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삼발이 닮은 수백만원짜리 돌덩이...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4. 6. 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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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사전 - 20] 바닷가에 무더기로 쌓여 있는 돌로 된 삼발이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테트라포드는 이미 바닷가 풍경의 일부다. [사진 출처=Ryoo Geon Uk, Unsplash]
명사. 1. 테트라포드, T.T.P. 2. 소파블록, 콘크리트 이형블록 3. 아머 유닛(armour unit)【예문】테트라포드가 낚시 명당이라며 해맑게 웃던 아저씨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테트라포드(tetrapod)다. 테트라포트 아니다. 줄여서 T.T.P.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방으로 4개의 발이 나와 있는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파도가 방조제나 방파제를 침식하는 걸 막는 역할을 한다. 파도의 힘을 흡수하기 위해 설치하는 구조물을 소파블록(消波 block·Wave dissipating block) 혹은 아머 유닛이라고도 하는데 테트라포드도 그중 하나다. 크기에 따라 그 무게가 100톤을 웃돌기도 한다.

숫자 4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테트라(tetra-)와 발을 의미하는 포드(-pode)를 합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4개의 꼭짓점을 갖는 삼각뿔(정사면체) 모양이다. 삼각 커피우유의 용기를 떠올려보자. 테트라포드의 다리 사이의 각도는 모두 109.5도를 이루는데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인 형태가 매력적이다. 정체는 사면체인데 눈에 보이는 면은 삼각형이고 땅에 닿는 ‘발’ 부분이 세 곳이다 보니 삼발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엄밀히 말해 삼발이는 트라이포드(tripod)라고 한다.

정사면체 구조 대표주자 테트라포드(왼쪽)과 삼각 커피우유(오른쪽). 1974년 출시된 목욕탕 음료계의 올타임 레전드 삼각 커피우유 그거의 정확한 이름은 ‘커피 포리’다. 정체불명의 ‘포리’란 단어는 포장지 재질인 폴리에틸렌 필름에서 유래한 것. [사진 출처=후도테트라, 서울우유]
여러 가지 형태의 소파블록 중 유독 테트라포드가 많이 보이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삼각뿔 형태에 기인하는 안정적인 무게중심을 갖췄고, 여러 개를 쌓아두면 서로의 다리끼리 단단히 맞물려 더 안정적인 구조물이 되기 때문이다. 또 단순한 구조 덕분에 시공 및 유지 작업이 쉽다. 무엇보다 특허권이 만료돼 별도의 기술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강점 덕에 한국과 일본에서 시공 사례 및 유지관리 경험이 가장 많은, 이른바 스테디셀러 되시겠다.

테트라포드의 강점은 무성한 듯싶으면서도 듬성듬성하다는 점이다. 테트라포드끼리 겹쳐 쌓는 과정에서 서로의 다리가 빈틈없이 맞물리는 것 같지만, 굴곡진 구조 덕에 성긴 틈새가 생긴다. 테트라포드 더미와 부딪힌 파도는 산산이 부서짐과 동시에 사이사이 빈 틈으로 흐르며 빠르게 그 힘을 잃는다. 강대강(强對强) 맞대결이 아닌 유화책인 셈. 제아무리 분노 가득한 고객도 고객센터 ARS에서 친절한 안내와 함께 3개 부서쯤 순회공연 하다 보면 제풀에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거대한 구조물이 끝없이 늘어선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극한까지 추구한 기능미는 미학적으로도 훌륭한 법이다. [사진 출처=Tim Foster, Unsplash]
테트라포드는 1949년 프랑스에서 탄생했다. 프랑스 네르피크(Neyrpic)社 산하 도피누아 수력 실험실 (LHD) 소속이었던 수력학 분야 권위자 피에르 다넬(1902~1966)과 폴 앙글 도리악(1904~1983)이 개발했고, 디자인 특허를 얻었다. 테트라포드가 실제로 활용된 건 1951년 북아프리카 카사블랑카의 호슈 누와흐 화력 발전소의 해수 취수구였다.

