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다 갖게 된 일본, 이제 한국의 '이것'만 뺏으면 된다? [스프]
영원히 함께일 것 같던 네이버와 소프트뱅크
우리는 양사 통합을 달성한 뒤, 일본은 물론 아시아로부터 세계를 리드하는 AI 회사를 목표로 하고자 합니다.
-가와베 겐타로ㅣ야후재팬 사장 (2019년 11월 라인·야후재팬 통합 당시)
이후 2021년에는 두 회사가 AI 개발에 착수한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술과 인력을 네이버가 대고, 투자를 소프트뱅크가 한다는 것이다. 2023년 챗GPT의 등장으로 AI가 이제는 예능이 아닌 실제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는 신사업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가 알고 난 뒤 두 회사의 협력은 더욱 강화된다. 지난해 3월 두 회사는 네이버가 개발한 AI인 '하이퍼클로바X' 개발에 협력한다는 발표를 한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의 두뇌 역할을 할 대형 언어 모델, LLM을 만들기 위해 한국어와 일본어 데이터를 수집했다. 단어가 많아 언어를 배우기가 까다롭다는 일본어 학습을 위해 신문으로 따지자면 2,700년에 해당하는 분량을 공부시켰다. 이렇게 개발된 한국어와 일본어 LLM을 탑재한 하이퍼클로버X는 한국에서는 네이버, 일본에서는 라인야후가 서비스를 하기 시작한다. 이러다 보니 실제로 한국어와 일본어 이해도에 있어서는 네이버의 AI가 챗GPT와 구글 AI를 뛰어넘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소프트뱅크는 이때까지만 해도 4,500억 원을 지원해 가며 성의를 보였다.
미국의 대규모 일본 투자와 맞아떨어지는 네이버 축출 시도
이후 일본의 '라인 강탈' 사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기 직전인 4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4조 원, 오라클이 11조 원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고,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는 일본에 아예 아시아본부를 차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5월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이 라인을 강탈해 가려 한다는 뉴스가 터져 나왔다.
네이버와 손잡고 이미 개발해 놓은 AI가 있으니, 미국의 투자를 받은 후 이를 활용하면 더욱더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AI 패권으로 향하는 길에서 한국을 완전히 배제시킬 생각인 듯하다. 네이버가 개발 중인 하이포클로버X는 '소버린 AI'라고 불린다. 소버린(Sovereign)의 사전적 의미는 '자주적인, 독립된'으로, 한 나라가 자국의 기술과 자국의 인력, 자국의 데이터로 AI를 구축하는 걸 '소버린 AI'라고 말한다. 요즘 자주 논의되는 데이터 주권·AI 주권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의지는 있어도 이를 직접 개발까지 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따라서 네이버는 자신들이 개발한 소버린 AI 기술을 원하는 국가에 수출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그 첫 협력 사례가 바로 일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일본에게서 팽을 당하게 된 것인데, 일본 입장에서는 미국과 손잡고 적어도 아시아 AI 패권만은 오롯이 우리가 가져가겠다는 계산이 깔려있었을 거란 분석이 나오고 있는 대목이다.
또 한 가지는, AI야말로 '위너 테익스 올', 즉 1인자가 다 차지하는 시장이다. 어찌 보면 각 나라가 '소버린 AI'를 개발하는 게 무의미해질 수 있는 부분인데, 실제로 그러하다. AI 분야에 있어 세계 1위가 미국이고 2위가 중국인데 그 이후 3위부터는 순위가 의미가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네이버의 대규모 언어 모델과 AI 수준이 세계 10위 안에 들어 6위~7위를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얘기이다.
순식간에 다 갖게 된 일본, 이제 남은 건 '데이터'
라인도 네이버 클라우드를 쓰고 있고, 네이버와 라인을 분리시킨 이후에는 구글 등 다른 나라의 클라우드를 쓸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AI에 들어갈 반도체 생산 또한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AI를 위한 하드웨어(반도체)와 인프라(서버·클라우드)가 모두 없는 것이다. 이걸 네이버와 함께 기술 개발을 하는 식으로 채워나가고 있었는데, 올초 미국 등이 일본에 돈을 싸 들고 몰려가면서 180도 상황이 바뀌었다.
