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등 처먹은 돈으로 고급 아파트 '떵떵'…경찰, 사기꾼 돈 탈탈 털었다

이강준 기자, 김미루 기자 2024. 6.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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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범죄수익 환수, 타이밍에 달렸다 (下)
[편집자주] 사기 범죄가 늘면서 피해 금액도 증가하고 있다. 돈을 빼돌리기 위한 범죄수익 세탁 방법은 진화하고 있지만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인력과 제도는 뒤처져 있는 현실이다. 범죄수익은 반드시 토해내게 돼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사기 범죄를 줄이는 길이다. 범죄수익을 환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사기관의 노력과 제도 개선책을 살펴본다.
[단독]고가 아파트, 수입차까지 탈탈…사기꾼들 돈 277억원 '꼼짝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투자전문가 행세를 하며 100여명에게 투자를 유도해 277억원을 편취한 일당의 범죄수익을 경찰이 모두 찾아 전부 동결했다. 이들은 사기로 벌어들인 수익 중 일부를 서울의 고급 아파트·수입차를 구입하는데 썼지만 이것도 경찰이 모두 찾아내 현금화하지 못하도록 묶어놨다.

29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북부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자본시장법,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붙잡힌 30대 총책 A씨 등 40명의 범죄수익 277억원 전부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 법원 인용을 받아냈다.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이란 범죄 피의자가 확정판결을 받기 전에 몰수 대상인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처다.

A씨 일당은 사기 범죄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40억원에 이르는 서울 한남동 고급 아파트를 매입하는가 하면 메르세데스-벤츠 등 고가의 수입차 7대를 구입하기도 했다. 언제든 범죄 수익을 쓰기 위해 예금 24억원을 숨겨두기도 했다. 경찰은 이 모든 수익을 추적해 동결시켰다.

A씨 일당은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 등에서 고수익을 보장하는 투자전문가 행세를 했다. 200~300%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허위 선물 거래 사이트 가입을 유도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에게 가짜로 제작한 홈트레이딩 시스템(HTS, Home Trading System) 프로그램을 설치하도록 했다.

해당 HTS 프로그램에서는 가상으로 매도·매수가 가능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피해자들이 투자한 돈은 피의자들의 대포통장으로 들어갔다. A씨 일당은 이런 수법으로 2021년 8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120명으로부터 약 277억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들은 주로 투자 경험이 적은 고령자나 주부였다.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7~9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봤다. 총책 A씨를 비롯한 조직원 13명은 구속됐다.

◇경찰, 사기 범죄 '경제적 살인' 규정…범죄수익 전문 추적팀 출범

연도별 범죄수익 보전성과/그래픽=이지혜

경찰은 사기 범죄를 '경제적 살인'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범죄수익을 찾아내기 위한 전문 수사계인 '범죄수익추적수사계(범수계)'를 올해 경찰청에 만들었다. 범죄자들이 돈을 벌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사기 범죄가 근절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경찰청 범수계와 각 시도경찰청에 있는 범죄수익추적수사팀은 오로지 사기 범죄자들의 범죄수익을 찾아내 재판이 끝나기 전 자산을 처분할 수 없도록 동결하는 업무에만 집중한다.

범죄수익 몰수·추징 보전 건수와 가액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2년 1월 뇌물 등 200여개 범죄에서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되는 약 1만5000개 범죄로 몰수추징 보전 대상을 확대한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이 시행된 점도 컸다.

지난해 몰수·추징보전 건수는 1829건, 보전된 재산의 가액은 5060억 원으로 전년 대비 보전 건수는 52%, 보전금액은 15% 늘었다.올해 들어서도 1월에서 4월까지 보전 건수는 588건, 보전금액은 158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보전 건수 56%, 보전금액은 115%가 증가했다.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은 "앞으로도 범죄로 얻은 수익을 적극적으로 추적해 신속하게 보전함으로써 재범의지를 차단하고 피해를 입은 국민의 실질적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추징금 못 내" 재판 도중 싹 사라진 돈…반드시 필요한 이 법
/사진=윤선정 디자인기자

재판받는 도중에도 피고인이 범죄수익을 세탁하는 경우가 나타나면서 형이 확정되기 전에도 범죄수익을 몰수하는 '독립몰수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범죄 연관성이 확인된다면 재판과 무관하게 추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0일 경찰·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두환씨 손자 전우원씨가 일가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으나 현행법상 당사자가 사망해 범죄수익을 추가로 몰수할 길이 사라지면서 이같은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현행 범죄수익은닉규제법에 따르면 경찰은 피의자 검거 이후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수익에 대해 '몰수보전'과 '추징보전'을 신청할 수 있다. 범죄 피의자가 확정판결을 받기 전에 △몰수 대상인 범죄수익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게 하거나 △피의자의 일반재산을 함부로 처분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다.

검찰 또한 기소하기 전 피의자의 재산을 대상으로 법원에 몰수·추징보전을 청구하면 법원이 몰수보전 여부를 결정한다. 법원이 검찰의 청구를 받아들이면 해당 재산은 확정판결 후 국고로 환수되거나 피해자들에게 돌아간다.

◇전두환 미납 추징금 922억원…변호사 도움받아 은닉한 일당도

마약류 투약 혐의, 전두환손자 '전우원' 첫 공판 /사진=임한별(머니S)

다만 범죄자가 사망하거나 해외로 도피해 재판 진행이 불가능하면 형이 확정되지 않아 몰수나 추징이 집행되지 않는다. 게다가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보전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범죄수익이 있었다면 숨겨진 범죄수익을 범죄자가 빼돌릴 가능성도 있다.

전직 대통령을 지낸 전씨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2021년 숨진 전씨의 미납 추징금은 922억원에 달한다. 추징금 2205억원 중 환수된 금액은 1283억원으로 전체의 58.2%에 그친다. 그가 사망한 이후 추징금 집행이 불가능해졌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200여건, 약 80억원이 당사자 사망으로 추징 집행이 불가능하다.

지난달에는 몰수·추징이 확정되고 나서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범죄수익 약 151억을 은닉한 분양사기 일당도 나타났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부장검사 이희찬)는 지난달 29일 이들 일당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추징금 집행을 위해 재산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범죄수익 은닉 단서가 드러났다.

독립몰수제는 재판과는 무관하게 수사와 동시에 범죄수익으로 추정되는 재산을 몰수 대상으로 본다. 범죄자의 사망, 해외 도피 등으로 재판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다.

독일, 미국 등 국가에서도 독립몰수제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형법에 "기소나 유죄판결이 없어도 몰수 요건을 갖추면 몰수가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형사소송법에는 독립몰수에 대한 세부 절차도 마련돼 있다. 미국은 '민사몰수제'를 통해 유죄판결에 근거하지 않은 몰수를 인정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독립몰수제 도입을 위해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사망 후에도 미납 추징금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전두환 재산추징 3법'도 마찬가지. 무죄추정의 원칙 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입법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죄 판결 전 범죄수익을 몰수 처분해 범죄자들의 수익 현실화를 막아야 사기 범죄 수요를 확실히 떨어뜨릴 수 있다"며 "범죄자에게 수익을 환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줘 범죄 피해 회복도 하기 위해서는 몰수 제도를 독립몰수제 방향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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