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쩐의 전쟁'으로 치닫나?…64조 쏟아붓는 중국[차이나는 중국]
[편집자주] 차이 나는 중국을 불편부당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규모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3440억위안(약 64조5900억원)에 달했다. 이는 빅펀드 1·2기를 더한 것보다 큰 규모다. 미국이 인텔·삼성전자·TSMC 등에 390억달러(약 53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서자 중국 역시 규모를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
2014년부터 가동된 빅펀드는 지난 10년간 중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한 일등 공신이다. 빅펀드가 밀고 있는 SMIC는 글로벌 파운드리 3위에 올랐으며 D램업체 창신메모리(CXMT)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 나섰다. 아직 한국과 중국의 격차가 크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번에 정식 설립된 '빅펀드 3기'는 1·2기를 더한 것보다 규모가 커졌다(64조5900억원). 미국이 2022년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제정과 함께 527억달러(약 71조6700억원)을 반도체 산업에 지원하고 있는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인텔(85억달러), TSMC(66억달러), 삼성전자(64억달러) 등에 직접 제공하는 생산보조금만 390억달러(약 53조원)에 달한다.
빅펀드 3기는 중국 재정부(17.4%), 중국 국가개발은행 산하 CDB캐피탈(10.5%), 국유기업인 상하이궈성그룹(8.7%)이 주요 출자자이며 공상은행, 농업은행, 건설은행, 중국은행 등 4대 국유은행도 6.3%씩을 출자했다. 특히 중국 국유은행들은 처음으로 빅펀드에 자금을 댔다. 빅펀드는 2014년 이후 5년 주기로 설립되고 있으며 5년 동안 투자를 집행한 후, 다음 5년 동안 투자금을 회수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빅펀드 1기는 반도체 제조에 집중하면서 반도체 생산능력 문제 해결에 주력했음을 알 수 있다. 중점 투자 분야 역시 메모리와 초미세 공정 생산라인 건설이다. 2019년 출범한 빅펀드 2기도 파운드리 투자 비중이 70%에 달할 정도로 여전히 높으며 팹리스 비중은 10%로 다소 줄었다.
기업 별로 보면 빅펀드의 주요 투자는 파운드리업체 SMIC·화홍반도체, 낸드플래시 제조업체 양쯔메모리(YMTC), D램업체 창신메모리(CXMT) 등 파운드리와 메모리업체에 집중됐다.
빅펀드가 투자한 비상장 반도체 프로젝트도 주로 YMTC, CXMT, SMIC 등 대형 메모리·파운드리업체에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팹리스나 패키징·테스트 기업에 대한 투자규모는 대개 몇 억 위안(약 수백억원)인 반면, 메모리·파운드리업체에 대한 투자규모는 100억위안(약 1조8700억원)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다.
특히 빅펀드는 SMIC에는 2022년 8월 기준 무려 7번에 걸쳐 456억위안(약 8조5300억원)을 투자했다. SMIC가 중국 각 지역에 건설하고 있는 반도체 생산라인에 매번 지분 투자를 한 것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SMIC는 지난 1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 6%를 기록하며 순위가 5위에서 3위로 껑충 뛰었다. 1, 2위는 대만 TSMC(62%)와 삼성전자(13%)가 차지했다.
중국 현지에서도 빅펀드가 반도체 산업 육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평가다. 빅펀드 설립 전에는 주로 민간 반도체 투자 펀드가 회수주기가 짧고 리스크가 낮은 팹리스기업 위주로 투자했다. 이 때문에 반도체 소재·장비기업은 2014~2015년 산업화 과정에서의 곤란으로 재무 위기에 처한 기업이 많았는데, 마침 빅펀드가 이 기업들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이들이 업종 선두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빅펀드 투자에 힘입어 SMIC, 화홍반도체 등 파운드리업체의 연간 성장률이 5% 미만에서 20%로 상승하면서 팹리스기업이 필요로 했던 반도체 생산능력 문제가 해결됐다. 중국 입장에서 국산화가 절실했던 메모리반도체도 빅펀드가 YMTC, CXMT에 거액을 투자했으며 이들이 맨땅에서 시작해서 낸드플래시와 D램 생산에 성공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이들 기업이 없었더라면 2019년 미국의 제재가 시작된 이후 중국이 더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것"이라며 "빅펀드가 5년 앞서 투자한 결과"라고 호평했다.
현재 중국 반도체 산업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노광공정을 지원하는 코터(coater)·디벨로퍼(developer), 이온주입공정 등 고난이도 공정의 국산화율이 낮다. 반면 빅펀드가 SMIC, YMTC 등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고 이들 기업이 생산라인 확장을 위해 중국산 반도체 장비를 대량 구매하면서 일부 식각(에칭) 장비, 세정장비, 열처리 장비, CMP(화학·기계적 처치로 웨이퍼를 평탄화하는 작업) 장비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국산화를 달성했다.
중국이 초기에 파운드리·메모리업체에 투자를 집중한 이유도 이들의 자본적지출(CAPEX) 중 약 80%가 반도체 장비 구매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반도체 소부장 기업이 수혜를 입게 된다.
앞으로 빅펀드 3기는 어떤 반도체 기업에 투자할까. 먼저 빅펀드 3기는 파운드리·메모리제조업체 투자를 이어가면서 반도체 소부장 기업의 국산화율 제고를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SMIC 투자를 통해 7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이하 초미세공정 개발에 집중하면서 첨단 반도체 제조의 관건인 패키징 공정에도 공을 들일 전망이다. AI칩, HBM 등 현재 미국의 제재가 집중되고 있는 첨단 반도체에 대한 투자도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미중 반도체, 쩐의 전쟁은 이제 겨우 중반이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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