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증이 부른 만년 하위팀의 ‘감독 경질’ 도돌이표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24. 6. 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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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최근 5년 9위→10위→10위→10위→9위
메이저리거 류현진 복귀 효과도 소용없어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시작은 '물음표'였다. 개막전(3월23일)에서 실책이 나오면서 '디펜딩 챔피언' LG 트윈스에 2대8로 졌다. 현직 메이저리거나 다름없는 류현진이 선발로 등판했음에도 결과가 그랬다. '올해도 역시나?'라는 의문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다음 날 경기부터 달랐다. 한화 이글스는 거짓말처럼 7연승을 달렸다. 작년 상위권 팀들(LG·SSG)과의 맞대결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고, 한화는 10년 만에 순위표 맨 꼭대기에 자리했다. 한화 팬들은 "(높은 곳에 있어서) 고산증 걸리겠다"라거나 "어지럽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독수리의 비상을 즐겼다. 올 시즌을 끝으로 문을 닫는 홈구장인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는 연일 매진(1만2000석)됐다.

5월14일 열린 NC 다이노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실점한 한화 류현진이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7연승 후 거짓말처럼 찾아든 내리막길

그리고 4월이 왔다. 거짓말처럼 한화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3월은 8경기에서 7승(1패)을 챙겼는데 4월엔 23경기에서 고작 6승(17패)만을 챙겼다. 중심 타선의 노시환(4월 월간 타율 0.270), 채은성(0.188), 안치홍(0.275)의 부진이 이어졌다. 김강민을 영입했으나 주전 중견수에 대한 고민은 계속됐다. 투수 쪽도 와르르 무너졌다. 선발 로테이션에서는 김민우가 수술로 이탈했고, 류현진은 올 시즌 처음 도입된 자동볼판정시스템(ABS·기계 판정) 적응에 애를 먹었다. 문동주 또한 작년 신인왕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4월말 2군으로 내려갔다. 선발진이 5이닝 이상 버텨주지 못하며 불펜에 과부하가 걸렸다.

한화의 부진은 5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23일에는 최하위로 떨어지기도 했다. 1위로 승승장구하다가 한 달 반 만에 지난해와 비슷한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안치홍을 영입하고, 김강민을 데려오고, 류현진으로 방점을 찍으며 하위권 탈출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는데도 '도루묵'이었다. 올해 캐치프레이즈인 '디퍼런트 어스(DIFFERENT US: 달라진 우리)'가 무색해졌다.

사령탑 최원호 감독은 결국 옷을 벗었다. 구단에서는 '자진 사퇴'라는 표현을 썼으나 이를 그대로 믿는 이는 없다. 사퇴 시기가 한화가 막 반등하려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한화는 돌아온 문동주가 옛 모습을 보여주고, 안치홍·채은성 등의 방망이가 살아나면서 5월21~25일 5연전에서 4승1패를 거뒀다. 구위가 떨어진 펠릭스 페냐를 방출하고 메이저리그 통산 22승의 외국인 투수 하이메 바리아와 계약하며 선발진을 추스르기 직전이었다.

성적 부진으로 해임된 최원호 감독 ⓒ연합뉴스

최원호 감독은 5월11일 이글스 13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당시 퓨처스(2군) 사령탑이었는데,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전격 해임되면서 1군 지휘봉을 맡게 됐다. 3년 계약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최 감독은 단 한 시즌도 온전히 치르지 못하고 이글스 유니폼을 벗게 됐다. 2년 연속 사령탑이 시즌 중에 낙마하는 것인데, 수베로 감독이나 최 감독 모두 팀이 반등하려는 찰나에 팀을 떠나게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원호 감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면서 한화 야구단은 10~13대 사령탑 모두 중도에 옷을 벗는 상황이 됐다. 수베로 감독 이전인 2018년부터 한화 지휘봉을 잡았던 한용덕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2020년 6월 팀을 떠났다. 당시 감독대행을 했던 이가 최원호 감독이었다. 한용덕 감독 전에 독수리 군단을 이끈 이는 '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2015년 부임했으나 프런트와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2017년 5월 시즌 도중 경질됐다. 김성근 감독 이전에는 김응용 감독이 한화를 3시즌 동안 이끌었다.

