‘해상국경선’을 ‘침범’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며 “어느 순간에 수상에서든 수중에서든 자위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정식 경고”했다. 이전에도 군사적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면 이번에는 ‘정식 경고’라며 그 급을 높인 것이다. ‘정식’ 경고인 만큼 조선이 판단하기에 ‘침범’ 행위가 있다면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스스로의 손을 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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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강·끝’만 되뇌고

지난 29일 강원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 논에서 발견된, 북한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대남전단 풍선. 연합뉴스

더구나 그는 이런 정식 경고가 상부의 지침에 따라 발표된 것이라는 사실도 적시했다. “24일 우리 최고 군사지도부는 군대에 이상과 같은 우리 국가주권에 대한 적들의 도발적인 행동에 공세적 대응을 가하라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24일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그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최근 조성되고 있는 군사 정세에 관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종합적인 보고를 청취”하고 “국가의 주권과 안전 이익을 믿음직하게 수호하기 위한 공화국 무력의 당면한 군사활동 과업이 제시되고 그를 책임적으로 수행할 데 대한 지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최고 지도부 차원에서 군사활동을 ‘책임적으로 수행’하라는 정치적 결정이 이미 내려졌고 국방성은 이를 집행할 채비를 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김 부상이 여기서 언급한 ‘해상국경선’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올해 2월14일 발언을 더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 총비서는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 국경선 수역에서의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강화할 데 대한 중요 지시”를 내리며 “우리가 인정하는 해상국경선을 적이 침범할 시에는 그것을 우리의 주권에 대한 침해로, 무력 도발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김 부상은 ‘침범’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하겠다고 군 차원에서 정식으로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김 총비서가 지난해 12월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이후 조선은 남북을 두개의 국가로 본다는 정치적 선언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1월15일에는 “우리 국가(조선)의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영공·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이라고 선언했다. 즉 1월 중순에는 실질적으로 국경선을 획정하는 것으로 이어졌으며 2월에는 국경선을 수호할 군사적 태세를 취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이제 이 지시를 수행하기 위한 군사적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라면 당연히 북의 ‘해상국경선’을 둘러싼 충돌을 사전에 피하기 위한 조처들을 우선 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비방과 중상을 중단하는 조처들을 해서 남북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김치찌개 ‘먹방’에 진심이고 국방부 지도부는 ‘즉·강·끝’만 되뇌며 졸병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

어디에서 평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1950년대에 시인 박세영은 사람들이 남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날을 꿈꾸며 뭇새들을 부러워했다. 지금은 그런 꿈을 꾸기도 버겁다. 휴전선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것이 뭇새들뿐이라면 그나마 안심이 되겠다.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시카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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