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지니 더 그리운 맛…통조림으로 특별요리를 [ESC]

한겨레 2024. 6. 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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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안주가 뭐라고 꽁치전
꽁치통조림으로 만든 꽁치전. 박찬일 제공

서민들도 먹었던 등푸른 생선
이젠 국산 꽁치 구경도 힘들어
저렴한 통조림 이용해 술안주

강원도 속초에 엄경선이라는 친구가 있다. 이 연재에도 종종 등장한 적이 있다. 이맘때면 전화가 온다.

“니 생각나서 나가보니까, 산 오징어가 철이 일러서 아직 한 마리에 2만원이다. 5천원은 해야 먹을 만할 텐데. 그때 다시 연락할게. 잘 지내라 친구야.”

속초의 수복탑

속초에 갈 때면 그와 가끔 수복탑 난전에 갔다. 정식으로 사철 여는 가게가 아니라, 산 오징어가 나오는 철에만 천막 치고 임시로 열린다. 5월에 열어서 추석 무렵에 닫는다. 속초 명물이다. 산 오징어를 회 치고, 남은 내장과 먹물은 라면 끓여 먹는다. 세상 별미가 따로 없다. 근래에는 오징어가 안 잡혀서 비싼 게 흠이다. 과거 오징어가 지천일 때 가난한 어부의 과부들이 산 오징어를 함지(나무로 네모지게 만든 그릇)에 받아다 팔면서 생겨난 곳이다. 사연 있는 산 오징어다.

속초는 함경도 실향민들이 많이 내려와 산다. 수복탑이란 고향을 향한 그들의 염원이 담긴 탑이다. 모자탑이라고도 한다. 엄마와 아들이 북쪽을 향해 바라보는 모습을 조각해서 탑 위에 얹었다. 그 탑을 처음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는 어디 갔을까. 명태 잡으러 배 타고 나갔을까. ‘이까바리’(오징어잡이를 뜻하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어부들의 말) 갔을까. 아니면 어디 납북이라도 되었을까. 아버지 없는 모자는 그 후에 어떻게 살았을까.

그 속초 친구는 안 그래도 옛날 정권에서 일어난 납북어부 간첩조작사건 해결을 위해 뛰고 있는 시민운동가이기도 하다. 납북어부란 고기 한 마리 더 잡겠다고 아슬아슬하게 어로한계선 쪽에서 움직이다가 북으로 납치되었다가 귀향한 사람을 뜻하는데, 나중에 경찰과 검찰이 간첩으로 조작해 수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냈다. 패고 고문해서 간첩질을 했다고 허위자백을 이끌어내는 식이었다.

“증거도 없고 어차피 조작이니까 경찰서에 정식으로 가두고 수사할 수 없었지. 여관 같은 데 방 잡아서 몇날 며칠을 패고 어르고 해서 조서 꾸며서 간첩으로 기소하는 일이 아주 흔했어. 그 숫자가 워낙 많아서 속초에선 이리저리 한두 다리 건너면 피해자 없는 집안이 없을 정도야. 특별법 만들어서 국가가 사과하고 배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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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싸서 홀대받던 시절

그는 갈 때마다 별난 집을 알려준다. 대구탕을 맛있게 하는 집, 옛날식으로 만드는 오징어순댓집, 무슨 선장님이 하는 잡어요릿집, 어쩌다가는 순댓국집. 최근에는 꽁치전 하는 집을 데려갔다. ‘먹거리포차’라는 집이다. 외부에 알려진, 속초에서 유명한 꽁치는 ‘손꽁치’다. 꽁치 종류가 아니라 어로방식을 뜻한다. 물풀을 뜯어 위장한 목선을 띄우고 산란하려는 꽁치를 유인해 잡는 방식이다. 물풀을 보고 달려드는 꽁치를 그저 손으로 건져 올리다시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는 바닷속 사정이 달라져서 보기 어려운 옛날 일이 되었다.

먹거리포차에 앉았다. 과연 꽁치전이 안주로 나온다. 속초 명물인 아바이막걸리에 한 점 먹는다.

