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과 30분 통화한 트럼프, 아베와 75분 전화하며 ‘北 해법’ 물었다

이하원 외교담당 에디터 2024. 6. 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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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9회>]
日국빈 방문 트럼프, “보석같은 미일동맹” ...아베와 ‘브로맨스’ 쌓아
文 회고록 “트럼프는 동맹외교 파트너로 아주 잘 맞는 편” 자화자찬
트럼프는 아베에게 “한국이 김정은에게 이용 당했다”며 文 비판

[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안보 분야를 25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취재한 비사를 전해드립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진열돼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달 펴낸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대변했다”는 지적을 받는 이 회고록은 북한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팩트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이 나옵니다. 남북관계는 물론 한미관계 등에서 사실보다 자신의 감상, 느낌을 우선한 ‘자화자찬’이 많다는 평이 많습니다. “후안무치하다”는 직설적인 비판도 나왔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정부는 균형외교에서 역대 최고의 성과를 냈다. 그렇게 자부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한미동맹이 공고했고, 한일관계가 정치적으로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나 민간 차원의 교류에서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돌아갔고, 중국 및 러시아와 좋은 관계, 북한과도 평화를 유지했던, 이런 때가 역대 정부에서 없었다.” (488페이지)

한미관계를 보자면, 박근혜 정부와 오바마 정부 사이에 호흡이 맞지 않았다.(488페이지)” “그(트럼프) 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내게는 동맹외교의 파트너로 아주 잘 맞는 편이었다”(29페이지).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도 이런 말을 하며 문 전 대통령의 자화자찬을 도와줍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가 당선자 신분일 때 사저였던 트럼프 타워까지 가서 도금한 골프채도 선물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케미가 높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30페이지)

문 전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호흡이 맞지 않았지만, 자신과 트럼프의 관계는 돈독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문 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사실과 동떨어졌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저는 2018년 6월 도쿄 특파원으로 부임, 일본에서 취재하면서 트럼프-아베의 브로맨스가 역대 최고 수준의 정상관계에 이르렀음을 취재했습니다. 그 반면, 문재인-트럼프의 관계는 문 전 대통령의 생각만큼 돈독하지 못했음을 밖에서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2017년 6월 방미,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과 만난 사진들이 실려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에서 개최된 9차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 앞서 4년 반 전인 2019년 12월 중국 청두에서 8차 한중일 정상회의가 개최됐는데 그 직전에 벌어진 일은 당시의 한미일 3각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아베 통화의 절반이상을 대북 문제에 할애

트럼프와 아베는 2020년 1월까지 정상회담을 14번, 전화 통화를 33번 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2019년 12월 21일 두 정상이 75분간 전화 통화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저는 특히 당시 문재인-트럼프 통화는 12월 7일 30분 통화가 마지막이었는데, 트럼프-아베가 1시간 15분간 통화한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한미 정상간 전화통화가 30분이라고 발표되면, 통역을 제외하면 15분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현안을 제대로 다루기에는 부족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미일 정상간 전화 통화가 1시간 이상 지속됐다면,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통역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40분 가까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20년 1월 도쿄의 유력한 외교 소식통으로부터 트럼프와 아베가 그날 1시간 넘게 통화하면서 통화의 절반 이상을 북한 문제에 할애한 사실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미일 두 정상이 40분동안이나 북한 문제를 놓고 대화했다는 얘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 통화는 트럼프가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며 도발을 시사한 북한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은지 묻고 아베가 답변하는 형태로 진행됐습니다. 당시는 북한이 12월 초 외무성 담화를 통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 결심에 달려 있다”고 밝혀 북한의 ‘성탄절 도발’ 가능성이 제기된 시점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아베가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전화를 걸어 대북 전략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고 합니다. 아베가 트럼프의 북한 정책에 대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던 것이 다시 확인된 겁니다.

아베는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도발을 사전에 막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북한이 도발할 경우에는 미·일 양국이 강력히 연대해서 대응하는 방안을 제언한 것이지요. 이 같은 논의에 따라 미·일 양국은 12월 24일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 중 북한이 도발할 경우에 대비한 시나리오도 점검한 것으로 취재됐습니다. 아베는 특히 북한이 미국에 도달하지 않은 중·단거리 미사일이나 핵실험으로 도발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강하게 대응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트럼프와 아베가 1시간 15분간 통화하면서 북한 문제에 대해 40분간 논의한 사실을 단독 보도한 조선일보 2020년 1월 14일자 지면.

당시 백악관은 “특히 북한의 위협적 성명을 고려해 긴밀하게 소통과 조율을 계속하기로 합의했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아베 총리도 통화 후 “최근 북한의 정세를 분석하고 앞으로 대응에 관해 면밀하게 조율했다”고 했습니다.

트럼프가 아베에게 대북 전략 조언을 요청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2019년 문재인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를 계기로 대북 문제에서 한·미 간 중요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이 미·일은 밀착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미·일 밀착과 달리 한·미 관계는 엇박자가 나고 있었습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미국 방문 직후인 2019년 12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 생일 축하 메시지를 문 대통령이 전해주면 좋겠다고 했다”며 중재자를 자처했습니다. 하지만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이 “미국 대통령의 친서로 직접 전달받은 상태”란 담화를 내면서 체면을 구겼습니다. 당시 외교가에서는 “친서 여부도 모를 정도로 한·미 간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뜻 아니냐”는 말이 나왔습니다. 문 대통령이 2020년 신년사에서 남북 협력 구상울 밝히자 미 국무부는 “모든 유엔 회원국은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 볼턴 회고록, 트럼프와 가장 친한 인물로 아베를 꼽아

트럼프는 2019년 한중일 정상회의 뿐만 아니라 중요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아베에게 의견을 구합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첫 미북 정상회담을 갖기 하루 전에도 트럼프는 아베와 통화합니다. 아베는 트럼프와 통화한 뒤 총리 관저 1층에서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까지의 최신 정보에 기반해서 대화하고 싶다고 해 통화했다”고 합니다. 미국과 일본이 자신들이 가진 최신 대북 정보를 공유했음을 시사한 겁니다. 아베는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할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했습니다.