워낙에 크고 무거운 구조물이다 보니 제작 방식도 독특하다. 테트라포드는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강철로 된 주형(거푸집) 조각들을 해안으로 옮긴 뒤 조립, 그 자리에서 타설 작업을 진행한다. 이후 주형을 제거하고 약 한 달가량의 양생 과정을 거쳐 콘크리트가 단단히 굳으면 제작 과정은 마무리된다. 이제 설치 작업이다. 방파제 주변 바닥에 사석(잡석)을 깔아 기초공사를 하고, 큰 덩어리의 피복석으로 고정하는 작업을 거친 뒤 트라이포드를 크레인으로 들어서 원하는 위치에 놓는다. 가격은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운송·설치 비용까지 합쳐 200만~400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해수부가 발표한 2023년 항만공사 표준시장단가에 따르면 50톤급 테트라포드의 경우 개당 운송 및 설치를 제외한 제작비만 167만원이었다.

테트라포드 탄생의 현장. 테트라포드야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무럭무럭 자라야 한다. [사진 출처=동일산업]
테트라포드만큼이나 흔하게 보이는 소파블록이 있다. 바로 돌로스(dolos)다. 196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기술자 에릭 모브레이 메리필드(1914~1982)가 선박의 닻 모양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돌로스는 뒤틀린 알파벳 H 모양의 소파블록이다. 시위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서로 팔짱을 껴 스크럼을 짜듯, 자기들끼리 얽히고설켜 질량 대비 높은 안정성을 발휘한다.

에릭 모브레이 메리필드의 일대기를 정리한 웹사이트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발명품이 널리 쓰일 수 있도록 특허받지 않았고, 덕분에 전 세계 곳곳의 방파제에 돌로스가 자리 잡게 됐다. 자신이 돌로스의 진짜 발명가라며 진실 공방을 벌였던 발명가 오브리 크루거(1935~2016)가 등장하며 이야기가 다소 복잡해지지만, 두 사람이 모두 사망하면서 진상을 알 수 없게 됐다.

돌로스는 생태계를 위해 쓰이기도 한다.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환경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사실이다. 북미 태평양 연안 지역 강에서 돌로스는 강물의 흐름을 안정화하고, 침식을 방지하며, 연어 서식지 및 강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에 쓰인다.

돌로스의 역할을 논하려면 우선 로그 잼(log jam)에 대해 알아야 한다. 로그 잼이란 산에서 벌목한 목재가 강을 통해 운송되거나, 자연재해로 쓰러진 나무가 강이나 하천을 따라 흘러오는 과정에서 서로 엉키고 걸리며 발생하는 정체 현상을 말한다. ‘일이 진행되지 않고 정체된 상황’을 뜻하는 단어 로그잼(logjam)의 어원이기도 하다. 통나무 몇 그루 모여 있는 동네 반상회 수준의 로그 잼도 있지만, 수백 ㎞에 이르는 조선왕조 스케일의 로그 잼이 600년 넘게 유지된 경우도 있었다. ‘거대한 뗏목’ 그레이트 래프트(great raft)라고 불린 로그 잼은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드강과 아차팔리야강에 걸쳐 260㎞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섬을 이루었고, 무려 12세기부터 1800년대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1873년 사진작가 로버트 B. 탈포어가 촬영한 미국 레드강의 거대한 로그 잼. 미국 육군 공병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로그 잼 제거 사업이 시행되었는데, 당시 현장을 사진 기록으로 남겼다. 1800년대에 어떻게 컬러 사진을 찍었냐고 물으신다면 손으로 직접 채색했다고 한다. 멋있다. [사진 출처=Photographic Views of the Red River Raft, 공공저작물]
로그 잼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포토샵하기 귀찮아서 구글 이미지 번역으로 퉁쳤다. [사진 출처=washingtonnature.org]
벌목꾼 입장에서야 로그 잼은 운송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지만, 강 생태계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존재다. 로그 잼은 물살을 느리게 만들고 퇴적물을 쌓고 침식으로 인해 하천이 끊기는 걸 방지한다. 연어를 비롯한 어류들의 피난처이자 산란장을 제공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북미 지역의 담수 서식지가 차츰차츰 사라지며 종(種)의 존망을 위협받는 태평양연어에겐 여느 때보다 로그 잼이 필요했다. 컬럼비아대 워싱턴주 보존 연구소는 2020년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태평양 북서부 연어 10~14종이 위협 또는 멸종위기, 5종이 위기 상태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로그 잼이 생태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알아본 이들은 ‘인공적인 로그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ELJ(engineered log jam)이다. 사람들은 굴착기로 강의 바닥을 파고 통나무를 쌓고 구조물을 만들었다. 돌로스는 이 과정에서 질량과 결속력, 구조적 안정감을 바탕으로 ELJ를 더 단단하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돌로스를 사용한 ELJ. 2002년에 준공됐다. 겉보기엔 무슨 공사판 폐자재를 강에 투기한 것처럼 생겼지만 강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사진 출처=미연방고속도로관리국 FHWA]
일본 업체 후도테트라는 돌로스의 형태를 개량한 돌로스II를 만들고 2004년 이에 대한 특허를 낸다. 이게 무슨 상도의인가 싶지만, 소파블록에 대한 독점적 디자인 특허, 그중에서도 기존 디자인을 개선해 새 특허를 내는 경우는 꽤 흔하다. 한국에서도 연간 평균 수십 건의 소파블록 특허가 출원되고, 상당수가 등록된다.