비단 감독만 교체됐던 것이 아니다. '리빌딩' 기치를 내세우면서 프랜차이즈 선수 출신의 정민철 단장을 영입했으나 3년 만에 옷을 벗었다. 이후 손혁 단장이 부임했지만 부임 첫해부터 외국인 선수 부진, 수베로 감독 경질 등의 이유로 팬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다. 올해도 박찬혁 사장과 함께 사퇴하려다가 뒷수습이 필요해 구단에 남았다. 단장 교체 등을 보면 비단 현장만 책임진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적이 안 좋은 프로 구단의 비애다.

한화는 2010년 이후 딱 한 번 포스트시즌(2018년)에 올랐다. 이후 9위→10위→10위→10위→9위의 처참한 성적을 냈다. 최근 15년 동안 가을야구에 단 한 차례밖에 진출하지 못해 모그룹이나 구단, 팬들이 조급해진 것이 사실이다. 정민철 전 단장의 지휘 아래 고참급 선수를 대거 은퇴, 혹은 방출하고 젊은 팀으로 변모시킨 후 손혁 단장의 지휘 아래 부족한 부분을 채은성(6년 총액 90억원), 안치홍(4+2년 최대 72억원), 이태양(4년 총액 25억원) 등 외부 FA 영입 등으로 메우고 올 시즌엔 류현진마저 일찍 국내로 유턴(8년 170억원)하면서 5강 이상을 기대하게 했다. 한화가 올 시즌 직전 '리빌딩 종료'를 선언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투타 밸런스가 깨지면서 여전히 한화의 악몽은 이어졌고, 감독과 대표이사가 함께 퇴단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4월24일 한화 이글스와 KT 위즈의 경기에서 1대7로 패한 한화 선수들이 팬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뉴스1

26회 홈경기 중 21회 매진…홈팬 기대 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5강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이다. 5월27일 현재 한화는 4~5위권 팀들과 4.5~5.5경기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작년에 한화는 비슷한 경기 수(261경기·올해 260경기)였을 때 5위 두산과 7경기 차이가 났다. 2020년에는 258경기를 치렀을 당시 5위 삼성과 15.5경기 차이가 나서 시즌을 일찌감치 접어야만 했다. 코로나19로 시즌을 늦게 개막한 것이 리빌딩 첫해였던 한화에는 더욱 치명적이 됐다. 그해 한화는 시즌 최저 승률을 걱정할 정도로 암울한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한화가 전반기 마감까지 승률 0.450 이상을 기록하면 충분히 5강 싸움이 가능하다고 예상한다. 올해는 특히 극강 팀 없이 선수들 컨디션 사이클에 따라 승패가 정해지고, 순위가 요동치는 시즌이라 더욱 그렇다. 현재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져있는 리카르도 산체스가 정상적으로 로테이션에 합류하고 5월30일 팀에 합류한 대체 외국인 선수 바리아가 제 몫을 해준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 된다. 물론 차기 사령탑이 어떻게 경기를 운용하느냐에 달렸지만 말이다.

한화는 올해 홈에서 치른 26차례 경기 중 21차례가 매진됐다. 김성근 감독 영입으로 붐이 일었던 2015년과 같은 매진 횟수로, 팀 역대 최다 매진 타이 기록이다. 그만큼 한화 팬들의 관심이 그 어느 해보다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치열한 순위 싸움의 순간에 사령탑 교체의 칼을 빼든 한화. 느낌표에서 다시 물음표가 된 독수리의 잔여 시즌 결과가 궁금해지는 2024 시즌 KBO리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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