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드테크, 우리가 국대다]① 시노펙스, 수입 의존하던 혈액투석기 국산화 성공

허지윤 기자 2024. 6. 2.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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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 투석용 필터 식약처 품목허가 획득
이동형 인공신장기·혈액투석 정수기도 개발
이진태 시노펙스 인공신장사업부 본부장(가운데)과 연구원들이 경기도 화성시 방교사업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선비즈

신장(콩팥)은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내 배출하는 몸의 필터다. 신장 동맥을 통해 매일 혈액 약 180L가 신장으로 유입되고, 사구체라고 불리는 미세한 필터가 노폐물과 수분을 거른다. 신장이 손상돼 기능을 못 하는 질환이 신부전이다. 만성 신부전 환자는 인위적으로 노폐물을 거르는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한다. 이는 환자의 혈액을 빼내 몸 밖에 있는 투석기(인공 신장)로 통과시켜 노폐물과 과다한 수분을 제거한 뒤 다시 환자 몸 안으로 넣어주는 것이다.

국내 만성 신장병 환자는 2022년 기준 29만6000명, 혈액투석 환자 수는 약 13만5000명에 이른다. 세계에서 발병률이 3번째로 높다. 그럼에도 국내 혈액투석 시장은 제품 전량을 수입에 의존했다. 제품 선택지가 적고, 외부 요인에 따른 공급 불안도 잠재해 있다. 국내 나노소재 부품 기업인 코스닥 상장사 시노펙스가 자체 필터 분리막 기술을 활용해 처음으로 국산 혈액투석 장비를 개발했다.

시노펙스는 1985년 물·공기 등의 정화에 필요한 분리막·필터 사업으로 시작해 2006년 인수합병(M&A)을 통해 모바일, 전장부품 등에 활용되는 연성회로기판(FPCB)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뒤이어 의료기기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그 성과가 바로 인공신장기용 혈액여과기(혈액투석 필터)다. 혈액투석필터 11종은 올해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 허가를 받았다. 국내 기업 최초다.

시노펙스가 국내 기업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인공신장기용 혈액여과기.' /시노펙스

◇기업 기술력+정책 지원 시너지 첫 결실

스마트폰 부품을 만들던 기업이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혈액투석 부품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은 의미가 크다. 국내 혈액투석 필터는 연간 약 2000만개 사용되는데, 그동안 전량 수입했기 때문이다. 이진태 시노펙스 인공신장사업부 본부장은 28일 조선비즈와 만나 “시노펙스의 국산화 성공으로 이제 혈액투석 필터를 국산 제품으로도 대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글로벌 기업들에서 수입하는 혈액투석 필터 제품은 2~4종류에 그쳤는데, 시노펙스는 이를 11종으로 개발해 환자 체질에 따라 맞춤형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성능도 더 좋다. 회사에 따르면 시노펙스 필터는 수입제품보다 두께가 15~25% 얇은 첨단 분리막을 적용해 노폐물 제거 효과가 8~10% 더 높다.

혈액 투석 제품인 만큼 오염 관리와 검수가 중요하다. 연구원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외관 검사를 통과해야 하고, 외관 검사가 끝난 제품은 누설검사를 통해 제품의 이상 유무를 검사한다. 혈액과 투석이 섞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 규격에 따라 성능 평가도 한다. 기계를 통해 혈행여과기의 누수 여부와 나쁜 성분을 제대로 거르는지 물질 분석도 거친다.

이 본부장은 “기술에 대한 강한 기업의 자신감과 신사업에 대한 강한 투자 의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시너지를 내 개발 성공 결실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시노펙스는 혈액에서 산소를 전달하는 성분인 헤모글로빈을 측정하기 위해 광원 여러 개를 사용하던 부분을 단일 광원으로 바꾼 특허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제품의 무게와 유지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KMDF)은 이런 기술력을 인정해 2020년부터 제품 개발부터 인허가 과정까지 밀착 지원했다.

회사는 혈액투석에 필요한 다른 핵심 장비와 기기도 개발하고 있다.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은 2025년 말까지 이 회사의 후속 연계사업에 37억5000만원을 지원한다. 시노펙스가 개발 중인 원격 모니터링 이동형 혈액투석 의료기기, 이동형 인공신장기, 이동형 혈액투석 정수기, 인공신장기용 혈액여과기 10종’ 올해 사업단이 선정한 국산화 국책과제 대상이다. 이동형 장비는 말 그대로 응급실, 집으로 이동하면서 쓸 수 있다.

시노펙스는 사업단 지원을 받아 진행한 국책과제 중 이동형 인공신장기, 이동형 혈액투석 정수기 개발을 마치고, 지난해 8월부터 서울대병원(신장내과 김동기 교수팀)에서 전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식약처 품목허가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

시노펙스 연구원들이 이 회사의 혈액투석 필터를 들고 있다. 사진 가운데 놓여 있는 장비는 중환자용 인공신장기(가운데 장비)다. /조선비즈

◇임상시험 거쳐 해외 시장도 진출

시노펙스는 전문임상수탁기관(CRO)인 씨씨앤아이리서치와 5월 21일 정식 계약을 맺고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김동기 교수팀을 비롯한 국내 5개 상급병원과 공식 환자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이진태 본부장은 “이번 임상은 혈액투석 필터 판매 승인 후 4차 임상에 해당한다”며 “5개 병원의 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의 검토와 승인을 거쳐 진행하게 되며, 1차 임상 예상 기간은 6개월, 최종 결과·학술 논문까지 총 18개월의 과정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시노펙스는 이번 임상시험이 혈액투석 필터가 글로벌 제품과 동등한 수준의 품질을 확보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인공신장기에 사용되는 혈액투석 필터는 전 세계에서 동일한 규격으로 사용된다. 이번 식약처 품목허가로 임상시험을 거치면 국내뿐아니라 해외 수출 길도 열린다. 이 본부장은 “본격적인 판매를 위해 국내외 마케팅 활동도 시작했다”며 “5개 상급종합병원에서 진행되는 임상 결과가 나오면 사업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시노펙스는 경기도 화성 방교동 사업장에 연간 혈액투석필터 230만개를 생산할 수 있는 전자동 스마트 생산라인을 1차로 확보했다. 의료기기 생산이 가능한 국내 식약처 ‘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 인증과 글로벌 ISO13485인증도 획득해 제품 출시를 준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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