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실 입주율 고작 15%”…한 때 묻지마 투자처였는데, 신불자 양산 주범된 이곳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robgud@mk.co.kr) 2024. 6. 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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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산업센터 담보 대출 잔액
2020년 17.8조→2023년 35.7조 껑충
같은 기간 연체율 0.09%에서 0.20%로 2배↑
공실 속출에 투자자 피해 늘어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한 지식산업센터가 경기 불황으로 텅텅 비어 있다. [이충우 기자]
부동산 호황기 때 인기 투자처로 주목받았던 지식산업센터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담보대출 연체율도 최근 3년간 가파르게 오르는 등 부실화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권을 중심으로 지식산업센터 투자에 대한 경고음이 나온다.

‘아파트형 공장’으로 알려진 지식산업센터는 여러 중소·벤처기업의 사무실이나 소규모 공장이 입주할 수 있도록 3층 이상으로 지어진 집합 건축물을 말한다. 부동산 가격 상승기였던 201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규제 완화 바람을 타고 우후죽순 생겼다.

당시 일반 공장과 달리 수도권 공장총량제의 적용을 받지 않고, 분양이나 매입 가격의 약 80%까지 대출이 가능해 투자수요가 몰렸다. 그러나, 고금리로 시장이 침체된 현재 절반 이상 공실인 곳이 수두룩한 상황이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조성된 택지에 지식산업센터가 과도하게 공급된 경기 고양시나 하남시, 평택시 등지에선 공실률이 90%에 달하는 곳도 적지 않다.

지난달 30일 강민국 의원(국민의힘)이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등 16개 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7조8000억원쯤이던 지식산업센터 담보 대출 잔액은 지난해 35조7000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전국 지식산업센터의 승인·등록 건수는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20년 4월 1167곳(건축 예정 포함·한국산업단지공단 팩토리온 자료)에서 올해 4월 말 1539곳으로 약 32% 늘었다. 지식산업센터의 정부 인허가 건수도 2010~2017년 연평균 56건에서 2018~2023년 연평균 108건으로 급증했다.

문제는 경기 침체로 입주 기업이 잘 나타나지 않는 데다 고금리 기조까지 겹치면서 지식산업센터 담보 대출의 연체율도 함께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에 따르면 2020년 말 평균 0.09%에 머물던 지식산업센터 담보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0.20%로 2배 이상 치솟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식산업센터의 리스크를 판단할 때는 일반 상가 공실률보다는 기업들의 입주율을 더욱 중요하게 본다”면서 “올해 초 경기 평택, 구리, 고양 등에 있는 일부 지식산업센터에 대해 조사한 결과 기업 입주율이 20~30%에 불과한 곳이 많았다”고 말했다.

일례로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930실 규모의 한 지식산업센터의 경우 작년 7월 준공했지만, 이달 넷째 주까지 입주율은 약 50%에 불과했다. 인접한 곳에 있는 또 다른 지식산업센터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사무실 물량이 1200개에 달하지만, 입주율은 15%에 불과했다.

지식산업센터가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정부·지자체의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지원 탓이 크다. 지식산업센터는 도시 인근 공장 용지가 부족해 규모가 작거나 무등록 불법 공장이 난립하는 일을 막기 위해 1988년 ‘아파트형 공장’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됐다.

처음에는 공공기관만 지을 수 있도록 했지만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1995년 민간에도 빗장을 풀었다. 같은 해 정부는 아파트형 공장을 수도권의 공장 설치를 제한하는 총량제 대상에서도 제외했다. 이후 서울 구로동과 가산동 등지에 민간 주도 공급이 본격화했다.

문제는 2010년대 들어 생겼다. 2010년 이름을 지식산업센터로 바꾼 정부가 이 시설을 중소기업 육성의 산실로 규정해 택지 개발 지구에 적극적으로 짓도록 유도했다. 당시 정부와 지자체, 여러 공공기관은 신도시 등 택지 지구의 베드타운화를 막고 자족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명분으로 지식산업센터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 지식산업센터 인허가 건수는 2010~2017년 연평균 56건에서 2018~2023년 평균 108건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 수도권에서는 공장 총량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규제 공백을 파고들어, 비수도권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건립 예산 지원(공공 임대형 지식산업센터 한정) 혜택을 등에 업고 불티나게 지어졌다.

지식산업센터는 부동산 광풍기 유망 대체 투자처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시행사는 분양 대행사를 통해 ‘2000만원만 투자하면 노후가 대비된다’는 문구로 투자자를 유혹하기도 했다. 지식산업센터 수분양자는 부동산 관련 금융 규제가 가장 강력했던 2021년에도 주택이 아니라는 이유로 분양가의 90%까지 대출받을 수 있었다.

절반 이상 공실에… 경매로도 안팔려
고양 향동에 있는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에 지식산업센터 광고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이승환 기자]
부동산 투자 열기가 식은 지금 전국의 지식산업센터는 공실 현상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20~30대의 명소로 떠올라 스타트업 입주 수요가 큰 서울 성동구 성수동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은 전체 호실의 4분의 3 이상이 불 꺼진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2010년대 택지가 조성되면서 지식산업센터 시행사가 몰려들었던 경기도 고양시와 하남시, 평택시 등지에는 90%가 공실인 곳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공실 속출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 몫이다. 고금리 대출 이자까지 부담해야 하는 이중고를 견디다 못한 투자자는 새 주인을 찾고 있지만 돈을 못 버는 수익형 부동산을 사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동산 실거래가 정보 플랫폼 부동산플래닛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식산업센터는 3395건 매매돼 투자 열풍이 불었던 2021년(8287건) 대비 거래량이 절반 이상 급감했다. 동기간 거래 금액도 3조4288억원에서 1조4297억원으로 절반 이상 떨어졌다.

일부 투자자는 경매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지지옥션 자료를 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법원 경매에 나온 전국 지식산업센터 매물은 총 35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75건과 비교해 102% 급증했다.

특히 지난달엔 경매 진행 건수가 116건에 달했다. 이는 전년 동월 50건 대비 132% 늘어난 것이다. 경매 매물은 증가하고 있지만 수요는 적어 낙찰률은 지난달 기준 36%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지식산업센터 공급이 계속되고 있어 향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이달 기준 전국에서 건축 중인 곳만 103곳이고 미착공도 236곳에 달한다.

준공을 앞둔 지식산업센터가 아직도 많지만 임대 수요는 저조해 앞으로도 공실이 늘고 경매 물건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성빈 어반에셋매니지먼트 대표는 “지식산업센터는 과거 저금리 상황과 부동산 투자 광풍으로 공급이 크게 늘어난 반면,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수요는 되레 줄어든 상황”이라며 “충분한 사업성 검토 없이 투자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는 이어 “투자자 커뮤니티 등지에서 임대업을 포기하고 사업자로 등록해 직접 입주하는 방법이 공실 해소의 돌파구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면서 “이때는 은행에서 대출 연장 거절이나 원금 일부 상환 통지를 받을 우려가 있고, 임대업 폐업 시 과세 당국에서 환급받았던 부가가치세를 반환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지식산업센터 투자 실패로 세금이나 대출금을 갚기 위해 제2금융권을 돌다 결국 신용 불량자가 되거나, 정보기술(IT) 업종으로 사업자를 등록해 입주한 뒤 불법 마사지 업장을 운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말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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