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 도자기'를 아시나요…불로 그림 그려내는 이호영 도예가
남해 이순신 순국공원·안산 세월호 추모관 등에 도자벽화 전시
(이천=연합뉴스) 이우성 기자 = 경기 이천시 신둔면에는 400여개 작업 공방과 공장이 모여 있는 국내 최대 도자예술인 마을이 있다.
신둔면 수광리에 작업실(600여㎡)을 둔 도자기 명인 한얼 이호영(65) 작가를 지난달 29일 만났다.
일반적인 둥근 도자기가 아닌 펼친 형태의 '평면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그의 전공 분야이다.
외조부, 선친에 이어 3대째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는 그에게 유년 시절 가마터는 생활 공간이자 놀이터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곁에서 흙과 유약, 가마, 불을 보고 다루며 컸다.
20대 중반 무렵 도예에 입문한 그는 청자, 백자 등 여러 도자기에 손을 대면서 '나만의 작법, 작품을 갖자'는 마음을 먹게 됐고, '도자기를 펼쳐보자'는 생각에서 착안, 평면 도자기에 도전했다.
30여년 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독보적인 제작기법을 완성했다.
"흙으로 만든 도자기는 소성 과정(굽는 과정)을 거치면 크기가 줄어들어요. 도자기를 만들 때 조각해 굽는 1차 소성, 유약을 바르고 굽는 2차 소성을 거치는데, 굽는 과정에서 도자기 반죽이 균일하게 줄어들지 않고 모양이 뒤틀리고 갈라지죠. 본래 형태를 유지하게 굽는 게 비법이죠."
그는 처음에는 작은 도자기판조차 본래 형태를 유지하게 굽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200㎝ 이상 크기 작품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했다.
흙은 불에 구우면 크기가 16~22% 줄어든다. 굽는 과정에서 휘어지고 요철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른 오징어를 구우면 비틀어지면서 쪼그라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 뒤틀림을 잡는 게 노하우인데 흙과 유약, 불을 어떻게 조화롭게 쓰느냐가 평면 도자기를 만드는 비법이라고 했다.
이 작가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대 90㎝×220㎝ 크기의 대형 평면 도자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작가라고 자부한다. 이 제작기법으로 2012년 발명 특허도 받았다.
그의 작업실에는 이 크기의 대형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특수가마를 포함해 8개의 가마가 있다.
"더 큰 가마를 만들면 더 큰 작품을 구워낼 수 있어요. 그러면 쓰임새가 다양해질 거고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겁니다"
그는 "추상적인 그림을 그려 표현하기도 하고 대형 벽화로도 만들고, 다탁(차를 마시는 탁자)이나 건축자재로 만드는 시도도 했는데 도자기 형태가 둥글지 않다 보니 어색해한다"고 했다.
그의 도자기 벽화 작품은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2017년 4월 경남 남해 관음포 해안에 개장한 이순식 순국공원에 들어선 대형 평면도자 벽화가 대표적이다.
가로, 세로 각각 50㎝의 평면 도자기 3천700여장을 붙여 높이 5m, 길이 200m의 대형 벽화를 만들어 냈는데, 이 작품은 1598년 노량해전 전투를 소재로 다뤘다.
이밖에 안산 세월호 추모관에 도자벽화를, 한국세라믹기술원 이천분원 앞에는 평면도자를 붙여 만든 대형 청자 조형물이 설치돼 있고, 이천 도자기박물관에도 10여점의 평면 도자기 작품이 전시돼 있다.
그의 새로운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조선백자를 대표하는 달항아리도 그의 손을 거치면 새로운 느낌의 작품이 된다.
전통적인 우윳빛 백자를 재현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비췻빛과 코발트색을 내는 달항아리를 만들어 낸다.
그는 비췻빛과 코발트색 달항아리가 같은 유약을 입혀 같은 가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유약과 불의 조화로 가마에서 나올 때 구현되는 새로운 색과 무늬는 인간의 계획으로만은 낼 수 없어요. 독특한 빛깔을 뽑아내기 위해 계속 시도하는 수밖에 없죠."
평창동계올림픽 초대전(2018년), 중국 샤면국제차산업박람회 전시(2018년), 서울 갤러리 아트셀시 초대전(2017년), 일본 아즈마댕기 창립 90주년 초청전시(2012년) 등 2012년부터 10여차례 개인전과 초대전을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알리고 있다.
평면 도자기 분야를 개척해 보람을 느끼지만, 업계에선 "평평한데, 그게 도자기야"라며 저평가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고 한다.
이 작가는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를 같이 지칭하는 건데, 도기와 자기는 굽는 온도와 흙 반죽이 익는 정도에 따라 구분한다"며 "가마에서 흙 반죽이 완전히 익어 한데 엉기는 형태로 나오면 자기, 그렇지 않은 걸 도기라고 한다. 학계에선 굽는 온도에 따라 1300도 이상에서 구우면 자기, 그 온도보다 낮게 구우면 도기로 구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자신이 현재 만들고 있는 평면 도자기는 '자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적 시도 끝에 이룬 성취를 그대로 인정하고 산업화 연계 방안도 찾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며 "한국도자재단 이사로 3년째 활동 중인데 이런 인식과 시선이 개선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gaonnu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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