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동의 없는 수가 통보는 의료 파멸의 길" 의협, 수가 협상 '거부'
대한의사협회(의협)이 정부에 "수가 협상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의협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은 지난달 31일 재정운영위원회 소위원회를 열고 내년도 의원급 수가 2차 협상을 가졌지만 결렬됐다. 올해로 3년째다. 협상이 결렬되면서 건강보험정책 최고 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내달 말까지 유형별 수가를 정하게 된다.
이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등 7개 단체와 2025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을 위한 협상을 완료하고 1일 재정운영위원회에서 이를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내년에 건보공단이 의료인에게 지급하는 요양급여 수가(의료서비스의 대가)가 평균 1.96% 오를 예정이다. 1조2708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병원 및 의원 등 2개 단체는 건보공단이 제시한 수가 인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협상 당일, 최안나 의협 총무이사는 협상장 퇴장 후 "공단은 '차등 적용'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인센티브'라고 표현했지만 어디에 적용한다는 것도 밝히지 않았다"며 "어디에 나눠줄지는 수가 협상이 끝나고 다시 보겠다고 했는데 말장난"이라고 지적했다.
최성호 의협 수가협상단장은 "공단이 2차 협상에서 '검체 영상·처치·수술 등 전체 인상률 1.9%에 (별개로) 플러스 0.2%를 준다'고 했는데 0.2%를 어떻게 분배하는지가 나오지 않았다"며 "그게 차등 적용이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2차 최종협상을 끝으로 더 이상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SNS에 "1.6%, 1.9% 이게 윤석열 대통령이 생각하는 사람 목숨값"이라면서 "아이들, 임산부, 암 환자, 어르신 목숨값"이라는 글을 올리며 반발했다. 1.6%, 1.9%는 건보공단이 대한병원협회(병협)와 의협에 각각 제시한 내년도 수가 인상률이다.
그동안 임 회장은 수가 10% 인상과 함께 '행위유형별 환산지수 차등 적용' 철회, '협상 전 밴드(추가소요재정) 선공개' 등을 요구했지만, 건보공단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행위 유형별 환산지수 차등 적용은 현재 행위별 수가에 곱해지는 '환산지수'를 필수의료 등 저평가된 의료 행위에 한해 더 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의협은 어느 진료과이든지 수가가 원가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행위 유형별 환산지수 차등 적용을 철회하고 정부가 모든 진료과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의협은 1일 '2025년도 수가 협상 거부 선언문'을 내며 "필수의료만은 살려보자는 제안을 철저히 무시한 채 무늬만 협상인 '수가 통보'를 고집하는 정부와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의 실망스러운 작태에 환멸을 느끼며 내년도 수가 협상 거부를 엄숙히 선언한다"고 밝혔다.
의협은 "지난달 30일 전국 각지에서 1만여 명 의사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정부가 한국 의료에 사망 선고를 내린 것에 대해 애도를 표한다고 강력히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이어진 수가 협상을 통해 다시 한번 의료에 사망 선고를 감행한 정부의 악독한 만행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보공단은 이리저리 회피하는 비겁한 모습을 보였고, 재정운영위원회의 꼭두각시 역할을 수행했다"면서 "협상 마지막 날까지 우리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했고, 수가 결정 구조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 의지조차 보이지 않은 채 이거라도 받으려면 받고 아니면 말라는 식으로 통보하는 등 재정운영위원회의 하명을 전하기에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필수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일차 의료기관의 왜곡된 수가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은 채, 필수의료 강화를 명분으로 특정 분야 수가만 인상하겠다는 유형별 환산지수 차등 적용을 고집하는 정부의 땜질식 의료개혁은 얼마나 사태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한 허구에 불과한 주장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의료개혁을 차질 없이 완수해 국민 건강 개선의 성과로 보여주겠다'고 수 차례 언급했지만, 수가통보를 반복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과 무책임한 태도를 면면히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현재의 의료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이 책임지는 자세는커녕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수가 정상화를 또다시 도외시했다"면서 "의료인의 동의 없이 이뤄지는 모든 제도 개선은 결국 의료개혁이 아닌 의료 파멸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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