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왜 이러지?" 개미들 '비명'…외국인 2조 내던졌다 [한경우의 케이스스터디]
연초 이후로 따지면 여전히 ‘5조 순매수’
“엔비디아 공급 무산 우려 과도”
범용 반도체 시황 회복 따라 실적 개선 가속화
삼성전자가 위기라고 합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때문입니다. SK하이닉스에 뒤쳐진 격차를 줄이는 데 난항을 겪으면서 주가도 7만3000원대로 주저앉았습니다. 특히 지난달 한달 동안 외국인 투자자가 2조원 넘는 규모로 삼성전자 주식을 내던졌습니다.
‘HBM 고전’ 엎친 데, ‘파업·금리급등’ 덮쳐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5월31일 삼성전자는 7만35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엔비디아로의 HBM 공급 기대감이 부풀던 같은달 7일(8만1300원) 대비 7800원(9.59%) 하락했습니다. 주가 하락을 주도한 건 외국인입니다. 5월 한달 동안 2조5823억원어치를 팔아치웠습니다. 반대로 SK하이닉스는 1조5088억원어치 순매수했고요.
외국인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두고 ‘롱-숏 전략’을 펼친 배경은 엔비디아로의 HBM 공급 수혜입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AI 연산용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들어가는 HBM을 독점 공급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공급망 편입에 고전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외국인이 삼성전자 주식을 본격적으로 팔아치우기 시작한 시점(5월9일)과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HBM 품질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소문이 국내 시장에 돌기 시작한 시점(5월10일께)이 겹칩니다. 5월2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의 보도가 또 나오면서 소문은 증폭됐습니다. 이미 지난 4월에 삼성전자의 HBM3E(4세대) 8단·12단 제품이 엔비디아의 테스트 통과에 실패했다는 겁니다.
삼성전자는 이를 부인했습니다. 회사측은 "다양한 글로벌 파트너들과 HBM 공급을 위한 테스트를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며 보도 내용을 사실상 일축했습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DS) 부문의 수장을 전영현 부회장으로 바꾸는 강수를 뒀습니다. 삼성전자가 주력 부문의 부문장을 ‘원포인트’ 인사로 교체한 건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에 더해 창사 이래 최초의 노조 파업이라는 악재까지 터졌습니다. 또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하면서 외국인이 지난달 29~3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3조1491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습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돈을 뺀 겁니다. 압도적인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매도세가 가장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엔비디아도 삼성 HBM 아쉽다”
이쯤 되면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포기했다고 성급하게 판단할 투자자도 있을 겁니다. ‘성급하다’는 사족을 붙인 건 여전히 외국인들 계좌에는 삼성전자 주식이 많을 것으로 추정돼서입니다. 올해 들어선 이후 5월31일 현재까지 외국인은 삼성전자 주식을 5조320억원어치 순매수하고 있습니다. 5월 한달간의 순매도액을 빼고도 이 정도가 남았습니다.
HBM 분야 경쟁력에 대한 우려도 과도하다고 증권가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아직 엔비디아로의 HBM 공급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오히려 “최근 삼성전자 HBM 제품에 대해 난무하고 있는 추측성 보도들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며 “HBM3와 HBM3E(4세대) 모두 엔비디아의 품질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삼성전자가 HBM 공급망에 들어와 주는 게 절실할 겁니다. AI 연산용 GPU의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핵심부품인 HBM을 SK하이닉스 한 곳으로부터만 받으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마이크론이 HBM을 공급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AI 수요 확장 속에서 HBM 공정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진 데 따라 공급이 부족해졌지만, 삼성전자의 경쟁사들의 단기적인 추가 대응 여력에 한계가 있다”며 “HBM 공급 부족 상황은 삼성전자가 이 시장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높이는 요소”라고 분석했습니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1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HBM의 올해와 내년 빗그로스(용량 기준 성장률)를 각각 200%와 100%로 제시한 점을 언급하며 “삼성전자가 책임자급 경영진이 터무니없는 계획을 공언하는 영세사업자가 아니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엔비디아로의 공급이 늦어질 수는 있어도 무산되기는 힘들다는 겁니다.
“범용 메모리 시황 회복…연말엔 HBM 이익률 역전할 수도”
HBM 분야에 대한 우려가 너무 큰 탓에 가파른 실적 회복 가능성이 가려진 점도 지적해야겠습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집계된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8조1912억원입니다. 한달 전에 비해 6.69% 상향됐습니다. 1분기 영업이익(6조6060억원)보다 24% 많은 이익을 남길 것이란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겁니다.
범용 메모리 반도체 시황 회복 덕분입니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분기 삼성전자의 D램과 낸드플래시 평균판매가격(ASP)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4%와 18%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올 연말께는 범용 D램의 이익률이 HBM을 넘어설 가능성이 제기된 점도 눈길을 끕니다. HBM 생산을 늘리면 범용 D램 생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입니다. HBM은 범용 D램을 여러개 쌓아서 만듭니다. 문제는 범용 메모리반도체가 원자재의 성격을 띤다는 점입니다. 공급이 부족해지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튀어 오를 수 있습니다.
이의진 흥국증권 연구원은 범용 D램의 공급 부족 조짐이 실제로 보인다고 분석합니다. HBM 생산을 위해 범용 D램 생산능력을 희생시킨 상태에서, 범용 D램 수요가 꿈틀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현재 D램의 재고일수는 작년 대비 절반 이상 감소한 7주 정도로 파악된다”며 “하반기에 일반 서버와 정보기술(IT)기기 세트로의 수요가 증가하지만,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올해 4분기에는 범용 D램과 HBM의 이익률이 역전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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