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물가 더 높이는 ‘금값’ 농·축산물…구조부터 병들어 있다[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농업 경쟁력 키우기 위한 지원책 필요”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대한민국의 물가는 비싸다. 지난 4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집계한 자료를 토대로 보면, 2월 기준 우리나라의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는 1년 전과 비교해 6.95% 상승했다. OECD 평균 상승률 5.32%를 한참 웃도는 수준이다. 전체 OECD 회원국 가운데 하이퍼 인플레이션 상황에 놓여있는 튀르키예(71.12%)를 제외하면 아이슬란드(7.52%) 다음이다.
돌이켜보면 2023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동일한 15개 품목의 주요 식료품을 구매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우리나라는 101달러였다. 이는 OECD 평균 63.4달러의 1.6배에 이르는 수준이었다. 아이슬란드(97.98달러), 노르웨이(86.99달러), 룩셈부르크(82.19달러) 다음이 우리나라였다.
월 GDP 중 식료품 구매비 비중 3.8%
우리나라의 고물가 원인은 농·축산물 가격에 있다. 2023년 비교 당시 오렌지, 사과, 감자, 양파, 바나나, 토마토, 우유 등 7개 품목은 조사 대상 38개국 가운데 가장 비쌌다. 2024년 4월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주요국 물가 상황 비교에서도 우리나라의 물가 상승은 농산물 가격 오름세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일시적인 농작물 작황 부진으로 인한 현상이라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월평균 GDP에서 식료품 구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3.8%로 높게 나타난다. 이는 콜롬비아(5.3%), 멕시코(5.1%), 코스타리카(4.9%), 칠레(4.0%) 다음으로 높았다. 물가가 우리보다 훨씬 비싸다고 간주되는 스위스의 경우 조사 대상 38개국 가운데 21위로 나타났다. 가장 기본적인 식료품의 높은 가격이 지속적으로 체감 물가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식료품은 에너지와 더불어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공식 통계에서는 제외되고 있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물가는 식료품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식료품 가격이 높은 것은 농업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 농업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것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되는 농산물 가운데 상당수는 다양한 이유로 상품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농산물을 가공식품이나 각종 공산품 원료로 판매할 수 있다면 농가 수입은 올라갈 수 있지만 이런 경로가 확보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농가 입장에서는 전체 생산량 가운데 기준을 통과하는 일부의 가격을 높여 전체 생산비용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농산물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즉 대량 소비처와 소비 경로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것이 높은 농산물 가격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가공식품이 세계로 판매되고 있지만, 정작 이들 기업이 국내 농산물을 대량으로 사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일정한 품질의 농산품을 안정적으로 대량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이 없기 때문이다. 소규모로 분산된 농가에서 생산되는 품목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수집·유통에 많은 비용이 투자되어야 하지만 어렵게 수집된 농산물의 상당수는 표준화된 제품 생산을 위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영농방법뿐만 아니라 적절한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지만 소규모 자영농 규모에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대량 공급 역량이다. 대량으로 공급이 이루어진다면 수확 시기에 수요에 맞춰 유통 경로별로 물량을 조절하면서 가격을 유지하고 이익을 추구할 수 있지만 물량이 부족하다면 가격은 급등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 더해 유통 과정에서의 사재기 등까지 겹친다면 가격은 더욱 상승한다. 높은 농산물 가격은 소비자로 하여금 소비를 줄이도록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체 시장 규모를 축소시키게 된다. 비싼 가격이 시장 축소로 연결되며 전체 산업을 위축시키는 결과인 것이다.
농산물 가격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유통이 문제라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역시 생산 규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분산된 소규모 생산지의 물량을 확보해 거래 가능한 규모로 묶어내기 위해선 유통업자들이 많은 비용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밭떼기'(밭에서 자라는 농산물을 수확 이전에 통째로 거래하는 것)의 경우 일반적으로 농민들을 착취하는 구조라고 여기지만 실상은 다른 경우가 많다. 고령화로 인해 시장 정보에 어둡고 새로운 종자 및 농법에 대한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오히려 유통업자가 종자를 추천하고, 영농 단계별로 필요한 인력과 약제를 공급하면서 일정 수준의 상품을 생산하도록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당연히 이런 비용은 상품 가격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가는 영농 정책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은 명확하다. 영농 면적을 확대해 투자 규모와 효율성을 올려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우리나라의 가구당 영농 면적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고령의 농민이 사망하고 남겨놓은 농지는 대부분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자녀들에게 분할 상속된다. 이 과정에서 토지는 세분화될 수밖에 없다. 농촌에 거주하고 있지 않은 토지 소유자와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농지를 빌려 영농 규모를 키우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자체의 귀농 정책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도시에서 유치한 귀농인들은 많은 경우 큰 토지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소규모 토지로 분할해 구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시 토지의 세분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흔히 대기업의 농업 참여를 통한 기업농 육성이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역시 토지 문제로 인해 쉽지 않다. 최소한의 경제 규모를 달성할 수 있는 농지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속화되고 있는 기후변화 역시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품종 및 작목 변화는 많은 노력과 비용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농가들이 농사를 포기하면서 생산 기반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우리나라 농축수산물의 높은 가격은 기존 생산 시스템이 한계에 봉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1990년대에는 '신토불이'라는 구호가 호소력이 있었으며, 비교적 높은 농산물 가격을 부담하는 것이 공동체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지고 있다. 도시 거주자들은 왜 비싼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농업을 통해 농민과 농촌을 지원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제 이것을 분리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농민에게는 국민연금과 별도의 현금성 지원을 통해 복지를 제공하고 농업은 경쟁력 있는 산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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