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색' 서울 도심 가득 채운 퀴어행렬... "세상 밖으로 한 발짝 더"
중구·종로구 일대서 퍼레이드 행렬
"두려움 대신 벽장 문을 열고 한발짝 세상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23일 낮 12시 서울 중구 남대문로와 우정국대로 일대.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이곳에 남녀노소, 외국인 등 많은 시민들이 형형색색 화려한 무지개색깔로 무장하고 도로 곳곳에 가득 들어찼다. 무지개색 팔찌와 페이스페인팅을 한 시민들은 축제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등 저마다 방식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동성애 반대 단체들이 건너 교차로 부근에서 "빛으로 돌아오라"며 크게 확성기를 틀어놨지만, 오후가 되자 축제장은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기 힘들 정도로 붐볐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은 참가자들과 '프리허그'를 하며 호응을 얻었다. 이들은 '내 자식 퀴어'라는 문구가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아들, 딸 뻘되는 참가자들을 꼭 껴안고 환하게 웃으며 등을 다독였다. 지인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정을 나누고, 모두가 위안을 얻고 힘이 되는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스님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은 참가자들에게 오색팔찌를 일일이 채워주며 덕담을 건넸다. 동국대 성소수자동아리 QUD 회장 대해(법명)씨는 "오색팔찌는 상호 간 연결성과 다채로움에 대한 포용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성(性)소수자 행사인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가 서울 중구와 종로구 일대에서 열렸다. 앞서 서울시는 퀴어축제조직위원회의 서울광장 사용 신청을 불허했는데,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을지로 일대에서 열렸다.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대규모 집회도 동시에 열렸다.
이날 축제에는 총 61개의 부스가 설치됐다. 주한유럽연합(EU) 대표부와 노르웨이, 독일, 미국, 영국대사관을 비롯해 국가인권위원회, 변희수재단, 성소수자단체, 대학 동아리 등 총 60개 부스가 설치됐다. '무지개네컷' 부스에는 한참을 기다려야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줄이 길게 늘어서기도 했다. 주최 측은 약 15만 명이 방문한 것으로 추산했다.
평소라면 위축됐을 법도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이날만큼은 자유로운 복장을 입고 스스럼 없이 애정표현을 하기도 했다. '오늘 처음 퀴어축제 온 아빠', '오늘 처음 퀴어축제 온 엄마'라는 문구가 적힌 머리띠를 하고 함께 축제장을 찾은 성평등 교사 황고운(38)씨는 "부모님이 아주 보수적인 분인데, 오늘은 가족들 손을 잡고 왔다"며 "퀴어를 잘 모르는 사람도 서로 간의 인식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씨의 아버지는 "첫 느낌은 아직 어색하다"며 멋쩍어 했다. 올해 친구와 처음 축제를 찾았다는 김모(16)양도 "말로만 듣던 퀴어축제에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을 줄 몰랐다"며 신기해 했다.
이날 퀴어축제의 꽃은 '퍼레이드'였다. 참가자들은 이날 오후 4시30분쯤 무지개 깃발과 우산, 풍선 등을 들고 종각역을 출발해 명동성당, 한국은행, 서울광장, 을지로입구역까지 차량 행렬을 뒤따라 약 3㎞를 행진했다.
이날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는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도 열렸다. 시민단체 거룩한방파제는 지난해에 이어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축제장 부근에도 '동성애, 동성혼 반대'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별다른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양선우(홀릭)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은 "올해는 성소수자들을 긍정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한국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담았다"며 "혹시 퀴어축제에 왔다가 아웃팅 당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 서울광장 사용 신청이 불발된 것에 대해서도 "내년에도 서울광장 신청할 것"이라며 "성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오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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