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보는 세상] 6300km 떨어진 곳에서 담낭 제거 수술 성공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2024. 6.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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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수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 의사가 의료행위를 한다고?

세상이 발전하면 과거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시험관 아기의 탄생은 생체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자손 번식이 생체 밖에서 실험적 방법으로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마취제의 발전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수술 시 통증을 없애 주었고 지금은 사람이나 동식물 유전자를 재조합하여 유전형질이 변형된 음식이나 약을 만드는 것도 보편화했다.

유사 이래 수만년 동안 의사가 환자를 만나지 않은 채 진단과 약 처방을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생각해 왔으나 이제는 정보기술을 이용하여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 화면으로 보면서 진단과 처방을 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 진료를 하는 원격진료는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다. 미국의 그로서리중 하나인 CVS(Consumer Value Store)가 운영하는 CVS Health 중에는 2010년대 중반부터 매장 내 약국 주변에 전화박스 모양을 한 공간을 설치한 곳이 생겨났다.

이 공간에 들어 있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원하면 컴퓨터 옆에 설치된 전화를 이용하여 의사와 상담을 할 수도 있게 했다.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원격진료가 현실에서 가능해지기 시작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원격진료는 아직 일반화하지 않고 있다. 예외적으로 코로나19 유행 시와 의료대란이 일어난 현재 제한적으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필자가 의대생일 때는 혈압을 재기 위해 청진기를 사용해야 했고 그로 인해 혈압을 재는 것은 의사와 간호사에게 책임이 지워진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손쉽게 스위치만 누르면 혈압을 잴 수 있는 기계를 곳곳에서 볼 수 있으므로 누구나 스스로 혈압을 잴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기계의 발전은 의료계에 다양한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내시경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원격수술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내시경 절제술

관 모양의 길쭉한 기구를 이용하여 인체 내부를 들여다보는 기계를 내시경이라 하고 이를 이용하는 기술을 내시경술이라 한다.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기계 끝부분에 아주 작은 카메라를 부착하고 관은 휘어질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관으로 인체 내부를 들여다보겠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실천에 옮긴 이는 독일의 보지니(Philipp Bozzini)였다. 그는 1806년에 관과 거울 등을 이용하여 입과 직장을 관찰했으나 호기심 해결을 위해 과도한 조치를 취했다는 이유로 비엔나 의학회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1954년에 영국의 홉킨스(Harold Horace Hopkins)는 빛을 통과시킬 수 있는 섬유를 이용한 내시경을 개발했다. 그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허쉬호위츠(Basil Isaac Hirschowitz)와 커티스(Larry Curtiss)는 내시경에서 빛을 활용하는 법과 화질 개선에 큰 기여를 했다.

의사이자 작가인 파누(James Le Fanu)는 광섬유를 이용한 홉킨스의 새로운 기구는 의사가 이전에는 미지의 영역이었던 곳으로 훨씬 더 멀리 더 깊이 나아갈 수 있도록 의학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입으로 내시경을 넣어서 식도를 통과하여 위에 이르게 하자 그동안 환자의 몸 속을 보지 않고 진찰하던 의사가 전보다 적은 노력으로 더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영상으로 몸 내부를 직접 보고 관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위 이외에 큰창자(대장)와 같은 소화기계통은 물론 기관을 포함하는 호흡기계통, 방광을 포함하는 요로 계통, 여성의 자궁 등을 내시경으로 관찰할 수 있다. 또 관절경, 복강경과 같이 구멍이 없는 곳도 피부에 작은 구멍을 낸 다음 기계를 삽입함으로써 전보다 훨씬 작은 상처만 내고 치료를 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상처가 작아지다 보니 부작용 발생도 줄고 환자의 회복 속도도 빨라져 사회로 돌아오는 일이 한층 쉬워졌다.

현재는 전하 결합 장치가 부착된 아주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하여 화면에 띄워 놓은 영상을 보면서 시술을 할 수 있다. 광섬유는 조직을 볼 수 있도록 빛을 보내고 영상은 전기를 통해 전달된다. 또 캡슐 내시경을 이용하여 선 없이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볼 수도 있게 되었다.