“원래는 가난한 사람들 밥반찬도 하고 안주도 하고 그러던 거지. 꽁치가 원래 개락(큰비로 갑작스럽게 불어난 물처럼 많다는 뜻)이었잖나. 이제는 비싸서 못 먹어. 이 집에서나 만들어주면 술안주 한다.”

엄경선의 속초 사투리는 들으면 아주 리드미컬하다. 원래 속초말이 그렇기도 하다. 고저장단이 분명하다. 탁탁 끊었다가 이었다가 다시 급격히 높아졌다가 롤러코스터처럼 쑥 가라앉는다. 사투리는 다 아름답지만 속초말은 들을수록 매력적이다.

꽁치는 얼마나 흔한 생선인가. 나 같은 가난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먹었다. 꽁치는 마리로 파는 법이 없었다. 워낙 싸서 일고여덟 마리가 최소 단위였다. 리어카 끌고 동네마다 다니는 생선장수는 가을·겨울이 제철이었다. 온도가 낮아지니 고기 물도 좋았고, 그때쯤 생선이 제일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꽁치·고등어·물오징어·동태·양미리·도루묵·갈치·임연수 같은 생선을 팔았다. 생선장수 아저씨들은 리어카에 크고 둥근 나무도마를 싣고 다니며 툭툭 쳐서 손질하고 필요하면 굵은 소금을 훌훌 뿌려주었다. 비닐봉지가 없던 시절이라 신문지에 싸서 대충 주는데, 꽁치를 사서 집에 도착하면 손에 기름기가 흥건히 배었다. 신문지 잉크 냄새와 섞인 꽁치 비린내는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그놈을 구울 때 나는 하얗다 못해 푸른 연기를 생각하곤 그저 구미가 돋을 뿐이었다. 등뼈 안으로 젓가락을 넣어 싹 살을 발라내는 아버지의 솜씨가 기억난다. 녹진하고 쓴 내장이며 간혹 오도독한 알집이며 씹고난 후에 혀에 걸리던 꽁치비늘의 촉감까지.

꽁치는 정말 쌌다. 허름한 횟집에서도 몇 마리씩 구워서 공짜 안주로 냈다. 꽁치가 싸서 홀대받았지 맛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비싸지니까 이제야 사람들이 알아준다. 배 불룩하고 기름기 오른 가을 꽁치는 한 마리에 1만원이 넘더라. 그나마 국산은 구경도 힘들고 타이완산 냉동꽁치가 보통이다. 대신 통조림은 아직 싸다. 한 캔에 3천원을 넘지 않는다. 옛날엔 통조림도 큰 꽁치가 들었는데 요새는 아주 잘다. 그래도 맛있다. 꽁치김치찌개는 음식 대우를 못 받는 거친 음식이었지만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한국요리에서 한 자리 차지했다.

친구 엄경선을 생각하며 꽁치전을 만든다. 보나 마나 이 글을 읽고 뭐라 하겠지. 꽁치전을 그렇게 만들면 맛이 있겠나, 속초식은 말이야 어쩌구. 옛날 속초 아바이들은 소주를 마셨다. 뱃일이 힘들어서 한 잔, 일이 없어서 한 잔, 고향 생각에 한 잔. 이제 아바이들은 거의 돌아가셨다. 오늘은 소주 대신 파주에서 나온 심학산 막걸리로 한잔한다.

꽁치전


재료




꽁치통조림 1캔, 부침가루 5큰술, 달걀 3개, 진간장 1큰술, 대파 1줄기, 다진 당근 2큰술, 청양고추 2개, 식용유 적당량.

양념장

진간장 3큰술, 참기름 1큰술, 후추 1작은술, 다진 청양고추 반 개, 대파 약간, 깨소금 1작은술, 고춧가루 1작은술.

1. 꽁치캔은 국물째 으깬다. 대파·청양고추는 다진다. 모든 재료를 고루 섞는다.
2. 양념장을 만든다.
3. 1의 재료를 적당한 크기(큰 동그랑땡이나 작은 전 크기)로 빚는다.
4. 식용유를 달궈 앞뒤로 잘 지진다.
5. 꽁치전을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글·사진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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