먼저 하드웨어다. 대만의 TSMC 공장이 이미 가동을 시작했고 두 번째 캠퍼스도 공사 중이다. 특히 소프트뱅크는 영국의 반도체 설계회사인 ARM을 자회사로 100% 소유하고 있는데, 여기서 설계한 반도체를 TSMC와 함께 만들겠단 계획을 가지고 있다. AI 인프라 구축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구글과 아마존, MS 등의 막대한 투자로 클라우드와 서버를 모두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끝내 가지기 힘든 것이 바로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쌓아나가는 데이터이다. 아무리 돈이 많은 다국적 기업도 이 데이터만큼은 해결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챗GPT 같은 글로벌 리딩 기업도 최근에는 언론사에 돈을 주고 기사를 제공받는 식으로 AI를 학습시키고 있다. 돈은 다 외국에서 끌어올 수 있어도, 데이터만큼은 그게 안 되는 것이다.
13년간 쌓인 2억 아시아인의 데이터
네이버가 13년간 쌓은 이 데이터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은 Priceless,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비싸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최대 커뮤니티 Reddit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DC인사이드 정도 되는 레딧은 영미권 사용자라면 한 번씩은 다 이용해 봤다는 초대형 커뮤니티이다. 기자도 해외 사례를 취재할 때 레딧을 반드시 들어가 볼 정도로 이 세상 모든 분야에 대한 각종 체험 정보들이 커뮤니티 게시물 형태로 올라와 있다. 물론 게시물에는 댓글도 달린다.
AI는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지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지식을 학습을 완료해 이제는 학습할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과 사람이 격의 없이 게시물과 댓글 형태로 자연스레 소통하는 커뮤니티의 자료들은 AI를 더욱더 인간답게 해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과거에는 그저 시덥잖은 '짤' 하나, 눈살 찌푸리게 하는 헛소리성 글 하나 정도로 간주되던 자료들이, AI를 더욱 더 사람답게 만드는 데에는 무척 소중한 자료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적자를 면치 못하던 레딧이 얼마 전 뉴욕증시에 상장을 한 이후 주가가 폭등을 하는 현상을 보였다. 챗GPT와 구글 등 AI 기업들이 레딧에 자료를 넘겨달라며 돈을 싸 들고 몰려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레딧은 신규 투자를 한 것도 없어 그저 하던 대로 있었을 뿐인데 졸지에 적자 기업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알짜배기 기업으로 밸류업이 된 것이다.
라인은 어떠한가? 일본만 보더라도 채팅 서비스 이외에도 결제와 배달, 쇼핑 등 생활 전반에 걸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여기서 모이는 정보는 일본, 나아가 아시아권 소비자들의 삶 그 자체이다. 아무리 챗GPT가 뛰어나다고 해도 대부분 서구권 데이터 위주이다 보니 아시아 맞춤형 서비스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는 라인에 모인 데이터가 훨씬 더 아시아 맞춤형으로는 양질이다.
지분은 넘겨도 데이터 이용권은 확보해야
글로벌 IT 기업들은 왜 한국만 쏙 빼놓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네이버에 한국어 대규모 언어 모델, LLM을 선점당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즉, 한국에서 하려면 경쟁자가 있지만 일본 같은 곳은 기술이 없다 보니 경쟁자가 없다는 것이다.
발전 가능성에 있어서도 시장 크기나 성장 가능성에서 한국보다는 동남아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한국은 올초 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바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AI 산업 육성에 9조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올초 AI 관련 예산이 삭감된 것이 많아 그 의미가 바랜다는 지적도 나온다. AI 시대로의 전환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투자 유치는 다른 나라보다 더딘데 심지어 가지고 있던 기업까지 일본에 강탈당하게 될 위기이다 보니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다.
라인 지분 매각은 정말 해결됐나?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기시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라인 사태를 언급했다. "일본이 네이버의 지분 매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라는 윤 대통령 말에 기시다 총리는 "보안 유출 사건에 대한 '거버넌스' 재검토 요구"라고 답을 했다.
여기서 '거버넌스 재검토'라는 표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거버넌스'란 '지배구조'·'관리체제'로 해석이 되는 용어이다. 보안상의 취약점을 보완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면 굳이 '거버넌스'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 것이란 것이고, 그러다 보니 결국은 끝내 '지분 매각을 요구하겠다'를 재확인한 것이란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종원 기자 terryab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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