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궁궐 담장까지 훼손…'바이럴 마케팅' 뭐기에[체크리스트]
과거 불법 사이트 '누누티비'도 333억 이상 이득…"수익금 환수·처벌↑"
[편집자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거나 쟁점이 되는 예민한 현안을 점검하는 고정물입니다. 확인·점검 사항 목록인 '체크리스트'를 만들 듯, 우리 사회의 과제들을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
(서울=뉴스1) 임윤지 기자 = 조선왕조 정궁인 서울 경복궁의 서쪽 관문 '영추문'(迎秋問)이 활짝 열린 것은 2018년 12월 6일이었습니다. 궁과 서촌 지역에서 오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이날 43년 만에 출입 통로를 전면 개방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영추문에는 궁궐 관리와 중인들이 주로 드나들었는데 전면 개방 5년 뒤인 지난해 12월 16일 불청객이 이곳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불청객은 스프레이로 영추문 담장을 낙서했습니다. 불법 사이트 주소를 담장에 적어놓은 것입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명소인 경복궁이 '낙서 테러'를 당한 것입니다.
경찰은 물론 시민들도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의아했습니다. 배후로는 '이 팀장'이라 불리는 30대 남성 강 모 씨가 지목됐습니다. 경찰은 5개월간 도피행각을 벌이던 그를 최근 검거했는데, 강 씨가 밝힌 범행 동기는 너무나 터무니없어 허탈하기까지 했습니다.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것처럼"
불법 사이트 운영자인 강 씨는 '바이럴 마케팅'을 위해 범행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바이럴 마케팅이란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것처럼 소문을 내서 홍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 불법 스트리밍·유통 사이트들도 이 효과를 노리고 불법 도박 등을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식으로 천문학적인 광고 수익을 벌어들여 파장이 일었습니다. 문제는 범인들이 검거돼도 범행 수익금을 제대로 환수하지 못하는 등 처벌 규정이 미비해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강씨는 미성년자 두 명이 불법 사이트 주소를 경복궁에 낙서하도록 사주한 혐의를 받습니다. 그는 10대인 임 군과 김 양에게 "경복궁 담장에 사이트 홍보 문구를 쓰면 500만 원을 주겠다"며 범행을 지시했습니다. 강 씨는 다른 미성년자인 A 군에겐 숭례문과 광화문 세종대왕상에도 스프레이로 낙서하라고 했으나 겁 먹은 A 군이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서 천만다행으로 미수에 그쳤습니다.
강 씨는 '논란'을 이용한 것입니다. 낙서 테러 후 거센 논란이 생기면 사람들이 자신의 불법 사이트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보여 사이트로 유입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경찰도 강 씨의 범행 의도를 '불법사이트 마케팅 효과 극대화'라고 보았습니다.
강 씨의 바이럴 마케팅 목적은 '돈'이었습니다. 사기 혐의로 징역형을 살고 지난해 3월 출소한 강 씨는 그해 10월부터 총 8개의 불법 사이트를 운영했는데, 사이트 인지도를 높여 불법 도박 사이트 배너 광고 단가를 높이기 위해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광고 1건당 500만~1000만원 선으로, 강 씨가 그간 사이트 운영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약 2억5000만 원으로 추산됩니다.
사실 바이럴 마케팅 자체는 불법이 아닙니다. 이 방법으로 마케팅에 성공한 케이스는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정도 창작성이 있는 '낙서 벽화'라고 불리는 그라피티로도 시민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곳들이 많습니다.
드라마 '도깨비'와 여러 CF 촬영지로 알려진 '신촌 토끼굴'은 원래 조명이 어둡고 냄새가 나는 등 환경이 열악해 개선이 필요한 곳이었습니다. 서대문구는 지난 2017년 6월 토끼굴 내부에 그라피티 작업을 할 수 있게 개방한 뒤 입소문을 타 유명 관광지로 자리 잡았죠.
바이럴 마케팅을 가장해 불법을 넘나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불법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누누티비' 화면 상하에는 불법 도박 등을 홍보하는 배너 광고를 최대 4개까지 동시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광고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진행하는 배너 클릭 광고의 평균단가가 1회 클릭 시 400원임을 고려하면 그간 누누티비의 접속사가 총 8348만 명인 것으로 드러났을 때 약 2년 만에 불법 도박 광고로 얻은 이익은 최소 333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검거 직전까지 광고 수익 노리던 '이 팀장'…"수익 구조 깨야" 누누티비 같은 사이트 운영자를 검거해도 범죄 수익금을 제대로 환수하지 못해 범죄 재발 방지가 미흡하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2018년 검거된 웹툰 불법 유통 사이트 '밤토끼' 역시 불법 도박 배너를 걸고 9억6000만 원 이상의 이익을 얻었지만 범죄 수익 환수금은 6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현행 표시광고법상 불법 마약류 및 도박광고 처벌 규정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경복궁 낙서를 통해 광고 효과를 노리던 강 씨 역시 검거되기 직전까지 불법 영상물 사이트, 도박 사이트를 구축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언론 노출을 통해 주목도를 높여 광고 단가를 높이려는 의도로 범행을 저질렀지만,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광고 단가는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불법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광고주들이 자신도 경찰 수사를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불법 사이트의 주요 수입원인 광고 게재를 중단시키는 방안이 최선이라 거론됩니다. 불법 사이트가 지속해 생겨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광고 수익 때문이죠. 한 IT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불법 콘텐츠 등을 어떻게 빨리 삭제하고 접속을 차단할지 위주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면서 "수익을 만들어주는 구조들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만들어야 악순환을 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immun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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