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 “연기와 일상 두 가지 모두 잘 해내고 싶어요”
(시사저널=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천우희의 '맑눈광' 연기가 극찬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The 8 Show)》는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비밀스러운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쇼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달콤하지만 위험한 쇼다. 천우희는 이 작품에서 이전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열연한다. 그가 연기한 '8층'은 시간이 다 소진될까 전전긍긍하는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플라잉 요가를 하거나, 가짜 수영장에서 태닝을 즐기는 등 예측할 수 없는 '맑눈광'의 면모를 보여주며 쇼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토일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의 도다해 캐릭터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천우희는 영화 《신부수업》(2004)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데뷔 20년을 맞은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다. 영화 《써니》(2011)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충무로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어 독립영화 《한공주》(2014)로 각종 영화 신인상을 석권한 바 있다.
천우희는 "20년 동안 연기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런 연기를 오래 하는 걸 보면 내 길을 잘 찾았다 싶기도 하다. 앞으로도 평생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열일' 중인 성실한 배우 천우희를 만났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에 대한 반응이 좋다.
"2년 전에 촬영을 시작했던 작품이다. 드디어 오픈돼서 감회가 새롭다.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8층' 역할이다. '맑눈광' 캐릭터다. 폭력적인 것들을 보면서도 웃는 광기 어린 역할이다.
"일단 대본이 재미있었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했다. 그간의 캐릭터와는 달라서 호기심으로 한번 해볼까 싶어 처음부터 캐릭터에 이입해 읽었다. 많은 고민을 거치지 않고 '한번 해보지 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파고들수록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독특한 캐릭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1차원적으로 보낼 수 있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함께 출연하는 캐릭터와의 앙상블이 중요했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본능과 유희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이다. 대본을 보면서 '놀아볼 수 있겠다' '머리 풀고 놀아보자'라고 생각한 첫 작품이다. 한데 작품을 분석할수록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덜어내는 작업을 했다. 그 와중에 '내 역할은 정확하게 해내자' 싶었다. 덧붙여 이 캐릭터는 자칫 잘못하면 혐오스러울 수 있는 캐릭터다. 하지만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 미움받고 싶지는 않았다. '저렇게 말한 이유가 있어'라고 납득시키고 싶었다. 비현실적으로 표현해야겠다 싶어서 약간은 만화적인 접근을 했다."
왜 늘 어려운 역할만 하나.
"그 부분을 고민해 봤다. 생각해 보니 그 어려움을 스스로 부여해서 이겨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조금 변태적일 수도 있다(웃음). 하지만 고통을 이겨냈을 때 성장한다. 편한 길을 갈 수도 있지만 내가 추구하는 건 성장이다. 좌절하고 깨지고 힘든 것을 이겨냈을 때 얻어진다. 내가 미흡하고 미성숙하고 유약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스스로에게 미션을 주고 이겨낼 때마다 강인한 인간이 되는 것을 느낀다."
이번 작품으로 얻은 건 무엇인가.
"쉽지 않았다. 연기가 어려웠다는 게 아니고, 다른 작품과 촬영이 겹치면서 몸이 힘들었다. 심적인 부담도 있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나는 뭐든 충실하게 해내고 싶은데, 다른 작품과 함께 촬영하다 보니 내 성에 안 찼다. 그렇게 아주 힘들고 나니 또 얻어지는 게 있더라. 이제 어지간한 힘든 미션이 와도 덤덤해진달까. 스스로 인정하게 됐다. 그동안은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든 노력으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노력해서 안 되는 게 어디 있냐고 생각했다. 한데 노력해서 안 되는 게 있더라. 그걸 깨달았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일기 쓰고 생각하고 사색하며 조용히 지낸다. 그러면 회복되는 것 같다. 혼자 사색하는 게 잘 맞는다. 술 마시고 시끄럽게 보내는 게 오히려 공허함을 불러오는 것 같다."
일상은 어떻게 보내나.
"내 에너지의 총량을 연기에만 써서 나머지 시간은 주로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냈다. 한데 어느 순간, 연기 외에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걸 알았다. 인간을 표현해야 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정작 '내 삶은 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것 같더라. 그래서 최근부터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고 싶은 걸 많이 했다.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스킨스쿠버 자격증도 따고 일본 여행도 다녀왔다. 분명히 얻는 에너지가 있더라. 이제는 하나씩 마음의 동요가 일어날 때 실행하려고 한다. 지금은 그 모든 게 조화롭다."
구체적인 변화의 계기가 있나.
"단순하다. 스스로에 대한 어떤 자책과 실망감을 느끼고 있는 찰나, 외부적인 실망감이 합쳐지면서 그런 시기가 왔던 것 같다. 모든 것들에 의욕이 떨어지고 힘이 빠져있을 때 오히려 나를 돌아보게 되더라. 지금 생각해 보니 번아웃일 수도 있겠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요즘 상태는 어떤가.
"아주 즐겁다. 매번 그런 것 같다. 좌절하고 또 추스르고, 그러면서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다."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더 에이트 쇼》와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역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감사하고 행복하다. 단순히 호응이 좋아서 감사한 게 아니라 앞으로 무슨 역할을 하든 자신감과 책임감으로 할 수 있겠다는 힘을 얻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하다."
늘 좋은 결과를 보여준다. 그래서 천우희의 연기는 기대하게 된다. 부담감을 느끼나.
"부담감은 또 한편으로는 책임감이어서 오히려 동력이 될 때가 있다. '이것도 한번 해보자'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하는 마음이 든다. 의심과 두려움이 있지만, 성취감이야말로 큰 쾌감이다. 그래서 연기를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 아쉬움을 채우려고 다시 연기한다."
데뷔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됐다.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
"신선하고 기대감을 만드는 배우. 사실 처음에 연기를 시작할 때는 아르바이트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도 연기를 진지하게 생각한 게 영화 《써니》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현장이 유달리 파이팅이 넘쳤다. 모든 사람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그래서인지 연기가 재미있더라. '연기라는 게 뭘까'라는 질문도 스스로 던져보게 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집에서 그저 착한 딸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아이였다. 한데 그 현장에서 '배우'라는 정체성이 주어진 거다. 그 몫이 좋았다.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과 진지하게 자기 작업에 충실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내 몫을 잘 해내고 싶었다. 그때부터 연기라는 직업이 소중한 내 일이 되어버렸다. 살면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결국은 여기까지 왔다. 연기자로서의 계획이나 포부도 궁금하다.
"예전에는 계획을 참 많이 세웠다. 한데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 그래서 반대로 주어지는 상황들 속에서 내 인생을 찾아가는 재미가 또 있겠다 싶었다. 그때부터 계획했던 것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방향성만 같다면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다 보면 내가 도달하고 싶은 곳에 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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