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사라진 침묵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장 2024. 6.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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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장

인간이 언어를 구사하는 원천, 즉 목소리는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고 중요한 지식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최초의 도구 중 하나였다. 고대 그리스와 유럽, 인도에서는 소리의 일종인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미적 즐거움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산업혁명 시대 이후부터는 증기기관에서 나오는 휘파람 소리, 공장에서 기계가 덜그럭거리며 돌아가는 소리 등이 일상화돼 현재의 인간 문화를 이루고 있다. 현대는 팟캐스트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며, 고품질 오디오 통신 기술을 사용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사회다.

음파 탐지 같은 음향 기술은 해양 생물학, 의료 영상 등의 분야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됐다. 소리가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탐색과 발견을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세계를 지배하는 소리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자연계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새들의 지저귐과 나뭇잎의 바스락거림, 파도의 철썩임이 사라져 청각적 풍요로움이 전혀 없는 환경만 남게 될 것이다. 소리 기반 소통의 제약에 얽매이지 않는 야생동물은 시각적·화학적 신호, 신체 언어 등에 의존해 환경을 탐색하고 동료와 의사 교환을 할 것이다.

당연히 사람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일단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개인은 끊임없는 소음 공해에서 벗어나 평온함과 내면의 평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하루에 단 2시간의 침묵만으로도 기억, 감정, 학습과 관련된 뇌 영역인 해마에서 새로운 세포가 발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리가 사라지고 침묵이 지배하는 세상은 결국 사람에게 당황스럽고 불안한 고립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외로움, 공허함, 실존적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언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개인은 의미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비언어적 몸짓, 표정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될 것이다. 수화, 촉각적 의사소통, 시각적 신호가 소리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소리가 사라진 세상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은 커질 것이다. 수화를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번역하는 기술과 촉각 시스템, 무성영화, 무음 경보 시스템 등이 발전할 것이다. 문자와 시각 예술, 디지털 미디어는 아이디어, 감정을 전달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소리가 없는 세상에 관한 생각은 초현실적이고 불안해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 삶에서 소리의 중요성을 알게 해 준다. 미래 세대를 위해 청각 환경을 보호하고 보존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 주는 역할도 한다.

‘침묵의 세상’이라는 가정이 가져올 결과를 따져봤을 때 소리는 의심할 바 없이 소중한 존재다. 우리는 소리를 통해 인간과 자연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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