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결투' 벌어진 미국 서부에 중국인도 있었다...백인들이 지웠을 뿐

전혼잎 2024. 6. 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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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미국 서부 개척기, 중국계 이민자 주인공
소설 ‘그 언덕에는 얼마나 많은 황금이’
중국계 미국인 작가 C 팸 장 인터뷰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1946년 영화 황야의 결투의 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 할리우드 서부극은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는다. 금광을 찾으려 몰려든 혈기 넘치는 이들과 카우보이, 아메리칸 원주민(인디언) 등이 뒤엉킨 서부 개척기는 오늘날까지도 영화에 소환되는 소재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이 낭만의 시대를 마음에 품어봤을 정도로 서부극을 향한 애호엔 각별한 구석이 있다.

수백, 어쩌면 수천 번 변주되며 하나의 장르가 된 서부극이기에 그곳에서 '지워진 존재'를 주목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미국 서부에서 철도 건설 현장과 농장의 노동자로, 또 금을 찾는 탐광꾼으로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했던 중국계 이민자들. 그러나 할리우드는 결코 이들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깨끗이 표백돼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 이들에게는 어떠한 권리도 없었다. 미국 서부 개척기에 만들어진 관용어 ‘중국인의 기회(Chinaman’s chance)' 가 '아무런 기회가 없다'는 뜻인 것처럼.


중국계 작가 “서부극엔 ‘나’와 비슷한 인물은 없었다”

소설 '그 언덕에는 얼마나 많은 황금이'를 쓴 중국계 미국인 작가 C 팸 장. 민음사 제공 ©Clayton Cubitt

“소설 ‘그 언덕에는 얼마나 많은 황금이’는 미국 서부에 대한 제 권리를 주장하고, 그 광활한 풍경의 시야를 넓히기 위한 수단입니다.”

미국 서부 개척기의 중국인 이민자 가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소설을 데뷔작으로 써 2020년 부커상 1차 후보에 오른 중국계 미국인 작가 C 팸 장은 한국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서부를 가로지르는 존 스타인벡, 로라 잉걸스 와일더 등의 글을 읽으며 자랐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이야기 속에 나와 내 가족과 비슷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다. 그는 첫 직장에서 해고당한 이후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이 소설을 썼다고 귀띔했다.

소설은 평생 황금을 좇다가 죽은 아버지 ‘바’의 시신을 말에 싣고 시신을 묻을 땅을 찾아 나서는 자매 ‘루시’와 ‘샘’으로부터 출발한다. 살풀이로도 읽히는 자매의 여정은 중국인 이민자 전체를 향한 멸시와 차별을 아우른다. 백인 광부들은 골드러시를 노리고 바다를 건넌 경쟁자이자 외모가 다른 이방인에게 폭력을 쓰거나 트집을 잡아 쫓아낸다. 미국 정부까지 중국인의 이민을 법으로 금지하며 배제에 가세했다. C 팸 장은 “소설은 의례적인 겉치레 없이 진실을 말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정착’ 원하는 루시와 떠나려는 샘…이민 2세대의 혼란

그 언덕에는 얼마나 많은 황금이·C 팸 장 지음·홍한별 번역·민음사 발행·364쪽·1만7,000원

소설은 백인 남성 중심의 미국 서부 개척 신화 해체에 그치지 않고 이민 2세대의 정체성으로 서사를 확장한다. 새로 찾아낸 마을을 눈앞에 두고 “사람들이 우리가 싫다고 하면 떠나면 되지”라고 말하는 샘과 정착하기를 원하는 루시의 갈등을 통해서다.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네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C 팸 장 역시 이민 2세대다. C 팸 장은 “이민자들에게 모국은 떠나는 순간의 모습으로 얼어버린다”며 “이민자의 자녀들에 이르러서는 (출신국은) 신화나 동화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도 “어린 시절 부모님 나라의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웠다”고 덧붙였다. 이런 거리감은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졌다. “다른 칭크(중국인에 대한 멸칭)들하고 살기 싫다”며 차별을 내재화한 채로 어머니 ‘마’의 고향으로의 귀환을 거부하는 어린 루시의 모습처럼.

혼란에서 자신의 소설이 태동했듯 C 팸 장은 이를 마냥 부정적으로만 여기지는 않는다. “지금은 그런 문제가 오히려 창의성 측면에서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보다 모호한 여백을 탐색하는 게 더 흥미롭지 않나”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2022년 3월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아시아계 증오범죄를 막자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욕=UPI 연합뉴스

‘그 언덕에는 얼마나 많은 황금이’에서 루시와 샘은 놀이처럼 “집이 어때야 집이지?”라는 말을 서로에게 반복한다. 소설이 미국에서 발표된 2020년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바이러스의 근원지로 지목된 중국과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가 극심할 때였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아시아인 모두에게 ‘집이 집일 수 없었던’ 시기였다. C 팸 장에게 물었다. “집은 어때야 집인가요?” 그는 “집이란 어떤 지리적인 장소라기보다는 어떤 감정이나 집단”이라고 했다. 인종, 성별 등에 관계없이 소속감을 느끼고 환대받는 공동체가 집이라는 의미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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