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군장 뺑뺑이가 말이 되나… 얼차려 규정 파헤쳐보니

김우정 기자 2024. 6.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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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병영생활규정’, 대상자 신체 상태 고려 등 군기훈련 상세 명시

"일선 부대에서 간혹 군기훈련 관련 규정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으나 이번처럼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실제로 해당 부대 중대장이 훈련병에게 완전군장 상태로 팔굽혀펴기를 시키거나 '선착순 1명은 빼주겠다'는 식의 행위를 했다면 이는 육군규정을 위반한 가혹 행위로 보인다."

육군본부 법무실 징계과장, 국방부 인권과 국제인권담당을 지낸 손광익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최근 12사단 훈련병이 과도한 군기훈련 끝에 사망한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손 변호사는 "군 간부의 인권침해나 부당한 지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규정을 어긴 얼차려가 드러나 징계받는 경우가 있긴 해도, 이 정도로 가혹한 군기훈련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과거 육군규정을 근거로 이뤄지던 얼차려가 군인복무기본법에 따른 군기훈련으로 정립된 것도 지휘관 재량권이 지나치게 커서 생긴 부작용을 시정하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군기훈련 아닌 가혹 행위"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 연병장에서 훈련병들이 팔굽혀펴기 얼차려를 받고 있다. [동아DB]
숨진 훈련병은 동료 훈련병 5명과 함께 5월 23일 오후 중대장(대위)과 부중대장(중위)의 지시·통제 하에 약 24㎏ 무게의 완전군장을 한 상태로 보행→구보→팔굽혀펴기→선착순 달리기 등을 반복했다. 당시 군기훈련은 전날 밤 이들 훈련병이 떠들었다는 이유로 부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군의 초동조사 등을 종합하면 이는 군기훈련과 관련된 육군규정은 물론, 관련법을 위반한 가혹 행위에 가깝다. 그 결과 훈련병은 다리가 시퍼렇게 변하고 검은색 소변을 보는 등 '횡문근융해증'으로 의심되는 증상을 보여 민간병원으로 후송됐으나 5월 25일 사망했다.

군기훈련의 절차와 방법 등을 명기한 '육군규정 120 병영생활규정'에 따르면 완전군장 군기훈련은 1회 1㎞ 이내 보행 방식으로 최대 4회까지만 부여할 수 있고, 구보나 팔굽혀펴기를 동반하는 것은 육군규정 위반이다(상자 내용 참고). 선착순 달리기는 아예 규정상 군기훈련 방식이 아니다.

과거 '얼차려'로 불린 군기훈련은 말 그대로 장병들의 군기 확립을 위해 지휘관이 부여하는 체력 단련 및 정신 수양 형태의 훈련이다. 육군본부에 따르면 얼차려가 육군규정으로 처음 명문화된 것은 2008년이다. 2020년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군인복무기본법) 개정으로 얼차려라는 용어가 군기훈련으로 바뀌고 법적 근거를 갖춘 군기 확립 방법이 됐다. 군인복무기본법 제38조의2는 "지휘관은 군기의 확립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공개된 장소에서 훈련 대상자의 신체 상태를 고려하여 체력을 증진시키거나 정신을 수양하는 등의 방법으로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군기훈련을 실시한 지휘관은 매년 2월 말까지 전년도 군기훈련 실시 결과를 장성급 지휘관에게 보고"토록 했다. 같은 법 시행령은 "인권침해 소지가 없어야 하고, 훈련 대상자가 정신 수양 및 체력 단련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일 군기훈련은 2시간 이내로 실시하되 1시간 초과 시 중간 휴식시간을 부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외에 군기훈련 실시와 관련된 세부 내용은 각 군 참모총장이 정하도록 했는데, 육군의 경우 육군규정 120 병영생활규정에 망라돼 있다. 해당 규정에는 군기훈련을 명할 수 있는 명령권자와 조건, 절차, 방법 등이 자세히 담겨 있다. 손 변호사는 "일선 부대에서는 군기훈련을 육군규정 범위에서 상황에 맞게 조금씩 다르게 적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단 신병훈련소에서 군기훈련과 관련해 육군규정을 변용했다면 훈련병이 대상인 만큼 얼차려 방법이나 횟수를 완화하면 완화했지, 강하게 적용했을 리는 없다"고 말했다.

"구두(口頭) 주의만 줘도 충분한데…"

현행법이나 육군규정을 세세히 모르더라도 대부분의 군 전역자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여러모로 의아한 대목이 많다. 사회적 이목이 쏠리는 훈련소에서 간부인 중대장에 의해, 입소한 지 열흘 된 훈련병이 가혹한 군기훈련 결과 사망했기 때문이다. 육군훈련소 조교로 근무하다가 전역한 30대 직장인의 말이다.

"입소한 지 열흘밖에 안 된 훈련병이 제아무리 잡담을 했다고 한들, 불러 세워 말로 주의를 주거나 팔굽혀펴기 몇 번을 부여하는 군기훈련 정도면 끝날 일이다. 특히 중대장 정도 되는 간부라면 갓 입소한 훈련병에게 구두(口頭) 주의만 줘도 충분히 훈육 효과가 있다. 저 정도로 심하게 '군장 뺑뺑이' 얼차려를 준 이유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혹한 군기훈련으로 훈련병이 사망하자 군 장병 가족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너희가 뭔데 우리 아들들한테 함부로 하느냐"는 공분이 일고 있다. 특히 자녀가 고인과 같은 사단에 훈련병으로 입소했다는 누리꾼들은 "점호불량으로 20㎏(군장)에 책 같은 걸 더 넣게 해서 40㎏을 만들어 메고 3시간 정도 뺑뺑이 벌, 얼차려를 줬다" "우리 아들은 화장실 가려고 침대에서 꿈틀대다가 걸려서 무작정 아무 말도 못 하고 (군기훈련을 받았다)" 등 육군규정에 위배되는 군기훈련이 이뤄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육군수사단은 5월 29일 해당 부대 중대장과 부중대장을 업무상과실치사와 직권남용 가혹 행위 혐의로 강원경찰청에 이첩했다. 경찰은 숨진 훈련병과 함께 군기훈련을 받은 병사들, 주변 장병들로부터 참고인 진술을 받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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