돌로스II를 위시한 일본산 소파블록이 국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큰 편이다. 연간 4000억원 규모(2019년 기준)로 추정되는 국내 시장에서 특허 기술료가 필요 없는 테트라포드가 현장 시공의 61%를 차지했고 일본 기술이 23%, 국내 특허 기술은 16%에 불과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이던 2019년 울릉항 방파제 보수공사에 일본 특허제품을 사용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양한 형태의 소파블록. 테트라포드 외에도 여러 국가, 기업에서 다양한 디자인의 소파블록을 개발했다. 돌로스(dolos)와 씨락(sea lock), 아크로포드 등이 유명하다. [사진 출처=해양 콘크리트 구조물, Woodhead Pub Ltd, 2016]
어떤 일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테트라포드지만, 천지를 뒤엎는 자연의 힘 앞에서 무력해지곤 한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어김없이 테트라포드 손상·유실 뉴스가 뒤따른다. 본분을 망각하고 뭍 위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2011년 태풍 무이파, 2012년 볼라벤이 할퀴고 지나간 가거도항에서는 테트라포드 2500여개가 유실되기도 했다. 임자 없는 테트라포드가 발견되기도 한다. 2017년 울릉도 해안 인근 수면 아래에서 10톤짜리 테트라포드 197개가 발견됐다. 표식이 사라져 누가 버렸는지 어디서 흘러왔는지 확인할 수 없는 이 무연고 테트라포드는 결국 인근 항만 공사에 재활용됐다.
형이 왜 거기에서 나와. 2020년 태풍 마이삭의 위력에 땅 위로 떠밀려 온 테트라포드. 울릉도 울릉일주도로 서면 남양터널 안에 다소곳이 들어와 있는 해당 테트라포드는 높이 3m, 무게 50톤이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칠순도 훌쩍 넘은 테트라포드는 앞으로 더 수고할 예정이다. 기후 변화 때문이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시나리오에 따르면 2100년 지구의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3도 이상, 지구 해수면은 현재보다 60~110㎝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한반도를 덮친 태풍의 연 최고 강도는 지난 41년간 31% 증가했다. 환경부는 국내 해역 표층 수온이 2100년에는 현재보다 2~6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태풍은 갈수록 더 세지고, 파도는 더 높아질 것이란 의미다. 해양 재해는 늘어나고 있지만 해안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늘고 있어 방파제·소파블록 등 해양 안전시설의 필요성이 커지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23년 기준 전 세계 방파제 시장 규모는 1360억 달러(약 188조7700억 원)에 달하고 연평균 5.5%씩 성장해 2028년에는 1775억5000만 달러(246조44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 다음 편 예고 : 돈가스 침대도 아니고 그물망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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