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 네타냐후에 체포영장…바이든의 선택은?
(시사저널=이동진 프랑스 통신원)
5월20일 국제형사재판소(ICC) 카림 칸 수석 검사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포함해 총 3명의 이스라엘 정부 고위 관계자와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를 비롯한 3명의 하마스 고위 관계자를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칸 수석 검사가 내세운 혐의점은 2023년 10월7일부터 가자지구에서 민간인에 대한 고의적 공격 지시, 기아, 몰살 등이라고 프랑스앵포는 전했다.
프랑스 내 국제법 전문 변호사인 요한 수피는 유엔과 NGO들이 가자지구 내 기아 위험을 수차례 경고해 왔지만 그것을 알고도 이스라엘군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방해했으며 이스라엘군이 사용한 폭탄의 유형과 군사전략을 보면 민간인 사살 의도가 있다고 칸 수석이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하마스 지도자들은 몰살, 강간 및 여러 형태의 성폭력 그리고 인질 납치 등의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다고 프랑스 24방송은 보도했다.
프랑스 인권변호사이자 전범검사였던 리드 브로디 변호사는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21년이 넘는 기간 동안 ICC는 서방국가 고위공무원을 기소한 적이 없다"면서 "만약 네타냐후 총리를 상대로 체포영장이 발부된다면 나치를 상대로 한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처음으로 ICC에 의해 구금되는 최초의 서방국가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영장 발부되면 이스라엘은 '국제적 고립'
ICC의 기본법인 로마 규정에 따르면 검사가 기소할 경우 전심 재판부의 사전 심사를 거쳐야 한다. 프랑스24와의 언론 인터뷰에서 요한 수피 변호사는 "전심 재판부 치안판사들이 체포 영장을 확정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특히 카림 칸 수석 검사는 무죄 방지를 위해 높은 수준의 입증을 수사팀에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실제 2024년 1월부터 칸 검사는 수집된 증거들이 혐의를 뒷받침할 만큼 충분히 강력한지 확인하기 위해 8명의 독립적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의뢰했다고 수피 변호사는 덧붙였다.
또 전심 재판부가 결정하는 데까지 3개월은 넘지 않을 것이라고 수피 변호사는 보았다. 프랑스 형법 전문가인 임마뉘엘 다우드 변호사는 프랑스24와의 인터뷰에서 전심 재판부가 심사하는 데 정해진 기간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1~2개월 소요되고 또한 심한 외부 압력을 피하기 위해 3명의 치안판사가 상당히 신속하게 심의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로마 규정에 의하면 ICC가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 관련 관할권을 행사하기 이전에 로마 규정 당사국인 이스라엘 국내 법원이 우선적으로 관할권을 가진다. 오직 이스라엘이 해당 범죄를 처리할 능력 또는 의사가 없는 경우에 한해 ICC가 보충적으로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렇기에 5월20일 칸 수석 검사의 기소에 대해 바하라브 미아라 이스라엘 검찰총장은 "이스라엘 사법 체계를 무시한 것"으로 간주했다고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전했다. 미아라 검찰총장은 또한 "ICC가 창설된 이유는 무법이 만연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상황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칸 수석 검사의 기소는 로마 규정이 정한 보충적 원칙에 어긋난다"고 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실제로 이스라엘 사법부는 집단학살을 부추기는 발언을 한 정치인들에 대한 법적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군검찰 또한 형사소송을 정당화할 수 있는 수십 건의 위법행위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 직접적 지시를 내린 총리, 국방부 장관 등 고위 공직자 수사에 대해선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해당 매체는 전했다.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 캐나다 연방 법무장관 어윈 코틀러는 ICC의 기소는 "로마 규정에 위배된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대신 2017년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독재정권이 했던 방식처럼 이스라엘은 국가 원수가 체포될 수 있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 법무부가 해당 지도자들에 대한 조사 개시를 발표함으로써 ICC와 합의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는 최근 기사를 통해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다면 그것은 네타냐후와 갈란트에 대한 형사처분을 넘어 국제사회 속 이스라엘의 지위에 재앙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24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로마 규정을 비준하지 않았으므로 ICC에 사법적 협력을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을 제외한 유럽 대다수 국가를 포함해 전 세계 124개국에서 수배자가 된다. 만약 네타냐후가 한국을 방문한다고 가정한다면 2002년 로마 규정을 비준한 대한민국은 네타냐후 총리를 체포해 네덜란드 헤이그로 보내야 할 의무가 있다. ICC의 체포영장은 네타냐후의 임기가 끝나도 효력이 중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상당한 제약을 받을 것으로 임마뉘엘 다우드 변호사는 평가했다.
프랑스24는 체포영장 발부 여부가 앞으로 이스라엘을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시킬 수도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와 같은 반열에 오른 이스라엘 총리와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 것이라고 요한 수피 변호사는 예측했다.
바이든은 네타냐후를 끝까지 보호할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5월20일 카림 칸 수석 검사의 체포영장 요청을 "터무니없는 일"로 간주하며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동등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에도 일부에서는 민간인 사살, 라파 공격을 두고 워싱턴과 예루살렘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만에 하나 네타냐후 총리가 전범 신세를 면치 못한다면 이스라엘을 향한 미국의 지지도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최근 미국 하원이 네타냐후를 미국으로 초대했지만 아직 백악관은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보도했다.
설상가상으로 ICC와 더불어 국제사법재판소(ICJ)의 5월24일 라파 작전 중단 명령이 지켜지지 않은 가운데 강제력을 동원한 유엔 안보리가 결의안을 통해 이스라엘에 물리적 압박을 가하거나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우방인 미국의 거부권 행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전범이 되고 나면 미국이 더 이상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을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중동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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