현재는 내시경 끝에 카메라 외에 절삭용 칼을 붙이기 시작했고 또 혈관을 건드려 피가 나는 경우 빨리 지혈을 하기 위해 소작용 기구를 부착하기도 한다. 과거에 내과는 주로 약을 사용하여 환자를 치료했지만 내시경이 발전하면서 수술적 치료도 내과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위내시경 검사를 하는 동안 위 벽에 뭔가 특이한 게 보이는 경우 조직검사나 치료를 위해 내시경 끝에 작은 칼이나 집게 같은 기구를 부착하여 사용하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위의 용종을 떼어내는 경우처럼 실제로 시행되는 이 방법은 과거에 칼을 사용한 외과 대신 내과의사들이 시행한다. 의사가 직접 칼로 잘라내는 수술법이 아니므로 거리는 짧지만 원격수술에 해당하기도 한다. 즉 내시경을 통한 수술을 최초의 원격수술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내과가 아닌 비뇨의학과에서도 전립샘비대증과 같이 고령자에게 호발하는 질병을 해결하기 위해 절삭용 기구를 이용하여 전립샘으로 절제하는 등 의학의 발전은 과거의 결정한 정의나 이론에 계속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로봇수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현대의 수술법을 한층 진보하게 한 로봇 수술

사람이 해야 할 수술을 로봇이 더 잘할 수 있을까.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다빈치 로봇은 2000년에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았고 구조가 점점 개선되면서 성능이 점점 향상되어 왔다. 이러한 수술용 로봇이 가진 최대 장점은 사람은 할 수 없는 미세한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아주 작은 차이를 수술을 맡은 손의 움직임으로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자를 대고 칼로 1mm를 자른다고 가정해 보자. 아무리 정확히 자르려 해도 1mm를 자르는 건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종이도 아니고 3차원 모양을 하고 있는 사람의 몸에서 1mm를 잘라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로봇에는 아주 많은 종류가 있으며 의료용 로봇은 정보기술을 이용하여 사람이 할 수 없는 미세한 수술을 하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 사람보다 로봇이 잘 할 수 있는 수술은 사람의 손으로 하기 어려운 작고 정밀한 수술 방법이다. 수술용 로봇은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고 컴퓨터는 미세한 범위를 조정하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봇 수술기를 이용하면 최소 침습 수술이 가능하다. 또 사람의 손은 두 개밖에 없지만 로봇에는 팔을 여러 개 부착할 수 있으므로 여러 부위를 동시에 처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람 손으로는 미세한 부위를 작업하기 어렵고 또 떨림이 있는 경우 조절이 더 어렵지만 로봇수술은 출혈과 통증을 줄이고 외과의사의 손 떨림을 방지하는 장점이 있다.

로봇수술의 가장 단점은 로봇이 실수하여 혈관을 건드리는 경우 출혈이 발생했을 때 대처가 늦다는 점이다. 로봇은 의사가 컴퓨터를 이용하여 설정해 놓은 대로 움직일 뿐이므로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혈관에 생긴 손상에 의해 피가 흐르는 막을 방법은 입력되어 있지 않을 테니 얼른 로봇을 제거하고 의사가 직접 지혈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수술을 보조하는 최초의 로봇은 1984년에 캐나다에서 처음 개발되어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 콜럼비아대 병원에서 정형외과 수술에 사용되었다. 1년간 60회 이상 관절경 수술이 시행되었다.

이듬해에는 로봇을 이용하여 뇌 생검을 위한 바늘의 방향을 잡는 데 성공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크기가 작고 정밀한 전립샘 수술용 로봇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또 1990년대에는 컴퓨터로 제어되는 수술용 로봇이 등장하면서 정확성과 정밀성이 더 향상되었다.

2000년에 미국의 메농(Mani Menon)은 로봇의 도움을 받아 전립샘에 생긴 암 조직을 제거했다. 그 결과가 좋았으므로 그 해에 미국 최초로 로봇을 이용한 전립샘 제거술 센터가 설립되었다. 이와 같이 수술용 로봇의 가치가 커지면서 다빈치, 프로봇, 제우스 등 다양한 수술 로봇이 개발되어 왔다. 

