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비스,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쓰는 법[박찬희의 경영전략]
[경영전략]
경영자는 사람을 모아서 일을 시키는 사람이다. 때로는 회사 밖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컨설턴트나 변호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다른 시각과 전문성을 활용하고 나아가 영혼의 파트너로 도움을 주고받는 경우도 있지만 비싼 돈 내고 휘둘리다 회사를 망치는 일도 많다. 역사에는 낭인, 문객들의 언변에 놀아나거나 편하다고 용병에만 의지하다 아예 나라를 뺏긴 군주들이 즐비하다. 외부 전문가를 제대로 활용하는 전략을 생각해 보자.
컨설팅에 대한 오해
글로벌 컨설팅회사의 한마디를 ‘신의 계시’처럼 여기던 시절이 잠시 있었다. 외환위기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뭔가 다른 변화’를 요구하는 압력까지 더해진 독특한 공간에서 생소한 전문용어를, 그것도 영어로 듣다 보니 환상이 더해진 면도 있다.
비싼 양복, 폼 나는 시각자료도 한몫을 했다. 평생 다닌 회사를 세상의 전부로 생각하며 ‘젊은 애들이 뭘 아나? 해봤나’라는 꽉 막힌 시선도 문제지만 문제의 본질을 생각하지 않고 파워포인트 자료에서 헤어나지 못한 아둔함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컨설팅의 본질은 ‘믿을 만한 참고의견(second opinion)’이다. 회사 내부의 고정관념과 이해관계를 넘어 다른 시각에서 답을 찾아보는 것이다(맥킨지 창업자 마빈 바워의 말).
회사를 더 잘 알고 직접 문제를 풀어갈 사람들의 생각이 없이 컨설턴트에만 의지하면 말만 요란할 뿐이다. 컨설팅은 ‘인재공유 서비스’이기도 하다. 유능한 기획팀을 회사에 두려면 비용부담이 크고 충분히 활용할 일이 늘 있는 것도 아니다. 회사 안에 갇혀서 안목이 좁아질 수도 있다. 이런 본질을 잊고 덧없는 환상을 가지면 그럴듯한 말에 회사가 휘둘리고 까칠한 조언자가 아닌 눈치껏 형편 봐주는 사이가 되면 그저 그런 용역업자가 되고 만다.
경영컨설팅에도 전략 수준의 자문과 구체적 운영에 대한 지원이 있고, 직접 돈을 조달하고 투자에 참여하는 금융서비스에도 컨설팅의 요소가 있지만 보안이나 업무지원 등 매우 현실적인 일들이 뻔한 파워포인트 차트보다 더 민감하고 중요할 수도 있다. 최고경영자 수준의 헤드헌팅은 미래전략은 물론 승계작업까지 포함하듯이.
회사와 경영자의 판단이 단단하지 못하고 조직의 실행역량이 없으면 말만 요란하다 끝난다. 정보기술(IT) 분야의 대기업인 Q사의 예를 보자.
주요 업무들에 컨설팅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다 보니 과장만 되어도 주워들은 것만 많고 외부 도움이 없으면 일을 못한다. 최고경영자가 ‘경영혁신’을 내걸고 주요 보고를 컨설팅 기법에 맞추도록 시키니 사람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차트부터 그리고 공허한 경영학 용어들만 둥둥 떠다닌다. 보고자료에 영상자료에 성우 녹음까지 등장한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작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일은 꼭 필요한 사람들끼리 즉시 결정해서 주고받는다. 여기저기 물어보고 미루려 들면 ‘못난 사람’이 돼 신뢰를 잃는다.
외부자문과 이벤트성 회의로 일 근육이 퇴화된 문서정리 전문가는 낄 자리가 없다. Q사 사람들은 암기과외로 바보가 된 입시생과 다름없다.
갑(甲)과 을(乙)의 속사정
컨설팅사나 로펌도 돈 버는 회사고 사람들의 심란한 속사정이 있다. 장비와 네트워크를 깔아 놓으면 돈이 들어오는 회사와 달리 직접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하는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일부 사악한 전문가는 일거리를 계속 만들어 가거나 한밑천 벌고 얼굴 돌리는 신공을 발휘한다.
K컨설팅은 “문제는 CEO이니 당신이 물러나라”는 파격적 조언을 한 사례로 유명하다. 그런데 알고 보면 오랫동안 거래했지만 더 볼 일 없으니 적절히 털고 나간 것이다.
