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훈련’이라 쓰고 ‘가혹행위’라 읽는다?”
이번 사건으로 군 당국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가운데 "이번 일은 육군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전 육군훈련소장의 소신 발언도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1일 뉴스1과 군 당국과 경찰 등에 따르면 숨진 훈련병을 지휘했던 중대장 A 씨와 부중대장 B 씨는 현재 고향 집과 영내 숙소에서 각각 머무르고 있다.
A 씨는 최근 고향 집으로 내려갔으며 그와 고향이 같은 부사관이 동행했다. 이후 군 당국은 고향 집에 있는 가족과 연계해 그의 이상 유무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부중대장 B 씨의 경우 영내 숙소에 남아 있으며, 주변 동료들이 특이 사항을 살피며 관리 중이다.
이런 가운데 경찰은 이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강원경찰청 수사전담팀은 이날도 현장 조사와 참고인 조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경찰은 하루 4~6명 또는 그 이상의 부대 관계자들을 참고인 신분으로 차례로 불러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훈련병 사망 당시 상황과 사실관계 여부, 훈련 과정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지난 29~30일엔 숨진 훈련병 C 씨와 군기 훈련을 함께 받은 훈련병 5명 및 당시 상황을 목격한 군 관계자를 불러 조사했다.
경찰이 확보해 분석 중인 CCTV 영상엔 C 씨가 군장을 메고 연병장을 도는 등 '얼차려' 장면이 담겼으나 쓰러지는 장면은 명확히 찍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조사·검토해야 할 참고인과 수사자료가 많아 혐의자(업무상과실치사 및 직권남용 가혹행위)인 중대장 등 간부 2명이 입건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고성균(66·육사 38기) 전 육군훈련소장은 지난달 3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전직 육군훈련소장이 본 훈련병 순직사건' 영상을 올렸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고 전 소장은 이번 사건이 지휘관의 성별과는 관계없이 '규정 위반'과 '안일한 태도'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일반 회사에 사규가 있듯이 육군에는 육군 규정이 있는데 이를 중대장이 지키지 않았다"며 이번 일은 전적으로 육군의 잘못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고 전 소장은 "밤에 소란스럽게 떠든 것이 완전군장으로 군기훈련을 시킬 사안이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군기훈련 시 완전군장은 할 수 있지만 뜀걸음, 구보는 하지 못하게 돼 있는 규정이 있다"고 짚었다.
그는 '선착순'이 일제강점기 일본군 잔재로 군대 내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문화임에도 이를 행한 데 대해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고 전 소장은 "안타까운 것은 훈련병이 들어온 지 9일밖에 안 됐다는 사실"이라며 "신체적으로 단련이 전혀 안 된 상태에서 군기훈련을 해 동료가 중대장에게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보고를 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확인하지 않고 지속했다는 것은 간부의 자질이 대단히 의심스럽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 "훈련소는 군인을 만들기 위한 곳이고 부대는 적과 싸워 이기기 위한 조직이긴 하지만, 군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간부들이 장병들을 한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며 "그런 생각 없이 단순한 조직의 큰 기계의 하나의 부품으로 생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중대장이 여성인 탓에 사건이 일어났다는 취지의 여론이 형성되는 데 대해서는 "지휘관이 여자냐 남자냐를 떠나 규정된 군기훈련 지침을 무시하고 임의대로 무리하게 군기훈련을 시킨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규정 위반으로 일어난 일을 성별 문제로 해결하려고 하는 건 우리 군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라며 이 같은 여론은 경계했다.
'강한 훈련이 강한 장병을 만드는 거 아니냐', '젊은 친구들이 나약해서 그 정도에 쓰러지느냐' 라는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과거의 기준을 갖고 지금의 훈련병과 병사들을 재단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간부들의 리더십을 향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개인 생각이 아니라 육군 규정과 상위법에 의해서 부대 지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부대를 운영해야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수사 대상에 오른 중대장 A씨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해달라는 고발장이 제출됐다.
최대집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지난달 31일 대검찰청에 A씨를 형법상 살인죄와 직무유기죄, 군형법상 가혹행위죄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최 전 회장은 고발장에서 "중대장은 대학에서 인체의 해부학, 생리학, 스포츠의학, 운동생리학 등을 전공한 만큼 신체에 대한 지식과 군 간부로서의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며 "완전군장 상태에서 구보와 팔굽혀펴기, 선착순 달리기 등이 군기 훈련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고 당일 기온 등 날씨 환경을 고려하면 과도한 군기 훈련의 강요는 사람을 충분히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점을 확정적으로 또는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는 통상적인 업무 수행 중 의도치 않은 과실에 의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를 수 있음을 미리 확정적 내지 미필적으로 인식하고 행위를 강요한 것임으로 살인의 의도를 지니고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또 중대장이 지휘관으로서 취했어야 할 환자 상태의 평가, 즉각적인 군기 훈련 중지, 즉각적인 병원 이송 등 조처를 하지 않은 점에 비춰 직무 유기 혐의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최 전 회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 채상병 사건 등 억울한 죽음을 다루는 데 있어 법 집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이런 모습을 보는 군 내부의 기강이 해이해질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혹행위 등 여러 정황이 나오는 상황에서 가해자는 입건조차 하지 않고 고향에 가 있다고 하니 군과 경찰에만 사건을 맡기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고발하게 됐다"며 "국민들이 나서 이 사건을 감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훈련병 C 씨는 지난달 23일 12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다른 훈련병 5명과 함께 군기 훈련을 받던 중 쓰러졌다. 민간병원으로 응급 후송돼 치료받았으나 상태가 악화해 이틀 만인 지난달 25일 오후 숨졌다.
이후 군 수사당국은 C 씨 등에 대한 얼차려를 지시한 A 씨 등 간부 2명에게 C 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고 지난달 28일 관할 경찰인 강원경찰청에 이첩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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