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때리면 항복할 줄 알았는데…美 대중 제재 ‘회피의 축’만 키웠다 [★★글로벌]

안갑성 기자(ksahn@mk.co.kr) 2024. 6. 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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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제재에 反서방 국가들 단합
미국 무역·금융 제재 받는 이란
中 은행 통해 비밀 무역·금융 거래
중국의 반도체 드론 등 제품들은
러·이란 등 수출규제국으로 흘러가
중국은 美 제재 여파로 값싸진
러·이란·베네수엘라 산 원유 수입
“中 중심 ‘그림자 경제’ 탄생시켜”
지난 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중국 해관총서 자료를 인용해 지적한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등 ‘회피의 축’ 5개국의 대중 무역 규모를 보여주는 자료. [출처=중국 해관총서]
“이 세상에는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이란 ‘악의 축’이 있습니다. 우리는 ‘악의 축’과 사업을 하려 들지 말고 맞서야 합니다” (지난해 10월 22일 CBS뉴스 인터뷰에서 미치 맥코넬 미국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발언)

9·11 테러 이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테러지원국’을 비난하기 위해 만든 용어 ‘악의 축’은 미중패권전쟁이 본격화되자 기존의 북한과 이란에 더해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하는 표현으로 바뀌었습니다.

미국 정계에선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초강대국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려 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첨단 반도체 수출규제부터 중국산 전기차·태양광 패널에 대한 관세 인상, 남중국해 군사훈련, 신장위구르 강제노동 인권 문제 제기 등 다각도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또한,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도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국제은행결제망(SWIFT) 퇴출, 러시아산 제품 EU 수출 금지, 러시아산 원유 가격상한제 적용 등 전례 없이 강한 경제 제재 조치를 받게 됐습니다. 핵 개발 시도로 인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일찍이 받아왔던 북한과 이란도 이미 경제 제재를 최대한도로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주도로 신(新) ‘악의 축’에 대한 서방 세계의 경제 제재 부과가 오히려 이들 국가 간 결속력을 다지고, 서방의 제재를 각종 수법으로 회피하는 ‘회피의 축’을 만들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서방의 무역·금융 제재와 수출 규제가 미국의 달러 패권을 기반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중국 등 ‘악의 축’을 굴복시키기 위한 노력이 “의도치 않게 중국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주적들을 하나로 묶는 글로벌 그림자 경제를 탄생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WSJ가 서방의 경제 제재를 빠져나간 ‘회피의 축’으로 거론한 국가는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등 5개국이었습니다.

WSJ는 미국의 주요 관리들을 인용해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등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금융·무역 거래 제재와 서방 시장 접근 차단 조치 등이 취해졌지만, 중국은 지속적인 양자간 무역 관계 강화에 나서면서 미국의 제재 시도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서방의 제재 시도가 사실상 무력화된 요즘 ‘회피의 축’에 속한 5개국은 드론과 미사일과 같은 첨단 무기부터 금과 석유와 같은 귀금속과 원자재까지 거의 모든 것을 서방을 거치지 않고 손에 넣을 수 있게 됐습니다.

中, ‘페트로달러’ 질서 위협...서방 대러 제재에 값싼 원유 반사이익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서방의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경제 제재 결과 브렌트유 대비 가격이 내려간 러시아산 원유 가격 추이. [자료=CREA]
특히 중국이 수십년간 국제원유시장에서 달러의 결제 통화 시스템인 ‘페트로달러’ 질서를 무너뜨리고, 위안화로 원유 결제를 시도하면서 중국과 산유국 간 자급자족이 가능한 ‘블록경제권’이 만들어졌습니다.

WSJ는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로부터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인해 대폭 할인가에 이들 국가의 원유를 수입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이들 산유국은 서방의 제재로 반도체, 전자부품, 각종 상품을 수입하지 못하게 된 대신, 중국으로부터 대체 수입에 성공하며 수출 규제 문제를 해결하게 됐다는 게 WSJ의 설명입니다.

킴벌리 도노반 애틀랜틱 카운실 연구원은 WSJ에 “중국의 석유 수입으로부터 얻는 수익은 러시아와 이란의 경제를 지탱하고 있고, 서구의 제재를 약화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회피의 축’에서도 이란은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쓰일 군사용 드론을 판매하고 실전 데이터를 확보하거나, 베네수엘라에 무기와 원유 정제기술을 제공하고 금을 대가로 받는 등 서방 세계가 추적하기 힘든 형태로 거래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美 무역 제재…이란, 해외 그림자 은행 시스템으로 회피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중국의 대러 반도체 수출 증가 흐름. [자료=Export Genius]
서방 관료들에 따르면 이란의 그림자 경제는 미국의 제재로 인해 수출입이 금지된 기업 대신 이란 은행이 중국, 홍콩 등지에 해외은행 계좌를 개설한 대리 무역회사를 설립하는 형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대리 무역회사가 외국은행 계좌에서 이란산 석유를 사려는 구매자나 이란에 각종 제품 수출하길 원하는 판매자와 거래한 뒤, 거래대금 중 일부만 현금으로 인출해 이란으로 밀수입하고 나머지 거래대금은 서방 제재를 받지 않는 외국은행 계좌에서 보관하는 방식입니다.

미국 관리들에 따르면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물자 생산을 위해 러시아 기업에 수출된 60개 주요 품목은 모두 중국 기업이 만든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해당 물자는 러시아 내 공장에서 이란제 군용 드론을 생산하기 위한 원부자재로 쓰입니다. 앞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제재로 무기로 전용 가능한 반도체 수출이 막히자, 이를 중국으로부터 대거 수입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회피의 축’ 5개국이 자급자족이 가능한 ‘규모의 경제’를 이루게 되면서 더 이상 서방의 그 어떤 제재도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WSJ는 “서방 제재를 받은 ‘회피의 축’ 블록은 이제 드론과 미사일부터 금, 석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거래하면서 미국의 금융 제재로부터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갖게 됐다”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의 대중, 대러 제재를 계기로 ‘회피의 축’ 5개국간 전례 없는 무역과 금융 거래가 촉진됐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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