대주주와 이사회의 속마음을 파악한 결과일 수도 있다. 엔론 파산에 연루돼 무시무시한 처벌을 받은 회계법인에 대해서 “클라이언트가 잘나갈 때는 적극적으로 영업하고 불안해지면 담당 파트너를 바꿔 후려치고 떠나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쳤다”는 비딱한 분석도 있다.
G사는 대형 민형사 소송에 휘말렸는데 판결 전날까지도 큰 문제 없을 것이라는 유명 로펌의 말만 믿었다. 객관적 판단을 했으면 손실을 줄일 수도 있었기에 더욱 안타깝지만 이런 일은 흔하다. 사실 로펌 내부에서도 부정적 판단이 있었으나 워낙 낙관론이 강한 G사 경영진의 분위기에 입을 닫았다고 한다.
솔직한 의견을 제시하면 아예 로펌을 교체할 수도 있고, 계속 관계를 이어가면 오히려 사건에 대한 전문성이 확보되니 2심, 3심을 계속 맡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도 있었다. 공연히 솔직한 판단을 제시했다 날벼락 맞는 것보다 눈치껏 자리 지키고 실익을 얻는 신공은 회사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일이 복잡하고 커지면 여기저기 알아보고 읍소하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권세는 오히려 커지기 때문이다.
자기 확신만 강한(혹은 당장 마음이라도 편하고 싶은) G사 경영진의 자업자득이지만 적어도 계약에 따라 서비스를 주고받는 관계에서 짝사랑만 할 수는 없는 로펌의 속사정을 알아보고 헤아리는 지혜가 없었던 점도 답답한 일이다. 컨설팅사나 로펌, 혹은 회계법인이 클라이언트 회사의 심장을 움켜쥔 ‘갑(甲)’이 되는 경우도 있다.
국회나 정부에 간여하는 전문가는 회사에 우월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고 유력인사를 소개하거나 정보와 문제해결에 열쇠를 쥘 수도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의 파트너 지침을 보자. 전략 수준의 자문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최고결정권자와 인간적 관계를 쌓아서 사내에 호의적 여건을 만들라고 써 있다. 최고위층의 세상인 미술관이나 오케스트라의 후원회, 대학 이사회 등에 무료 컨설팅이라도 해서 끼어들어 보라는 구체적 조언도 나온다. 좋게 보면 경영자와 교감해서 직접 문제의 핵심을 짚고 신뢰를 얻으라는 뜻이고, 비딱하게 보면 밑의 사람들 딴소리 못하게 윗선을 틀어쥐라는 얘기다.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
영악한 을(乙)에게 넋 놓고 휘둘리는 갑, 여기 편승해서 실리를 얻는 군상들은 어디에나 있다. 컨설팅, 법률지원의 예를 들었지만 로비, 홍보, 헤드헌팅도 다르지 않다. 영업 대리점이 연말에 실적 올려줘서 거래처 인사에 영향 주는 일도 마찬가지다.
M그룹의 최고경영자는 참신한 차트에 해외사례까지 더해서 제공하는 컨설팅사의 자문에 거의 중독되어 있다. 컨설팅사는 주요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기획실장에게 별도로 ‘회장님 얘깃거리’를 제공하고 계열사 임원들은 자기들 권한의 일거리를 주며 컨설턴트들에게 영합한다.
이를 보고 법무팀은 로펌과 법조계에, 재무팀은 금융계와 경제지에 동맹군을 만든다. 소통의 다른 경로가 되어야 할 외부자문이 아부와 정치의 수단이 되고 까칠한 시선을 제공할 ‘악마의 변호사’가 그냥 악마가 된다.
사업은 생물이니 책상머리에선 안 되는 일도 부딪히다 보면 길이 열린다. 사업 파트너는 같이 잘되어야 하는 ‘운명 공동체’이니 죽기살기로 사업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길을 연다. 쉽게 얼굴 돌리기도 어렵다. 그러나 현장에서 진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보고서 꾸밀 시간도 없고 그들의 거친 언어는 무식함으로 치부된다. 한심하지 아니한가?
이쯤 되면 필자의 편파적이고 까칠한 성악설이 불편할 것이다. 세상에는 선의로 돕는 전문가도 많다. 신뢰가 쌓여 영혼의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약도 독성이 있고 가려서 제대로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외부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전문가의 자긍심과 전문성을 동맹의 힘으로 만드는 지혜가 절실하다는 뜻이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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