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독재에 취약한 까닭 [PADO]
[편집자주] 미국 정치에 대한 필독서 중 하나인 '미국의 민주주의'(1835, 1840)에서 프랑스 정치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평등을 기본 원리로 하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제도 차원에서는 독재자의 등장을 막는 힘이 있지만, 사람 차원에서는 그럴 힘이 약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민주주의가 권력의 분산과 자치를 중심으로 하는 제도로는 독재를 막는 힘이 있는데, 나름의 세력을 갖춘 귀족들이 존재하는 귀족정과 달리 구성원인 시민들이 고만고만한 힘밖에 없는데다 바쁜 일상에 치여 독재자의 등장에 크게 저항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2024년 5월 18일자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독재 등장 가능성과 관련해 두 개의 글을 실었습니다. 짧은 '리더leader'(권두기사)에서는 토크빌과 비슷한 진단을 내렸는데 좀 더 긴 '브리핑'(이름과는 달리 이코노미스트에서 가장 긴 기사가 올라오는 섹션입니다)에서는 미국 정치의 취약성에 좀 더 강조점을 두면서 비관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대선 판세는 전체 지지율에서는 바이든 후보가 조금 앞서고 있지만 선거 결과를 결정할 '스윙스테이트'(경합주) 6~7개에서는 트럼프 후보가 앞서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 앞에서 긴장 상태인데, 당사자인 미국 국민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로마가 확대되면서 공화정이 붕괴되고 카이사르-옥타비아누스의 제정으로 넘어갔습니다. 5월 18일자 이코노미스트 표지에 카이사르의 석고상이 등장하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미합중국 대통령직은 적어도 권력에 굶주린 특정 유형의 노인들이 아주 탐내는 자리다. 미국을 건국한 사람들은 대통령직을 더 높은 자리로 만들 뻔했다. 초대 부통령인 존 애덤스는 대통령을 '선출 폐하(His Elective Majesty)' 또는 '엄하(嚴下: His Mightiness)'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원은 다른 호칭을 승인했다. 즉 "합중국의 대통령이자 자유의 수호자 전하!(His Highness,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and Protector of their Liberties)" 그러나 하원은 이러한 웅장한 칭호에 반대했고 조지 워싱턴은 자신이 제왕적 야심을 품고 있다는 주장을 불식시키기 위해 하원의 결정을 따랐다. 하지만 그런 비난은 계속되고, 대통령이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때마다 야당은 '제왕적 야심을 품고 있다'는 비난을 반복했다. 야당에겐 대통령의 일이 늘 마음에 안 들테니 이런 비난은 결국 항구적이었다.
소설가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독재자에 의한 미국 민주주의의 전복을 상상하며 그러한 두려움을 더욱 심화시켰다. 싱클레어 루이스의 '그 일은 일어나면 안 된다'(1935)의 버즈 윈드립 대통령, 로버트 하인라인의 공상과학 시리즈 '만약 이것이 계속된다면'(1941)의 네헤미야 스커더, 그리고 필립 로스의 '미국에 대한 음모'(2004)의 찰스 린드버그가 그 예다. '만약 이것이 계속 된다면'에서는 설교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시골 출신의 스커더 대통령이 2012년 선거에서 승리하며, 그 다음의 2016년 선거는 열리지 않는다.
11월 대선이 다가오면서 비슷한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은 비단 소설가들만이 아니다. 민주당은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에도 대통령직을 유지하려 했던 도널드 트럼프를 독재자가 될 수 있는 인물로 보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음모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최종 승리한 바이든을 찬탈자라고 비난하고 있다. 트럼프는 바이든이 가짜 법적 절차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가두려고 대통령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바이든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깡패, 부적응자,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함께" "미국 민주주의 파괴"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법원은 주기적으로 트럼프의 행정 명령을 막았으며, 선거를 뒤집으려는 그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고, 만약 그가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헌법에 따라 임기를 한 번만 더 하는 것으로 제한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를 비판하는 일부 사람들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태롭다고 주장하며,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순진하다고 비판한다. 작년에 여러 공화당 후보의 외교 정책 고문을 지낸 로버트 케이건은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에는 독재로 가는 분명한 길이 있는데, 그 길은 날마다 짧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자들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전직 각료 중 한 명은 "헌법은 우리 모두가 그 규칙과 규범을 준수하기 때문에 작동한다"고 말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규칙과 규범을 계속해서 약화시킬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마치 무관한 제3자처럼 언급하는 것을 좋아하는 전직 대통령도 이 논의에 참가했다. 작년에 트럼프는 폭스뉴스에서 재선된다면 독재자가 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말도 안 된다며 일축했다. 트럼프가 늘 그렇듯, 그의 상반된 발언 중 어떤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기 어려웠다 (진지한 발언이 있기나 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대법원은 대통령을 기소할 수 있는지 여부와 어떤 상황에서 기소할 수 있는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적어도 대법관 중 일부는 "대통령에겐 면책특권이 당연한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할 것이다.
(계속)
김동규 PAD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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