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보릿고개]② 해오던 연구, 중간에 물거품?…수요 불일치도

조승한 2024. 6. 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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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과학기술·정보통신의 날 기념사 (과천=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경기도 과천시 국립과천과학관 열린 2024 과학기술·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4.4.22 hihong@yna.co.kr

(서울=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26일 국무회의서 내년도 예산안 편성 방향과 관련해 "R&D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연구계는 여전히 불안해한다. 내년 R&D 예산 총액이 늘어나더라도 올해 이미 예산이 삭감된 과제는 연구비 복원이 어려울 수 있고 이렇게 되면 그간의 연구 성과도 사장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제협력' 등을 강조하는 부분도 큰 부담이다. 이렇게 정부가 중점을 두는 분야에만 예산이 치중될 경우 예산과 연구 현장의 괴리가 커질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은 정부가 단순히 예산 총액을 늘리는 식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올해 예산 삭감으로 연구 현장에서 드러난 부작용을 치유하는 대책 마련이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R&D 예산 증액분, 삭감과제에 투입되지 않을 듯…추가 삭감 우려도

연구계에서는 내년 R&D 예산 증액분은 정부가 주력하는 신규 과제 위주로 대거 투입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앞서 윤 대통령이 도입하겠다고 약속한 '이공계 대학원생 연구생활장학금'(스타이펜드)은 최소 1천억원 이상 신규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혁신 R&D, 12대 국가전략 기술, 양자·바이오·AI 반도체 등 정부가 민생토론회를 거치며 투자를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한 분야도 상당수다.

이들 분야에 투자할 예산을 고려하면 기존 계속 연구과제는 예산이 복원되기보다 추가 삭감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도 내년 R&D 예산과 관련해 "비효율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예산을 뺄 수 있다"고 밝히는 등 추가 삭감 여지를 두고 있다.

[그래픽] 정부 R&D 예산 추이 (서울=연합뉴스) 이재윤 김민지 기자 = 대통령실은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겠다는 방침을 3일 밝혔다. 정부가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의 대폭 증액을 예고하면서 예산이 삭감 이전인 지난해 수준을 넘어설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minfo@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올해나 내년에 시작하는 신규 과제는 예산 증액의 혜택을 받지만, 기존 과제는 삭감이 계속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정부가 예산을 삭감한 R&D 계속과제의 경우 과제를 포기해도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해, 신규 과제를 수주하려는 연구자들이 기존에 하던 연구를 중단해버리는 '적극적 포기'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투입된 재원과 그간 거둔 중간 성과가 사라지는 셈이다.

임기철 광주과학기술원(GIST) 총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았어도 연구과제를 중단해 불이익을 받지 않는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연구계는 올해 삭감된 계속 과제 예산 복원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한다.

과학기술계 13개 단체가 모인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은 지난 4월 말 "단편적 신규 과제 증가만으로는 끊어진 연구가 이어질 수 없다"며 삭감된 정부 R&D 연구비를 전면 복원해달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국외 연수 사업·기초연구지원사업 등 공고보다 선발 인원 줄어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R&D 예산 지원 사업들도 세부 설계 과정에서 연구계의 필요와 맞지 않아 혼선을 빚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젊은 박사후연구원에게 연간 7천만원을 지원해 국외 연수 기회를 주는 세종과학펠로우십 국외연수트랙 대상자를 지난해 50명에서 올해 4배 가까이 확대해 190명 선발하겠다고 공고했다.

하지만, 지원율이 2대 1에 미치지 못하자 최종적으로는 155명만 선정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남는 예산은 다른 기초연구사업에 분배하기로 했다.

연구계에서는 올해 선정 대상을 확대하는 대신 예산 지원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인 것을 저조한 지원율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한 국내 대학 박사후연구원은 "선정 후 1년 뒤 체류 여부가 불분명해지는 것은, 신청하는 입장에서나 박사후 연구원들을 받을 해외 연구책임자 입장에서나 메리트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R&D 지원 개혁 방향 브리핑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연구개발(R&D) 지원 개혁 방향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4.4.3 hihong@yna.co.kr

예고했던 과제 수보다 실제로 선정된 과제 수가 적은 기초연구 지원 사업은 또 있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우수신진연구는 759개, 중견연구 유형1은 1천254개, 유형2(글로벌형)는 120개 과제를 선정해 지원하겠다고 연초 밝혔지만, 최종적으로 선정된 과제는 우수신진연구 644개, 중견연구 유형1 1천102개, 유형2 108개였다. 애초 공고한 지원과제 수의 85~90% 수준이다.

이 사업들은 세종과학펠로우십 국외연수트랙과는 달리 지원자들이 대거 몰렸다. 우수 신진연구의 경우 2022년 신청자 1천769명의 2.6배 수준인 4천559명이 몰려 선정률 14.2%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과제는 지원 과제당 평균 지원 금액이 예상보다 많아지면서 과제 수를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연구 과제 규모를 키워 수월성을 높이겠다며 과제당 신청할 수 있는 연간 연구비 상한을 올린 데다, 신청자 대부분이 상한에 가깝게 신청했기 때문이다.

실제 우수신진연구의 경우 올해 선정 과제의 59%에 해당하는 380개 과제가 신청할 수 있는 최대액을 지원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우수신진연구와 중견연구의 경우 과제 중 20%만 국제협력 비용을 추가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거의 모든 연구자가 이를 신청하며 조정이 더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는 이와 관련, "평가위원 선정평가 결과, 단가가 높은 과제가 주로 선정돼 불가피하게 목표한 과제 수를 맞추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일부 연구자만 국제협력을 지원하도록 유도할 계획이었는데 의도와 다르게 신청된 측면이 있다고 연구자들에게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수월성 위주로 기초연구를 평가하면 당연히 단가가 높은 과제가 유리하다며,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기초연구 분야 국내 주요 학술단체 31개가 모인 기초연구연합회의 정옥상 회장(부산대 화학과 교수)은 "기초연구 지원을 위해 수년간 만들어 놓은 체계를 갑자기 바꾸다 보니 수혜율이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제를 낼 때 국제협력 지원을 써 두면 당연히 거기에 맞게 모두 신청하게 된다"며 "국제협력 부분이 미약하다고 떨어진 사람들이 많은데 애초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범부처통합연구지원시스템(IRIS) 시스템 과부하 사태로 과제 지원에 어려움을 겪고, 연구과제 선정 후 협약 체결도 한 달 가까이 미뤄진 것도 연구자들의 불만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shj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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