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저가 제품’ 충격에 휘청 “한국 공장 3분의 1 멈출 수도” [비즈360]
대내외 경기 침체 따른 수요 성장 둔화에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韓 석화업계 직격탄
“과감한 사업구조 개편, 신기술 개발 필요”
[헤럴드경제=김은희·한영대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를 향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화학 소비국이자 생산국인 중국이 범용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장악력을 공격적으로 키우고 있어서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들이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도 밸류체인을 확대하고 나섰다.
우리 석유화학 기업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생산성 향상, 고부가가치 제품 확대 등에 힘써왔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입지는 나날이 좁아지고 있다. 보다 과감한 사업구조 개편과 신기술 개발 없이는 중국 중심으로 재편된 신(新) 석유화학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0대 주요 석유화학 제품 가동률은 2028년 65%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석유화학 공장의 3분의 1 가량을 멈춰 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대내외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성장 둔화에 과잉 생산까지 더해진 영향이다.
특히 핵심 시장인 중국으로의 수출 수요가 줄어든 타격이 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중국이 정부 주도로 석유화학 제품의 자급률을 높이면서 한국 제품을 수입할 유인이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석유화학 제품의 내수 수요 및 공급 추이를 보면 2000년 초과 공급은 1000t 수준이었으나 2010년 9000t으로 늘었고 2020년에는 1만9000t에 도달했다. 오는 2030년에는 그보다도 두 배 많은 3만8000t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제품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2030년 전체 예상 공급이 16만8000t 수준임을 고려하면 전체 생산량의 23% 가량이 남게 되는 셈이다.
중국이 유휴 생산분을 동남아 등지에 저렴하게 공급할 경우 한국 제품의 현지 가격 경쟁력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다른 지역에서도 수출량이 쪼그라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수출 감소는 현실화됐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의 석유화학 제품 수출액은 457억달러로 전년 대비 15.9% 감소했다. 최근 3년래 가장 적었다. 특히 대중국 수출액은 170억달러로 전체 평균 대비 내림 폭(17.7%)이 컸다.
수출 전망도 밝지 않다. 일단 중국의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은 오는 2026년까지 5601만t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1280만t)의 네 배를 훌쩍 넘는 규모다. 2027년 이후 추가 증설 계획도 잇따르고 있어 경쟁 자체가 될 수 없다.
여기에 파라자일렌(PX)과 같은 중간원료, 폴리에틸렌(PE)과 같은 합성수지의 자급률도 내년에는 10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 중 하나인 폴리프로필렌(PP)만 보더라도 수출량이 지난해 704kt에서 2028년 503kt으로 약 28% 줄어들 것으로 업계는 예측한다.
이처럼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에 닥친 중국발 공급과잉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석유화학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총출동했다. 지난달 30일과 31일 이틀간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세계 3대 석유화학 회의 중 하나인 아시아석유화학회의(APIC) 현장에서다. 올해로 42회째인 APIC이 한국에서 열린 것은 2015년 이후 9년 만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장을 맡고 있는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과 이훈기 롯데케미칼 총괄대표 사장, 남이현 한화솔루션 케미칼부문 대표이사 사장, 백종훈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사장, 김종현 DL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 이유진 여천NCC 대표이사 사장 등은 각종 간담회와 세미나, 협의회 등에 직접 참석해 위기 타개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개회사에서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기존 범용 제품 중심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저탄소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석유화학 업계가 어렵지만 장기간으로 보면 성장 기회는 반드시 있다”고 단언하며 NCC(나프타분해설비) 가동률과 관련해 “정확한 회복 시기에 대해 말하긴 어렵지만 조금씩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 세계 34개국의 석유화학인 1013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들은 글로벌 공급과잉, 탄소 중립 등 석유화학 산업이 직면한 주요 리스크에 대해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위기 속에서도 친환경 트렌드에 대응해 기술 개발과 투자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생산성 향상, 저탄소·고부가 중심의 사업구조 구축과 함께 적극적인 인수합병(M&A)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는 최근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이 해외 공장 등을 매각하고 합작사 설립 등을 통해 한계사업을 정리하고 있는 움직임과도 연결된다.
아비나시 고얄 맥킨지 뭄바이 시니어파트너는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경우 수출 의존적 구조로 인해 공급과잉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위기에서 벗어나 시장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 M&A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훈기 롯데케미칼 사장은 기자들과 만나 “중국 공급과잉, 탄소 중립 등 대응책에 대한 각국의 사례를 공유했고 향후 (문제 해결 과정에서) 협조를 구했다”고 말했다.
김종현 DL케미칼 부회장은 “국내 사업은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사업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며 “자회사인 카리플렉스의 싱가포르 폴리이소프렌 라텍스 신규 공장은 거의 완공됐다”고 밝혔다. 스페셜티 제품인 폴리이소프렌 라텍스는 수술용 장갑에 쓰이는 소재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한계사업을 정리하는 등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특히 이차전지 소재 등 신사업 투자를 늘려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단 LG화학은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친환경 소재, 전지 소재, 신약 개발 등 3대 신성장동력에 10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투자액 중 50% 이상은 이차전지 소재에 쏟을 계획이다.
롯데케미칼도 신소재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훈기 롯데케미칼 대표이사는 올해 3월 정기주총에서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 목표를 작년보다 공격적으로 설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차전지 소재인 동박 사업을 하는 자회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스페인, 북미 등 해외 공장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8년까지 연 24만t의 하이엔드 동박을 양산할 예정이다.
한화솔루션은 최근 주목받는 케이블 소재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세계 최대 케이블 전시회 ‘WIRE 2024’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 공간을 마련해 글로벌 고객사를 대상으로 케이블 소재 판매 확대를 추진했다. 미국에선 북미 최초 태양광 통합 생산단지인 솔라허브 구축을 위해 3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스페셜티 소재 생산능력을 키우기 위해 총 1조1000억원을 쏟아부었다. 올해 4월에는 고무장갑 원료로 사용되는 NB라텍스 증설을 완료했다. 이번 증설로 금호석유화학의 NB라텍스 연 생산량은 71만t에서 100만t으로 늘었다.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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