트럼프와 아베의 긴밀한 관계는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도 묘사돼 있습니다. 볼턴은 자신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 백악관 회고록(The Room Where It Happened: A White House Memoir)’에서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직전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믿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밝혔습니다. 볼턴은 이 책에서 트럼프와 가장 친한 외국 정상으로 아베를 꼽았습니다. 이후 영국의 보리스 존슨 종리도 아베 총리만큼 가까운 인물로 등장했다고 했습니다. 아 베는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금장(金裝) 된 골프 드라이버를 선물하며 트럼프와 ‘브로맨스(남자들 간의 특별한 우정)’를 만들었습니다. 2019년 5월 나루히토 일왕 즉위로 후 레이와(令和) 시대가 시작되자 마자 국빈으로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는 온종일 아베와 골프장, 스모 경기장, 일식집을 다니며 “보물 같은 미·일 동맹”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최종건 전 1차관은 문재인 회고록에서 “아베 총리는 도금한 골프채도 선물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케미가 높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는데,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 지 모르겠습니다.

2019년 5월 아베 일본 총리는 트럼프 미 대통령을 레이와 시대의 첫 국빈으로 초청 후 골프회동을 갖고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일본에서 특파원으로 활동할 때 트럼프가 문 대통령과 우리 정부를 비판했다는 얘기도 자주 흘러나왔습니다. 트럼프가 2019년 8월 프랑스 비아리츠에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한국 정부에 대해 비난했다는 보도도 일본 언론을 통해 나왔습니다. 일본의 우익 매체인 산케이 신문은 익명의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 트럼프가 아베를 만났을 때 “한국의 태도는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한국은 현명치 않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발언도 나왔습니다. 일본에 주재하는 동안 취재원들로부터 비슷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아베 2차 집권 8년간 동맹 강화한 미국과 일본

미국과 일본은 2012년부터 2020년까지 8년간의 아베 2차 집권을 계기로 강하게 결속했습니다. 2020년 1월 미·일 신(新)안보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아베가 자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를 언급하며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기시는 1960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과 함께 1951년 맺은 안보조약을 개정한 신안보조약에 서명해 미·일 동맹의 바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아베 총리는 외무성의 이쿠라(飯倉)공관에서 열린 신안보조약 체결 기념식에서 “기시 총리는 당시 ‘지금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100년, 양국은 새로운 신뢰로 협력하라’고 말했다”며 “조부(祖父)와 같은 나이에 이른 나는 같은 맹세를 드리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기시 전 총리가 만든 미·일 신안보조약에 대해선 “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세계의 평화를 지키고 번영을 보증하는 부동(不動)의 기둥”이라며 “앞으로 동맹을 충실히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했다. 아베는 이날 행사에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손녀도 초청했습니다.

트럼프도 미·일 신안보조약 체결 60주년을 축하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60년간 두 위대한 국가 사이의 바위처럼 단단한 동맹은 미국과 일본, 인도·태평양 지역, 전 세계의 평화와 안보, 번영에 필수적이었다”며 “안보 환경이 계속 변화하고 새로운 도전이 생기면서 우리의 동맹이 더 강력해지고 심화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일본의 모테기 외무상. 고노 방위상 등 4명 명의로 발표된 공동 성명은 “미·일 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강고하고 폭넓으면서도 불가결한 것이 됐다”고 했습니다.

주미 일본대사를 역임한 후지사키 이치로(藤崎一郞) 나카소네 평화연구소 이사장을 2019년 12월 인터뷰했을 때입니다. 그는 일본이 느끼는 문재인 정부의 한·미 동맹에 대한 불안감을 솔직하게 언급했습니다.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굳건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을 다루는 것을 보면 한·미 동맹을 중시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 가끔씩 보입니다. 그래서 중국에 약점을 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후지사키 이사장의 이 발언은 문재인 정부를 불안하게 바라보던 일본 측의 입장을 압축하고 있는데, 중국에 약점을 잡힐 수 있다는 지적은 참고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P.S.

1. 2018년 5월 도쿄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공식행사만 마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해인 2019년 12월 청두 한중일 정상회의도 끝나자마자 곧장 귀국했습니다. 이 때 리커창 중국 총리는 성탄절인 12월 25일 아베를 세계문화유산인 쓰촨(四川)성의 수리관개시설 두장옌(都江堰)으로 초청, 함께 둘러봤습니다. 리커창-아베 두 총리는 문화 시찰을 전후로 회담, 오찬을 함께하며 4시간가량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두장옌 안내는 나의 오모테나시(진심으로 대접한다는 일본어)”라는 리커창의 말에 아베는 “시찰에 동행하고 점심에도 초대해줘 따뜻함이 느껴진다”고 화답했습니다.

두 총리의 지방 동행은 2019년에 이어 두 번째였습니다. 리커창이 2018년 5월 도쿄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일했을 때는 아베가 ‘투어 가이드’를 자임, 홋카이도의 도요타 자동차 공장을 함께 둘러보며 관계를 두텁게 했습니다. 당시에도 문 대통령은 회의가 끝난 후 도쿄의 주일대사관저에서 2시간 가량 머물다가 방일 10시간 만에 귀국했습니다. <5월 12일자 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6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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