정보기술을 이용한 기계가 최근에 급격히 발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로봇을 이용한 수술 방법도 그 발전 속도가 아주 빨라졌다.

로봇에 장착된 기계는 외과 의사가 복부에 이산화탄소를 사용하여 풍선처럼 부풀린 후 공간을 밝힐 수 있는 등 다양한 기술이 수술용 로봇에 장착되면서 수술방법도 개선되어 급성 충수돌기염(막창자꼬리염) 발생 시 복강경을 이용한 충수돌기 제거, 심장 승모판 수선, 탈장(헤르니아) 제거술, 전립샘비대증 수술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원격수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의사와 환자가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진행되는 원격수술의 도입

2001년 9월 7일, 약 6300km의 공간적 거리를 둔 상태에서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첫 수술이 미국 뉴욕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수행되었다. 프랑스 의사 마레스코(Jacques Marescaux)가 뉴욕에서 복강경으로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69세 여성 환자의 담낭(쓸개)을 제거하는 수술을 진행한 것이다. 이를 린드버그 수술이라 한다.

마레스코 손의 움직임은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로봇 수술 기구에 전달되었고 마레스코는 물론 참여하는 의료진은 모두 내시경 카메라가 전해주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시간 차는 불과 150msec에 불과했고 이 차이는 수술 진행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54분간 시도된 최초의 원격수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03년에는 캐나다 해밀턴에서 일하던 의사 안바리(Mehran Anvari)가 로봇의 도움을 받아 약 400km 떨어진 노스베이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 수술을 시도했다. 안바리의 손, 팔목, 손가락의 움직임이 약 400km 떨어진 기계에 전달되어 환자를 치료하고자 했다. 이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원격수술에서는 시간 차가 가장 중요하다. 수술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시간차만 유지할 수 있다면 전쟁터에서도 멀리 떨어진 의사와 연결하여 수술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손떨림이 있는 의사도 편한 자세에서 로봇의 도움을 받아 수술을 할 수 있게 된다. 

원격 수술은 로봇 기술과 무선 네트워킹을 모두 활용하여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환자와 외과 의사를 연결하는 수술 방법이다. 원격수술은 지리적 거리에 상관없이 시행 가능하고 재정적 비용과 장거리 이동 등을 해결할 수 있으며 기술적 정확성과 수술의 안전성을 향상시킬 수 있으므로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지리적 거리를 두고 로봇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므로 로봇 수술의 장점을 그대로 살릴 수 있고 인접한 건강한 조직에 발생할 수 있는 이차 손상을 줄일 수 있으므로 환자 회복이 빨라질 수 있다. 또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감염질환 전파도 예방 가능하다.

그러나 원격수술은 환자 데이터와 이미지가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므로 개인 정보 보호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사이버 공격 예방과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할 경우 원격 수술의 안전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원격수술을 환자 입장에서 자신을 담당하는 의료진의 범위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환자의 동의를 구하는 일도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원격수술에서도 건가 불평등이라는 새로운 문제점을 제기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최신 의료 기술을 사용하는 일이 지위가 높은 사람들보다 불리함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원격수술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수술 시 발생하는 각종 데이터를 수신하고 변환할 수 있는 로봇 수술 시스템이다. 최초의 실용적인 원격수술 시스템이 사용된 이후로 로봇 시스템은 점점 더 진화하고 있으며 미래에 그 활용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문헌
Clifford A. Pickover. The Medical Book: From which doctors to robot surgeons, 250 milestones in the History of Medicine. Sterling New York. 2012
Paul J Choi, Rod J Oskouian, R Shane Tubbs. Telesurgery: Past, Present, and Future. Cureus 10(5):e2716, 2018
쿤트 헤거. 삽화로 보는 수술의 역사. 김정미 옮김. 이룸. 2005
제임스 르 파누,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 강병철 역, 알마. 2016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교수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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