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에 웃었는데 사람이 아니라고?”…전세계 충격에 빠진 이유 [박민기의 월드버스]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4. 6. 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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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처럼 말하는 ‘챗GPT-4o’ 등장
사용자들 기쁨 넘어 ‘충격과 공포’
안전한 사용 위한 규제법 마련 몰두
EU 시작으로 주요국들 행동 나서
한국은 지지부진…‘AI기본법’ 폐기
인공지능(AI) 엔지니어가 휴머노이드를 조립하고 있다 [AP = 연합뉴스]
한 남성이 머리에 고깔모자를 쓴 친구와 초가 꽂힌 생일케이크를 보여주며 “우리가 뭐하는 거 같느냐”고 묻습니다. 이내 1초 만에 대답이 돌아옵니다.

“고깔모자와 생일케이크를 보니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자리인 것 같네요.”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상대방은 답변에 그치지 않고 질문자에게 웃으면서 농담까지 던집니다.

“근데 진짜 생일을 축하해주는 파티가 맞나요, 혹시 케이크를 먹기 위한 핑계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요?”

그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대화이지만 답변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입니다. 이전에는 사람이 던진 질문에 단순 답변만 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소통을 하면서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하고 감정을 담은 답변을 내놓는 수준에 다다랐습니다. 대화 수준이 일방통행에 그치지 않고 사람과 AI가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초기 단계까지 기술력이 발전한 것입니다.

최근에 출시된 최신 버전 챗GPT-4o(포오)를 향한 전 세계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4o의 ‘o’는 한국말로 ‘모든’을 뜻하는 ‘옴니(omni)’의 준말로, 텍스트에만 의존했던 이전 모델들과 달리 최신 버전은 텍스트·비전·오디오(음성) 등 모든 분야에서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뤄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챗GPT-4o의 성능 발전 속도는 특이점을 넘어서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전 모델인 챗GPT-4와 비교했을 때 답변 처리 속도는 2배 빨라졌는데 운용 비용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음성모드로 말을 걸면 마치 사람처럼 답변합니다. 챗GPT-4o의 음성 반응 속도는 232밀리초(1밀리초는 1000분의 1초)로 평균 속도는 320밀리초 정도입니다. 이는 실제 사람과 대화할 때와 같은 반응 속도로 이전 모델들이 3~5초에 걸린 것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성능이 개선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AI 발전 속도에 일부 사람들은 기쁨을 넘어 충격과 공포까지 느끼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일상생활이 한층 더 편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은 마치 ‘진짜 사람’처럼 대답하고 말하는 AI를 보면서 위기 의식을 느끼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출시된 AI 관련 영화들을 보면 고도의 기술 발전으로 자아를 갖게 된 AI 로봇이 인류를 위협하고 사회를 발 아래 두기 위해 싸우는 영화가 대부분입니다. 2004년 개봉한 배우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로봇’이 대표적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자아를 갖게 된 한 로봇이 ‘인간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보호해야 한다’ 등의 원칙을 깨고 다른 로봇들과 함께 인류사회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합니다.

인공지능(AI) 로봇 모형이 챗GPT 로고를 가리키고 있다 [로이터 = 연합뉴스]
이 같은 우려가 이제는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전 세계 나라들은 AI의 본격 도입에 앞서 안전장치를 구축하기 위한 규제법안 마련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AI 기술이 이미 피할 수 없는 하나의 파도로 다가온 만큼, 이를 안전하고 공정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어 가능한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AI 규제법안 마련의 출발선은 유럽연합(EU)이 끊었습니다. EU는 최근 포괄적 AI 기술 규제법안인 ‘AI법’을 최종 승인했습니다. 2021년 관련 법안이 발의된 지 약 3년 만인데, AI 관련 포괄적 규제 법안이 통과된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입니다.

해당 법안은 AI 기술을 위험 수준에 따라 네 단계로 분류하고 규제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가장 높은 단계인 ‘허용될 수 없는 위험’부터 순서대로 ‘고위험’, ‘제한적 위험’, ‘저위험’ 등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날씨를 알려주는 앱의 경우 저위험으로 분류돼 규제를 받지 않지만, 의료·교통·교육 등 사람들의 안전과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됩니다.

AI 기술 개발에서 전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도 관련 규제 법안 마련에 착수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개발 및 사용을 위한 행정명령’을 발동했는데, 이는 사실상 미국의 첫 AI 규제에 해당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미국도 사용자의 안전과 개인정보 보호 등을 최우선시하는 만큼 AI 관련 기업들은 개발 단계부터 취약점을 분석해 안전성 테스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미 정부에 보고해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아직까지 이들 국가와 경쟁할 수 있는 높은 AI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규제 관련 법안 마련은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AI 산업 육성에 필요한 정부 전담 조직 신설과 규제 대응 등이 담긴 ‘AI 기본법 제정안’은 전체회의가 무산된 이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결국 폐기됐습니다.

AI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금액도 한국은 주요 국가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보고서 ‘AI 인덱스’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 AI 투자 규모는 672억달러(약 91조9000억원)로 세계 최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EU는 90억유로(약 13조3500억원), 중국은 73억달러(약 10조원)인 반면 한국은 3억8000달러(약 4100억원)에 그쳤습니다.

스마트폰과 가전제품, 자율주행 등을 넘나드는 한국의 AI 기술력이 전 세계에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안전성과 균형성이 보장된 규제 법안이 조속히 마련되고 투자 규모가 대폭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매일 쫓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알면 알수록 더 좋은 국제사회 소식.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 주의 가장 핫한 이슈만 골라 전해드립니다. 단 5분 투자로 그 주의 대화를 주도하는 ‘인싸’가 될 수 있습니다. 읽기만 하세요. 정리는 제가 해드릴게요. 박민기의 월드버스(World+Univers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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